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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Feb 05. 2018

외톨이는 외롭지 않아

외로움의 반대말은 외톨이다. '아무도 너 안봐.' 알고 있다.


'아무도 너 안봐.' 누군가가 그랬다. 멋을 내고 치장을 하고 거울을 보면 그랬다. '안봐도 내가 마음에 안들어서'라고 쏘아 붙였지만 '누구도 보지 않는다'는 사실은 내 곁에 자주 머물렀다. 외롭다고 말했다. 외톨이라고 말했다. 말수가 적고 숫기가 없는 내겐 늘 그런 꼬리표가 달라붙었다. 이겨내려 애써보기도, 극복하려 힘을 내기도 해봤다. 고등학교 무렵이 특히 그랬다. 하지만 나는 외롭지 않다. 혼자지만 외톨이도 아니다. 아니, 애초 외로움과 외톨이가 부정으로 서술되는 건 누구의 판단인가. 외로움은 고유함으로, 외톨이는 그저 별난 존재로 왜 자리하지 못하나 심통이 난다. 사람들이 무리를 이뤄 이야기하고 모든 사람을 무리 안에  넣으려 애를 쓰는 이유를 나는 도저히 알지 못하겠다. 어디에도 자리하지 않는 사람은 왜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사람이 되는지, 사회성은 왜 외톨이와 외로움을 고립시키는지. 무수한 물음 앞에 고유함을 부정당한 사람은 그저 외로운 외톨이가 되어 서성인다. 향수와 멜랑콜리만이 남아있다. '아무도 너 안봐.' 원한 적 없다. 



나만이 알고 나만이 느끼고 나만이 감각하는 것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건 외로움이고 고독이며 고립이다. 훌륭하지 않으면 그저 외로움으로, 외톨이로 격하되고 모두가 그렇게 얘기한다. 늘 언저리에서 서성였다. 나만이 알고 느끼고 나만이 감각한다고 확신하기에 나에겐 용기가 부족했고, 대범함이 모자랐고 자신감이 없었다. 그러니까 뻔뻔하지 못했다. 특히나 한없이 작아지는 요즘이 더욱 그렇다. 글을 쓰면서도 맞게 가고 있는가 의심하고 생각을 하면서도 그저 흔하디 흔한 생각이 아닐까 불안해한다. 혼자로 충분했으나 혼자가 버거워졌다. 하지만 고유한 건 존재한다. 나만이 알고 느끼고 감각하는 세계는 분명 있다. 그 확신이 없으면 외톨이는 서지 못한다.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바라보며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외롭지만 고상하고 외톨이지만 쓸쓸하지 않은 마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슬프면서 확실한 것, 작지만 아름다운 것, 외로워도 슬프지 않은 것. 눈을 감으면 보이는 홀로그램, 그 안에서 펼쳐지는 두 연인의 키스, 나아가 그려지는 수풀의 풍경과 어둠의 사막. 내가 가진 것들을 사랑한다. 남들이 얘기하는 외로운 외톨이의 시간을 사랑한다. 외로움의 반대말은 외톨이다. '아무도 너 안봐.'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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