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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12월 32일

바깥은 36.5

세상엔 커다란 아픔에 가려 보이지 않는 작고 사소한 기쁨도 있을테니까.

by MONORESQUE
ゆず라 쓰고 ゆうき라 읽는다.


대기 시간 14분이 열 네 번의 외면처럼 느껴진 날. 서너번의 위로가 왔다갔고 그만큼의 눈물이 떨어졌다. 모두가 등을 돌린 듯 유독 추웠던 날 거리를 걸으며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심통을 부리는 것 정도였다. 호의조차 차가운 바람으로 느끼는 나를 바라보며 지나간 시간을 후회했다. 돌이킬 수 없음에, 자신을 몰아붙이지 말자고 생각하지만 매번 실패의 문 앞에 서고만다. 그래도 점심을 먹고, 콜라가 쏟아진 테이블을 닦고, 못 보던 더블샷 라떼를 사 가방 속에 넣었다. 슬픔 가득한 날들은 내일 안으로 사라진다는 미셸 파이퍼의 음성을 떠올리며, 눈물로 이뤄진 강도 반듯이 바다에 도착한다고 노래하는 유즈의 목소리를 기억하며 버스를 탔다. 영화는 수근거리는 아줌마들의 소음 탓에 집중을 할 수 없었고, 침을 뱉고 담배 꽁초를 버리는 이들을 수없이 마주했지만 모두 기억의 저편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믿는다. 우울 역시 그렇게 추억이 되면 좋겠지. 내겐 그런 소망이 있다.


수 많은 짝 잃은 운동화를 기억한다. Never Forget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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涙の川も海に辿る。


사람이 아프면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게 되어 힘들다고 하는데 세 번의 입원과 퇴원 후 날 가장 괴롭힌 건 별 거 아닌 일들의 꽤나 별 거인 아픔이었다. 강아지가 날 보고 짖기만 해도 마음이 다치고, 혹여 물기라도 하면 모든 게 무너져내린다. 이런 아픔은 자주 연쇄적으로 일어나곤 하는데 가령 코 앞에서 놓친 버스를 타고 집에 왔더니 엘레베이터가 1층에 있다 돌연 올라가거나 횡단보도의 신호가 내 걸음에 맞춰 빨강으로 바뀌는 일 같은 게 왕왕 일어난다. 아픔의 냄새는 지독하고 또 지독해 그 어떤 아름다움도 지워버린다. 동시에 아름다움을 감지하는 내 감각은 무뎌진다. 그리고 나는 이런 시간 속에 있었다. 세상에 내 편은 없는 것 같았고 모두가 나를 향해 등돌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러한 아픔에도 끝은 있고 그러한 아픔이 영원한 건 아니다. 질량 보존의 법칙은 어쩌면 눈물과 웃음에도 작용하는지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던 하늘이 별 거 아닌 사소한 우연에 맑게 갤 때도 있다. 유즈가 '내일은 갤거야, 明日はハレルヤ'란 노래의 제목 중 '갤거야 晴れるや를 '할렐루야 ハレルヤ' 로 바꿔 썼듯, 작은 말 장난이 구원하는 아픔도 이 세상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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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사랑'이 보고 싶었다. '씨네 21' 때 선배가 깐느에서 올린 스틸을 페이스북에서 보고 마음을 뱄겨 버렸다. 그리고 고맙고 좋아하는 사람의 집에서 그 영화의 줄거리를 들었다. 심리 치료 중 사랑에 빠진 여자가 또 어느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데 그 두 명의 상대 남자가 쌍둥이란 내용이었다. 세계가 뒤섞이고 차원이 혼재하는 그런 영화가 연상되었다. 더욱이 프랑소와 오종의 영화다. 하지만 이야기와 영상의 도발은 다소 시시하게 끝나버렸다. 내게는 그러했다. 원작이라는 소설에 얼마만큼 충실했는지 모르겠지만 '거울 쌍둥이'에 관한 설명을 길게 나열하면서 신비롭고 수상했던 아이디어는 진부하게 식어버렸다. 물론 존재가 점점 희미해지는 시대를 사는 사람들을 은유하는 몇몇 장면들은 아름답고 애잔하다. 영화를 보고 우동으로 배를 채우고 버스의 시간을 확인한 뒤 담배에 불을 붙였다. 20분을 넘게 기다리기엔 몹시도 추운 날이다. 당장이라도 양쪽 귀가 모두 달아날 지경이었다. 결국 지하철을 두 번 타고, 버스를 탄 뒤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왜 이렇게 춥게 입고 나갔냐고 한 마디 하셨고, 막내 누나가 거들었다. 이상하게 아무로 나미에가 열 아홉살에 부르며 눈물을 흘렸던 'sweet 19 blues'의 후렴구가 귓가에 맴돌았다. 처음으로 자신의, 직접 겪고 느낀 것들과 감정을 노래한 곡이다. 샤워를 하고, 짐을 정리하고, 'sweet 19 blues'를 틀어놓고 신문을 보았다. 그리고 뉴스를 틀었다. 자유한국당은 여전히 반대만 하고 있었고, 싫은 것들은 여전히 싫었지만 그래도 다행히 안심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은 있었다. 그 다행인 시간을 간직하려 한다. 그런 시간을 살려한다. 세상엔 커다란 아픔에 가려 보이지 않는 작고 사소한 기쁨도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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