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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Mar 30. 2018

남아있는 여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엘리오의 여름은 아직 거기 있다.


나는 단지 나인 것으로, 그는 단지 그인 것으로 완전한 세상. 끊임없는 변화로 흔들리지만 어김없이 자리를 지키는 강물같은 세상. 그래서 가냘프고 동시에 완벽한 어느 여름의 세계.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거칠게 정의된 마음을 섬세하고 세세한 결들로 채색한 풍경이다. 1983년 이탈리아 북부 어느 휴양지에서 열일곱 소년 엘리오가 아빠와의 인연으로 찾아온 남자 올리버와 만나7주를 함께 보내는 시간을 그리는데, 얼핏 전형적인 시작에 불과했던 만남이 우정보다 완벽하고, 사랑보다 특별한 여름을 만들어낸다. 남자와 남자의 사랑이란 점에서, 손님과의 사랑이란 점에서, 언젠가 끝나고 마는 여름이란 점에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애초부터 애달프다. 사랑이란 고작 두 글자를 우정이란 이름 안에 감추어야 하는 마음이, 사랑에 다가가기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부정해야 하는 마음이, 그럼에도 자신의 마음을 지키고자 하는 안쓰러운 시간이 영화엔 차곡차곡 쌓여있다. 욕실 문을 통해 연결되어 있지만 엘리오와 올리버의 방은 서로 다른 문을 열고 들어가고, 서로 마음을 느끼고 있지만 사랑의 시작은 더디기만 하다. 그럼에도 영화는 바람에 흔들리는 창문 소리로, 유독 큰 소리를 내는 방문을 통해, 동상과 조각으로 남아있는 수 백년 전 누군가의 마음을 보여주며 미약하지만 소중한 사랑을 예감한다. 어느 이탈리아 북부, 손님이 찾아온다.



영화에는 엘리오와 올리버의 사랑을 은유하는 장치가 여럿 있다. 올리버의 도착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오 가족과 올리버는 살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영화는 살구란 이름, apricot의 어원이 꽤나 복잡하다고 설명한다. 엘리오는 프렌치, 이탈리안임과 동시에 유대인이며, 올리버는 유대인 미국인이다. 하지만 살구는 어원이 어떻듯 어김없이 살구며, 엘리오 역시 태생이 어떻듯 어김없이 엘리오다. 수 많은 변화를 통해 같음이 유지되는 강물처럼 세상의 많은 건 어쩌면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무언가일지 모르겠다. 영화는 그런 여린 믿음으로 흘러간다. 동시에 유대인이라는 공통점과 살구 주스를 유독 좋아하는 올리버, 그리고 바흐의 곡을 리스트, 부조니 스타일로 변주해 연주하며 올리버에게 다가가는 엘리오. 영화가 바라보는 사랑은 이렇게 뜨거운 어느 여름녘이 아닌 그 이후 피어나는 가녀린 아지랑이다. 단순히 남성과 남성의 사랑이라, 게이의 로맨스라서가 아니라 외면받고 소외되는 마음의 언저리를 감싸안는 상냥함이 영화엔 있다. 한동안의 냉랭한 시간 이후 '휴전'이라 말하며 엘리오가 내민 손은 수 백년 전 누군가의 마음이 담긴 동상의 팔 한 쪽이고, 가녀린 용기를 내 '알아주었으면 좋겠어 I wanted you to know'라 고백하는 장면은 거의 잊혀져 어쩌면 엘리오만이 기억하고 있을지 모를 1차 세계대전 피아베 전투의 기념비 앞에서다. 둥근 기념비를 돌며 점점 멀어지던 둘은 몇 분이 흘러 같은 자리에서 만난다. 그 애절한 순간 후 둘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지만, 그건 결코 같은 자리가 아닐 것이고, 세상은 어쩌면 둥근 원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넘어 그 주제를 가능케 하는 세계를 펼쳐낼 때 영화는 영화 이상이 된다고 믿는다. 그저 애달픈 사랑이 아닌 애달플 수 밖에 없는 사랑은 그런 세계에서 가능하다. 최근 본 영화 중에선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그랬고, '레이디 버드'가 그랬으며, 나라타쥬'가 그랬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열일곱 소년의 여름을 통해 세상의 무수히 많은 흔들림을 담아낸다. 가시적으로는 엘리오의 마음이 그렇지만 영화 곳곳엔 강하지 못해, 확신할 수 없어, 그렇게 나아가지 못해 머뭇거리고 주저하는 순간들이 여럿 있다. 소파에 누워있는 엘리오를 머리 위에서 잡아낸 앵글은 엘리오의 가녀림을 부각시키고, 엘리오는 유독 자주 웅크려 눕는다. 그리고 영화의 말미, 엘리오의 아빠는 그 순간들의 소중함을 얘기한다. '아프고 힘들 때마다 마음을 떼어내면 남아있는 게 없다. 기뻤던 순간 만큼 아프고 슬펐던 순간 또한 안고 살아가야 한다.' 빨리 끝나버리기를 바랬던 여름은 손님 올리버로 인해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계절이 되었고, 시간은 무정하게 흘러 겨울이 오고 말았다. 하지만 '콜 미 유어 네임'에서 네 토막 난 계절은 별 의미가 없다. 여름이 끝나도 엘리오의 마음 속 여름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엘리오는 엔딩 크레딩이 올라가는 동안 겨울임을 알리는 벽난로 앞에서 세상에서 가장 슬픈 눈물을 흘린다. 그건 여름의 눈물이고, 아직 남아있는 여름의 시간이다. 함께 떠난 여행 마지막 날 새벽 아직 자고있는 엘리오를 바라보는 올리버의 시선과, 올리버가 떠나가고 빈자리가 되어버린 침대를 내려다보는 올리보의 시선이 아직 거기 남아있다. 엘리오의 여름은 아직 거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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