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 여름에 태어났다. 어느새 주변엔 90년대 생들이 아무렇지 않게 스쳐가고, 마음에 들어 찾아보는 연예인은 어디 먼 미래에서 태어난 듯 나와 다른 숫자로 시작한다. 하지만, 해가 또 하나의 숫자를 더한 지금 나는 나의 시절을 생각한다. 김원준이 모델을 한 브랜드 카운트다운에서 처음으로 혼자 옷을 사고, 버스를 타고 동네 상가에 가 카세트테이프를 고르고, 언제 쥐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음악 감상실에서 스피드를 듣고, 라르크 앙 시엘을 들었던 시절, 자율학습을 땡땡이치고, 마돈나, 머라이어 캐리, 셀린 디온의 노래가 채워주었던 구멍난 소파의 시간들. 지하 상가 구석에 가면 불법으로 들여온 글레이와 각트의 MD가 있었고, 이상하게 어둠컴컴한 음악 감상실의 '심지'에선 비 내리는 결혼식의 노래, Gun's N Roses의 'November Rain' 뮤직비디오가 주구장창 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그저 지나간 시간의 별 거 아닌 기억들. 하지만 왜인지, 이제와서, 나는 이 시간들이 조금 뿌듯하다. 사람은, 적어도 나의 경우는, 내일을 생각하며 오늘을 참아내는 타입이고, 참아낸 시간, 버텨온 기억, 잊어버린 시절들은 한 가득이라, 그만큼 뒤를 돌아본다는 건 별 사랑스러운 추억이지 못했다. 그저 하루를 더해가는 세월일 뿐인데 그저그런 날들의 보이지 않는 의미가 나는 왜인지 아프다. 구정 무렵에 적는 글이지만, 이건 그저 며칠 전 우연히 알게 된 동갑내기 스타의 인스타그램 때문에 하는 이야기, 어쩌면 그간 참고있던 나를 용서하는 이야기이. 나리미야 히로키, 成宮寛貴, 본명은 成宮博重, 나리미야 히로시게. 그의 오늘을 보고 나는 나의 어제를 떠올리고, 그의 어제를 추억하며 남아있는 나의 어제를 돌아본다. 오래 전 어느 날, 나는 너이고 싶었다.
나이가 뭐 별거라고. 기자라는 일을 시작하고 수 백 명의 사람들을 만나왔(겠)지만, 나이를 기억하는 사람은 손에 꼽는다. 말투, 태도, 자세를 좌우하는 이 나라의 나이 사용법에 나는 애초 관심이 없고, 그런 식의 관계가 기질적으로 힘이 들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나이를 기억하는 순간은 있고, 에이타는 1982년 12월 13일, 나리미야 히로키는 1982년 9월 14일, 오구리 슌은 1982년 12월 26일에 태어났다. 고작 같은 해에 태어났을 뿐, 나이로 위아래를 따지는 것과 별 다를바 없는 듯한, 그만큼 시시하고 쓸데없는 이야기같지만, 나는 이들의 오늘을 보고 내가 사는 시대를 생각한다. 내가 태어난 시대가 살아온 시간, 내가 사는 시간의 살아가는 방식, 타인에서 보는 나의 어떤 시간과 타인이 알려주는 어제의 기억을 떠올린다. 조금도 관계 없는 그들에게서 나는 왜인지 나를 느낀다. 세 번을 입원하고, 세 번을 퇴원하고, 기억은 왜인지 뒤엉켜 혼란스러운 중에도, 나는 시부야를 이야기하며 오래 전 영화 '나나'를 위해 내한한 나리미야 히로키와의 인터뷰를 떠올렸고, 흐릿해진 몇 해 전 부산에서의 기억은 바람부는 오후 에이타와의 통역 없는 인터뷰로 남았다. 일본에선 헤세이(平成)가 끝나고, 새로운 연호를 기다리는 계절, 90년대에 태어난 새로운 얼굴들이 TV를 장식하고, 거리를 물들이고 있지만, 조금 다른 자리에서 82년생 누군가와 누군가는 묵은 시대의 어제와 오늘을 살고있다. 처음 들어간 회사에서 책상에 팔을 대고 내게 '재혁은 오구리 슌 닮은 것 같아'라고 말해주었던 OO선배, '꽃보다 남자'가 한창이던 그 시절의 어느 날, OO선배는 지금 어떻게 살고있을까. 오구리 슌의 최신 뉴스를 보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사카구치 켄타로의 사진집을 본다. 스다 마사키의 노래를 듣는다. 지난해 가장 많이 웃으며 본 드라마는 '오늘부터 우리는'이고, 거기엔 이토 켄타로와 타이가를 비롯, 야마토 유야, 마사키 레이야 등 90년대 생, 소위 헤세이 출생 배우들이 우루루 등장한다. 수염을 기르며 조금씩 아티스트의 길을 걷는 야마다 타카유키, 이상일의 영화, 지난 해 '우행록'에 출연하며 물씬 남자가 된 '워터 보이즈' 츠마부키 사토시의 소식은 종종 듣지만, 이들이 화사했던 90년대와 2000년대 초의 날들은 왜인지 오래 전 앨범 속 사진같기만 하다. 심지어 어느 늦은 밤 나는 유튜브를 떠돌다 급변한 나리미야 히로키의 사진과 만나기도 했다. 82년에 태어나 이미 서른 중반을 훌쩍 넘긴 나는 93년에 태어난 스다 마사키의 10주년에 흥분하고, 평균 나이 21살 밴드 odol의 라이브에 눈물을 쏟고, 아마도 띠동갑 정도 차이 날 남자와 이야기를 하며 커밍아웃을 망설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좋아하는 선배와 만나 다시 본 영화 '너의 췌장이 먹고 싶어'에서 내 맘을 울린 건 과거에 두고 온 '나(키타무라 타쿠미)'를 바라보는 '나(오구리 슌)'의 대목이고, 야마다 타카유키가 스다의 라디오에 나와 자신의 영화 '영화 야마다 타카유키 3D’를 '도호 6관'에서 개봉한다 소개할 때,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만개한 시절이 끝나고 흘러가는 시간들, 나리미야 히로키는 그저 몸이 몰라보게 늠름해졌을 뿐, 마약 남용으로 초췌해지지 않았고, 그는 종종 인스타그램으로 라이브를 하고, 지금 시대극을 촬영 중인 에이타는 어쩌면 사카모토 유지와 다시 한 번 '최고의 이혼'을 만든다. 714마일이나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는 그와 그의 이야기. 바보같이, 나는 그들에게 지나간 나를 느낀다.
나리미야 히로키는 의자에 웅크리고 있었다. 에이타는 내게 '일본어를 잘한다'고 말해 주었다. '나나'가 개봉하던 무렵, 나는 고작 1년차 영화 기자였고, 주어진 꼬마 인터뷰에 나리미야 히로키를 인터뷰하겠다고, '강하게' 얘기했다. 에이타를 만난 건 처음이기도했지만, 통역 도움 없이 진행했던 첫 인터뷰이기도 하다. 코엑스의 호텔, 인터콘티넨탈이란 이름의 두 개의 호텔. 아직 찬 공기가 여전한 3월 말, 나는 땀을 흘리며 두 호텔 사이를 방황했다. 조금 늦게 들어가 사과를 하며 바라본 방 구석엔 나리미야 히로키가 무릎을 감싸안고 있었다. 아직 일어나지 못한 밤의 자리같은 외로운 나리미야였다. 당시 그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조금도 기억나지 않지만, 13년 전, 그 곳의 그와 나는 82년생, 동갑이었다. 에이타와의 인터뷰에서, 영화와 연기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가는 가운데, 누가 먼저 나이 이야기를 꺼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나일 것 같아 부끄럽지만, 나는 그 해 부산에서 전혀 다른 생김새의 나를 만난 듯했다. 여전히 참아낸 시간, 버텨온 기억, 잊어버린 시절에 허덕이고 있는 나지만, 바다 건너 그들에게 나를 느낀다. 내팽겨치듯 떠나왔던 날들을 돌아본다. 가장 멀리 있고, 가장 가까운 82년생의 자리. 멀리있지만 곁에 있고, 곁에 있지만 멀리 있는 그들의 자리. 얼마 전 에이타는 자신의 트위터에 카네코 아야노란 여자 가수의 노래를 올려놓았고, 나는 이름도 생소한 1993년생 가수의 노래를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해 놓았다. 만개한 시절이 지나간 날들의 시간, 90년생 이케맨 배우 이케마츠 소스케가 부르는 10년 전 유이의 '체리'같은 시간. 나는 어쩌면 비로소 용기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