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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Jan 20. 2019

내가 품었던 빵집

그의 상처의 나의 상처


점심을 먹고 빵을 몇 개 골랐다. 백화점 지하의 ‘슈엣.’ 크로캉이 메인인 듯한 그곳엔 파란 유니폼을 입은 남자가 혼자 빵을 담고, 계산을 하고, 인사를 했다. 등 뒤론 투박한 검정 오븐이, 좌우가 뒤집힌 ‘ㄴ’자를 쓰며 스콘과 프레쯜과 대니쉬와 크로캉슈가 빈틈이 없었다. 어쩌면 내가 그렸던 그림, 남자의 팔목엔 오븐에 데인 듯한 익숙한 상처가 보였고, 나는 '아차'하고 오븐에서 급하게 평철판을 꺼냈던 일을 떠올렸다. 그 철판은 발효실에 들어가야 했다. 머핀은 좋아하지만 짤주머니는 이상하게 자꾸만 떨렸다. 빵은 식감과 향이 반반이라 생각하지만, 데니쉬를 하다보면 고작 1/4 지점에서 진이 빠졌다. 산을 그려야 하는 식빵은 항상 언덕이었고, 격자무늬의 애플파이는 어딘가 올이 나갔다. 그렇게 5개월. 그제는 학원 선생님을 만나 얘기를 하며 나오려던 눈물을 감췄고, 오늘은 이상한 향수에 취해 울고 싶었다. 프레쯜의 배를 갈라 버터를 굵지막히 썰어넣고, 마름모를 닮은 봉투에 조용히 담아넣고, 내게 그 투박하고 정돈된 시간이 오기까지. 어쩌면 남은 조각은 별 거 아닌 시간들이 채워주는지 모르겠다. 반년이나 지나서, 내가 아닌 누군가로부터. 파리 아니면 런던 뒷골목의 손떼 묻은 빵집 같았던 오늘 점심의 ‘슈엣.’ 언젠가 이런 가게를 곁에 꼭 두고 싶다는 꿈을 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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