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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Jul 13. 2020

D를 생각하는 사람의,
이 시절을 사는 법

D&DEPARTMENT 디자인 활동가 나가오카 켄메이


호텔이 문을 연다. 거리를 두고 온라인에 숨어 대안의 라이프를 모색하는 요즘, 올 여름에 오픈하는 d-JEJU는 똑똑똑, 노크를 하고 찾아올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롱 라이프 디자인’을 이야기하기 시작해 20년, D&DEPARTMENT의 첫 번째 호텔이자 서울 점에 이은 국내 2호점. 창립자이자 디자인 활동가 나가오카 켄메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걸까. D&DEPARTMENT JEJU by ARARIO의 프레 오픈 1주일 후, 그와 랜선으로 인터뷰를 나눴다.


지난 5월 1일. 나가오카 켄메이는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하나 올렸다. ‘손님과 같은 사람들’이라는, 꽤나 수상한 제목이었다. 자꾸만 지연되는 오픈에 대한 사과가 담겨있을까 싶었지만, 조금은 아리송한 말들이 적혀있었다. “호텔같은 것, 가게같은 것, 음식점 같은 것을 만들면서, 손님같은 친구들과 함께, 그 지역에 오래 계속될 수 있는 훌륭한 것들을 미래로 이어가고 싶습니다.” 연기에 대한 미안함도, 미뤄진 오픈에 대한 이유도, 하물며 어떤 변명조차 적혀있지 않은 그 메시지는 보통의 호텔이라면 비난을 살지도 모르지만, 호텔이 아닌 호텔같은 곳에서, 손님이 아닌 손님같은, 그런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라면, 중요한 건 사과나 변명이 아닌 마음이고 진심이다. 호텔이 아닌, 호텔같은 것이 지금 제주에 문을 연다.



나가오카 켄메이는 국내에선 하라 켄야와 함께 무인양품으로 익숙하지만, 하라 디자인 연구소(原デザイン研究所) 설립 이후 그의 활동들은 디자이너라기보다 디자인 활동가란 이름이 더 자연스럽다. 무인양품을 통해 제기한 물건 가치에 대한 통찰을 넘어, 2000년을 앞두고 소비 중심 흐름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한 D&DEPARTMENT PROJECT(이후 D&D)는 올해로 20년을 맞이한다. 오래 지속되는 디자인으로서의 ‘롱 라이프 디자인’, ‘무엇을 만드는가’가 아닌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로서의 디자인. 일본 47개 도도부현을 일괄하는 로컬과 지역성으로서 매거진 <d-design travel>을 발행하고, ‘디자인 하지 않는 디자인’과 ‘가게의 커뮤니티화’를 통해 구현하는 그의 새로운 라이프 제안은, ‘롱 라이프 디자인’을 실천하기 위한 현재 진행형의 스텝들이다. 세상은 지금 로컬과 커뮤니티, 지속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가오카는 ‘그와 같은’ 이야기를 벌써 20년째 계속하고 있다. 조금은 더 느리고, 조금은 더 신중하게. 유행이 아닌 오래 지속되는 삶으로서, 트렌드가 아닌 계속 이어갈 수 있는 일상으로서, D&D의 ‘롱 라이프 디자인’이 움직인다. 

요즘같은 시절에, 갑자기 방향을 잃고 멈춰버린 일상에, 그의 D&D라면 무언가 이야기를 해주지않을까. 20년의 ‘롱 라이프 디자인’이라면 어떤 답을 갖고있지 않을까. 2000년 오쿠사와 스토어를 시작으로 2020년, 그 느린 디자인 라이프가 지금 제주에서 새로운 일상을 시작하려 한다. 


Q 이번 d-JEJU는 식당, 스토어, 뮤지엄 등 지금까지 해온 활동의 축적같은 느낌이 든다. 호텔은 D&D 초기부터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도 보았는데, 2020년 제주도에서 실현된 데에는 어떤 경위가 있나. 

나가오카: 호텔과 관련해서는 1997년에 디자인 회사를 시작하고 ‘D&MOTELS’라는 걸 했어요. 영화 <바그다드 카페> 영향을 받아서 한 건데, 숨어있는 듯 싶지만 방으로 장사를 하는 사람들처럼, 그런 형태의 호텔을 만들고 싶었어요. <디자인 현장>이라는 잡지에 4년 정도 관련 연재를 했을 정도로 정말 하고 싶었어요.(웃음) 이후 찬스가 없었던 건 아닌데 결국은 우리 돈으로 할 여유가 없었던 거죠. 그러다 아라리오 갤러리 쪽에서 제안을 주셨고, 사실 d-JEJU는 결과적으로는 호텔이 붙은 형태가 됐지만, 처음 구상엔 호텔이 없었어요. 일을 진행하다 ‘그럼 호텔도 할까?’ 뭐 그렇게 된 셈이에요.

Q 이야기한 것처럼 이번엔 아라리오 갤러리, 그리고 스키마 건축 계획(スキーマ建築計画)의 나가사카 죠 건축가의 힘을 빌린 형태가 되었다. 국경을 넘은 3사(社)와의 콜라보레이션인데.

나가사카: 아라리오 갤러리는 김(CI.KIM) 회장 님이 서울점에 우연히 오셨다가 제주도에도 있으면 좋겠다고, 지역에 오래 지속되는 것을 소개한다는 것이 마음에 드신다고 해서, 서울점 MMMG의 배수열 씨가 연결해준 게 두 회사의 시작이에요. 그리고 나가사카 씨는 2018년 제 첫 꿈에 나왔어요.(웃음) 좀 시시한 이야기지만, 이전부터 나가사카 씨를 알기는 했어도 같이 일을 한 적은 없었거든요. 근데 꿈에서 처음으로 만났고, 며칠 있다 가게에서 우연히 만났고, 거기서부터 시작됐어요.

Q 본 적도 없는 사람이 꿈에 나오다니.(웃음) 나가사카 씨는 ‘예정부조화(予定不調和)’의 디자인을 하는 사람으로 알려져있다. D&D의 ‘롱 라이프 디쟈인’과 어울릴 것 같으면서도서, 둘의 협업이 어떠했을지 궁금하다.

나가사카: 사실 이번 제주 프로젝트를 하기 이전에 다른 건축가와 일을 진행하고 있었어요. D&D 중국 지점 옆에 게스트하우스를 열자는 게획을 1년 정도 같이 헀어요. 하지만 작업을 하면서 그 분과 제가 만들고 싶은 호텔의 이미지가 다르다고 느꼈고, 사과에 사과를 거듭해 중도에 물러나주셨어요. 그리고 나가사카 씨랑 제주 프로젝트를 하게 된 거에요. 나가사키 씨에게 매력을 느낀 건 본인 사고 방식에 기반하지만 표현 방법을 자유롭게 바꿔가는 사람이란 거에요. 지금 얘기하신 것처럼, 예정부조화. 그것과 궁합이 매우 좋아서, 결과적으로 약간 스키마풍이 되었어요.(웃음) 나가사카 씨랑 회의하면서 수 십번이나 제가 한 말이 ‘그렇게 하면 스키마가 되어버리니까 관둬주세요’란 말이에요. 그래서 나가사카 씨가 제안한 게 D&D 50, 스키마 50. 기존의 스키마스러움이라면, 건물을 만들 때 함께 제작하는 선반이랄지, 가구를 통해 드러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엔 그런 게 일절 없어요. 만들지 않겠다고 해서, 그럼 우리가 D&D스러운 중고 가구를 넣자. 그렇게 진행했어요. 그러니까 이번 제주에서 스키마는 구조물로만 스키마다움을 표현한 거에요. 가구를 다 들어내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건축인거죠. 매우 재밌다 생각했어요.

Q 50:50이라고 해도, 스키마와 D&D 그 차이가 바로 느껴졌나.

나가사카: 역할 분담을 50:50으로 정하고 나서부터 매우 재밌어졌어요. 가구를 만들어주지 않겠다고 하는데, 그럼 우리는 무얼 어떻게 해야하나.(웃음) 호텔 방은 대부분 붙박이식, 호텔을 위해 만들어진 가구가 호텔스러움을 드러내요. 하지만 두 회사 모두 그걸 하지 않는다고 하면...(웃음) 물론 우리는 오리지널 가구를 다소 만들기도 하지만, 이번에 제주 호텔을 위해 만든 건 타올 정도 뿐이에요. 이번 d-JEJU의 호텔스러움은 새롭게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 나가사카 씨와 저, 그리고 D&D가 해왔던 것으로 통해 만들어간다고 느껴요. 



Q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D&D를 시작했을 당시 말했던 ‘우리는 책상을 파는 게 아니라 책상같은 것을 판다’는 메시지를 다시 언급했다. 20년이 지나, 그 말을 다시 돌아본다는 건 종래의 호텔에 대한 의문, 위화감이 있었던 건가.

나가오카: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무렵에 모두가 일제히 호텔을 목표로 하고 있었어요. 제주 호텔 절반은 (D&D) 서울점 MMMG 멤버가 하는데, 그들을 포함 모두가 호텔을 만들려고 했어요. 이대로라면 정말 그냥 호텔이 만들어져버릴 것 같은 위기감이 있었어요. 직영점을 운영하면서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이대로라면 그냥 가구점이 되버리니까 그만두자’라는 이야기에요. 가구점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니니까요. 그럼 어떻게 호텔처럼 보이지 않게 만들 수 있을까. 동시에 호텔로서의 기능은 제대로 충족시켜야 한다. 그런 이야기를 자주 나눴어요. 

Q 5월 1일, 블로그에 직접 공개한 글에 ‘~와 같은’이란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D&D가 물건에 대한 재인식에서 출발해, 가게의 커뮤니티화를 만들고 움직였다면, 이번 호텔에 관해서는 그 재인식의 범위를 물건 뿐 아니라 사람, 사람과 사람, 그리고 관계를 비롯 삶의 여러 장면으로 이어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게 D&D가 시작하고 20년이라는 시점에서 일종의 선언처럼도 들렸다. 

나가오카: 그렇게 이해해주니 매우 기쁜데요. 지금은 세상이 변해서 옛날 사람처럼 부자가 되서 좋아하는 것 사고 좋아하는 라이프 스타일 만들기보다, 어떻게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가지고, 지역과 이어짐을 만들어갈까를 중시한다고 생각해요. 호텔로 이야기하면, 역시나 경제 성장의 산물처럼 생겨난 부분도 있는데, 앞으로의 호텔은 그냥 호텔이 아니라 ‘호텔같은 것’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예전 방식으로 계속 해가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저는 크게 느껴요. ‘~와 같은’이란 말은, 앞으로 활동을 넓혀감에 있어, 2020년부터 2040년까지 지금까지 있었던 것을 파괴해 좀 더 좋은 형태로 만들어가는, 새로운 가치관을 창출하는 시대를 향한 시작점이라 생각해요. 

Q 공개된 자료를 보면 확실히 기존의 호텔은 아니라는 인상을 받는다. 당연히 받을 수 있는 어메니티를 지금부터 사용할 물건을 골라 사도록 한달지, 관내의 사인이나 주의 사항도 일부러 적지 않는달지. 호텔같은 호텔이라고 할 때, 메시지는 멋있어도 실제로 무엇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는 험난한 작업이었을 것 같다.

나가오카: 작은 것 하나, 하나를 정할 때도 많은 논의를 했어요. 이번 제주 호텔엔 방에 번호가 없어요. 보통은 301호라고 방에 써있지만 우리는 방에 번호가 붙어있지 않은 호텔을 목표로 했어요. 그건 ‘우리집’과 같은 상태를 목표로 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에요. 그래서 3층에 무엇이 있는지 적어놓은 사인이 일체 없어요. 손님들이 현과 앞에 놓여있는 가구랄지, 방으로 들어가며 근처에서 보는 무언가를 눈으로 기억하고, ‘빨간 큰 소파 방’처럼, 그냥 그렇게 부르는 게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물론 스태프들은 10명 중 10명 운영상으로 너무 힘든다고 말해요. (웃음) 알았다. 그건 알았지만, 일단 해보자는 게 지금 상황이에요. 영 잘 되지 않으면 1주일 후 번호가 붙을 지도 몰라요. 그런 실험을 하고있어요. 



Q 사실 큰 호텔에 가면 방 번호를 알아도 찾지 못해 헤맬 때가 있기는 하다. 오히려 같은 방을 두고 서로 각자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하지만 시간이 흘러 왜인지 통하는 상황이 만들어진다면, 매우 재미있을 것도 같다.

나가오카: 우리는 ‘호텔에 머무니까 당연히 이런 서비스가 있어야 한다, 이런 걸 해주세요’라는 말을 듣는 게 싫어요. 그러면 점점 평범한 호텔처럼 운영하지 않으면 안돼요. 그래서 저희는 앞으로도 ‘이건 호텔이 아니다. 호텔같은 것이다. 손님같은 것이고, 우리도 그렇다’고 말해나가고 싶어요. 그렇게 함으로서 보통 호텔이 할 수 없는 서비스를 만들어갈 수 있다 생각해요. 이건 교토의 ‘이치겐상 코토와리(一見さんお断り)’란 말에서 온 방식이기도 한데, 모르는 사람은 가게에 들이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이에요. 철저하게 손님이 아닌 친구가 되어서 보통은 절대 불가능한 호텔의 방식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해요. 

Q 사람들의 의식 변화를 이야기하면, 근래엔 물건 소비를 넘어 경험하고, 공유하는 지형으로 패턴이 넘어가고 있다. 서스태너빌리티, 크래프트맨십, 로컬 등의 말들을 생각하면, 어쩌면 시간에 가장 민감해진 시대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 안에도 조금의 위화감이 있어, 로컬을 이야기하지만 도심의 냄새가 나고, ‘소비’에서 ‘경험’이란 키워드 조차 마케팅 전략처럼 쓰여진다. 얼마 전 다른 인터뷰에서 앞으로는 다시 ‘코토(コト, 경험)’에서 ‘모노(モノ, 물건)’로 가치가 역전할 거라고 이야기했는데, 그건 어떤 변화를 의미하는 건가. 생각해보면, 옛날엔 의식하지 않아도 ‘모노’가 ‘코토’가 됐고, 근대에 넘어와 ‘모노’에 집착한 나머지 대량 생산이 남발됐고, 지금은 그에 대한 반성으로 ‘코토’를 이야기한다. 반면 ‘코토’에 너무 빠져 ‘모노’를 잊어버리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느낌도 든다. 

나가오카: 매우 잘 통찰하고 있네요.(웃음) 지금 이야기한 걸 제가 거의 매일 생각해요. 일본에서는 ‘모노’의 사이클이 20년 주기로 돈다고 해요. 세계적으로도 비슷하지 않나 싶은데, 저희의 테마는 처음부터 시간이었어요. 사실 디자인 교육 현장에서 시간을 메인으로 한 교육은 일절 없어요. 에전에 대학에서 그런 디자인 의식을 가르치는 수업을 했는데 4년을 채우지 못햇어요. 시대는 언제나 ‘만들어내자’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해요. 지금은 그게 단지 ‘코토’로 바뀌었을 뿐이고, 역시나 ‘만들어내자’, ‘만들어내자’, 그렇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는 게 사람 본성이에요. 그럼 그걸 어떻게 바꾸어갈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다시 한 번 ‘모노’로 돌아갈 거라고 느끼는 거에요. 만들기는 하는데, 어떤 스피드로 만들고, 어떤 방식으로 사용할 것인가. 앞으로 저희가 지향하는 테마는 ‘얼마나 시간을 느리게 할 것인가’에요. 밥 먹을 때 ‘느긋하게 드세요’같이. 조금 전에도 ‘제대로 씹고 먹으라고’ (스태프한테) 주의 받았어요.(웃음) D&D로서는, 대형 가게는 점점 줄이고, 좀 더 작은 가게로, 손님과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영업 시간 중 문 닫고 손님과 같이 외출하거나, 영업 시간을 갑자기 바꾸어도 문제가 되지 않을, 그런 게 가능한 ‘시간형 모노’에 집중한 활동을 할 거라고 생각해요. 



Q 그런 맥락에서 얼마 전 블로그를 통해 ‘모노노마와리(물건의 주변, モノのまわり’란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다섯 개의 시점(산지, 사용하는 사람, 수리해 사용하다, 4계절을 즐기다, 배경의 산업, 업게를 알다)으로 ‘모노’를 이야기하는 기획인데, ‘모노’에서 ‘코토’를 이야기하기 시작한 지금, 이 시대에 대한 나가오카의 메시지처럼도 들려온다.  

나가오카: ‘모노’, 그리고 ‘코토’ 사이에서 사람들이 ‘코토’로 가기 시작했을 때, 저는 역시 ‘모노’가 중심이라고 느껴요. 일본인은 ‘모노’에 영혼이 머문다는 사고 방식을 매우 선호하는데, ‘모노’는 무언가를 드러내는 존재로서 바라보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모노’에 대한 성찰, ‘모노’가 자리하고, 주변에 ‘코토’가 함께하는, 그런 상태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진다고 생각해요. ‘모노’와 ‘고토’가 합체된 듯한 상태? 그런 걸 어떻게 표현해 갈 수 있는지 고민에 고민을 하다 태어난 말이 ‘모노노마와리’에요. ‘무인양품’처럼 상품화하고 싶을 정도의 말이기도 해서, 그런 상태? ‘코토’도, ‘모노’도 아닌 상태를, 좀 더 흥미있게 파고, 넓혀가고 싶다고 생각해요. 

Q 이번 제주 호텔에는 d-news란 섹션, 공간이 마련되었다. 안내 글에 콘텐츠를 가진 사람들이 그곳에 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적었는데, 전통적인 ‘모노’는 아니지만, 앞으로의 생산자, 앞으로 전통이 될 무언가를 위한 준비의 장처럼도 느껴졌다. 이름도 news다.

나가오카: 하하하. 이런 재밌는 질문은 처음 들어요. 이건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는데, 그건 사실 아무 이름이나 상관 없었어요. 말하자면 D와 같은 것. D와 같은 것이라고 하면 말이 이상하지만, 우리는 너무 D&D화 되어버렸기 때문에, 앞으로는 D&D가 아닌 D와 같은 걸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우선 ‘D와 같은’이란 전제가 있고, 콘셉트는 ‘롱 라이프 디자인’이고, 알맹이는 텅빈 상자나 마찬가지에요. 여러 ‘롱 라이프 디자인’이 될 수 있을 만한 것, 혹은 계승해나갈 만한 것, 그런 이어짐이랄지, 기술이 들어갈 ‘텅 빈 상자’를 이미지화했어요. 그게 뭐가 될지는 잘 모르지만, 일단 d-news가 됐죠. 그래서 처음엔 제주 호텔도 d-news라 불렀고, 지금 d-room이라 이름붙은 방들도, D&DEPARTMENT JEJU by ARARIO도, 본래는 그냥 뉴스였어요. 모두가 그래서 ‘d-news는 뭔데?’라고 했지만(웃음), 그런 뿌연 그림을 함께 공유한 게 좋았어요. 

Q 사실 d-news 이야기를 보고 근래 공유 스페이스와 같은 걸까 생각했다. D&D의 지금까지의 활동들은 뉘앙스는 달라도, 최근 사회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흐름들과 교차하고 접점을 갖고 움직이는 듯한 인상도 받는다. 20년 전 시작된 순수한 이념이 사회와 접점을 가져간다는 게 일면 놀랍고 대단하다. 

나가오카: 사회와의 접점은 물론 의식해요. 예를 들어 저희가 만드는 <d design travel>이란 잡지 표지 가장 아래에는 D&DEPARTMENT라고 써있어요. 그걸 이제는 없애려고 생각하는데, 저희를 알리기 위한 최소한의 무언가는 필요하다고도 느껴요. ‘롱 라이프 디자인’을 앞으로 더 해가려면, 역시 사회와의 접점은 필요하고, 그런 의미에서 ‘롱 라이프 디자인’을 활용하면서 그 상징이 D라고 전하는 활동을 계속 해가지 않으면 안돼요. D&D를 모르고 태어나는 사람들은 앞으로 점점 늘어날 거기 때문에, 활동에 대한 의식을 제로로 설정하고 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Q 이건 좀 창피한 이야기지만, 처음 D&D의 D는 Design의 D라고 생각했다. 그게 가장 먼저 독립해 만든 회사 Drawing manual, Drawing의 D란 걸 알고 개인적으로 충격을 받았는데, D란 글자에 대한 감각에 변화는 없나.

나가오카: 예전부터 긴 이름을 지우고 싶은 마음은 매우 컸어요. 언젠가 D라는 첫 글자만 남기고 지워버리자. D&D를 아는 사람들은 알아보고, 모르는 사람은 그저 D라고 부르고, ‘그거 뭐야’라고 하는. 일종의 지도 안에 기호처럼 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롱 라이프 디자인’, 오래 지속되는 훌륭한 것을 의미하는 심볼로서의 한 글자. 모두가 그러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암호(合言葉)같은 상태로 만들고 싶은데, 아직은 긴 이름이 남아있고, 어떻게 하면 사라질 수 있을까 생각해요.(웃음)

Q 그런 의미에서 이번 d-JEJU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나. 단순한 이야기지만, 일단은 기존의 가게, 뮤지엄이 길어도 수 시간이었던 것에 비해, d-JEJU는 일단 호텔의 형태이니까 짧아도 1박이다.

나가오카: 코로나 바이러스 탓에 아직 가보지 못했는데, 어쩌면 아얘 가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도 해요.(웃음) 제주는, 그저 D&D를 일본에서 봐온 한국 사람이 서울에 그 사상을 바탕으로  ’롱 라이프 디자인’을 확장하는 미션을 해왔고, 그걸 본 제주도 사람이 제주에 D&D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D&D 사상을 제주에 가져온 거에요. 그래서 오히려 ‘나가오카 스타일’은 약간 방해랄까요. 최종적으로는 제가 지시하는 게 아니라, D&D 자체가 다음 페이즈로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D&D란 사상 만이 수출되어서 일본인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이 같은 사상의 활동을 하고, 제공하는 식의 상태가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역으로 제가 일찍 죽어버려서, D&D에 관한 질문을 던져도, 답할 수 없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 오히려 재밌지 않을까도 생각해요. (웃음)

Q 여름 오픈이면 d-JEJEU는 본래 예정보다 6개월 정도 뒤늦게 문을 연다. 예정되로 움직이지 못했던 6개월의 시간은 어떤 날들이었나.

나가오카: 가장 힘들었던 건 현장에 갈 수 없다는 것. 호텔 마무리, 최종 체크도 하지 못한 채 오픈을 해야하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매우 좋았다고 생각하고 기쁘다고 느껴요. 지금까지는 모두 나가오카란 사람의 필터를 통해 D&D를 만들어왔는데, 이번엔 모든 걸 모두에게 맡기는 작업이기도 했어요. 전 완전히 운명론자라서, 꿈에 나온 사람과 일을 할 정도로 운명을 믿는 사람이어서(웃음), 코로나 사태는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이 타임랙(time-lag) 안에서 많은 걸 다 해야할 때, 모두에게 맡기는 방식을 택했고, 그건 구체적 지시가 아닌 D&D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고 상상하고, 그렇게 표현한 게 지금의 d-JEJEU에요. 호텔에 묵은 사람들의 반응을 아직 듣지 못했는데 그 반응 하나, 하나가 ‘나가오카와 같은 사람’이 만든 호텔이기 때문에...(웃음) 기대가 돼요.

Q ‘~와 같은’, 그게 이미 실현됐다. (웃음) 마지막으로 질문하면, 근래 코로나는 일상의 많은 걸 변화하게 한다. 생활 자체가 방황하는 시기이기도 한데, D&D적으로, ‘롱 라이프 디자인’적으로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나가오카: 창업 이념 중 하나가, ‘휩쓸려 묻혀버린다면 필요로 해주지 않는 것이라 이해하자’에요. 가장 싫어하는 게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데 노력해버려서 계속해가는 것. 세상에도, 자연계에도 좋지 않아요. 코로나도 하나의 자연이랄까, 실제 벌어진 현상으로서 그에 의미없이 무리하게 저항하지 말고 받아들이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손님이 D&D가 없어서 곤란하다, 계속 있어주면 좋겠다고 말해주면 이어갈 수 있을 거에요. 코로나로 망한다면 ‘어쩔 수 없다, 필요로 해주지 않았았구나. 아리가또’ 그럴 거에요.(웃음)

Q 그렇게 이야기해도 강한 의지처럼 들린다.

나가오카: 무리를 하면 결국은 부하가 생겨요. 무리하지 않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의 희미하지만 확실한 그림을 생각하며 스태프 모두 감사하면서 손님들과 계속 함께 하고 싶다고 생각해요.

Q 이런 시절에 리모트 취재, ‘인터뷰와 같은 것’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다.

나가오카: (웃음) 즐거웠습니다.



프레 오픈을 일주일 앞두고 나가오카 켄메미의 블로그엔 또 하나의 글이 올라왔다. 이번엔 무려 ‘리모트 설비’란 타이틀의 글이었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여전히 제주도에 가지 못한 나가오카는 결국 가구의 배치, 간판의 위치 등등등을 리모트로 진행하는 사태에 도달했다며, 화로형 난로를 라운지 창가에 설치한 과정에 대해 적어놓았다. “가구를 놓아보고 바라보고, 바꿔본 뒤 휴식을 취하고, 낮밤 가리지 않고 이쪽으로, 저쪽으로 바꿔보고”, 나가오카는 이러한 배치의 미묘함이 d의 개성이라 이야기했는데, 글을 읽는 시간이 잠시 그곳을 바라보는 듯 느껴졌다. 그곳에 없지만 그곳의 시간을 함께하는 것. 발길이 묶인 지금 사람들은 랜선을 타고 미술관에 가고, 영화를 보고, 술을 마시고, 회의도 하지만, 그건 이미 나가오카가 이야기하는 ‘~와 같은’ 일상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소비에서 경험을 이야기하지만 1, 2년 사이의 깨달음이고, 커뮤니티를 말하고 있지만 전염병 하나에 산산히 흩어진다. 하지만 ‘~와 같은’이란 말은, 아직 또렷이 다가오진 않지만 남아있는 무언가를 떠올리게 한다. 오지 않은 내일을 생각하게 하고, 지금과는 다른 너와 나를 상상하게 한다. ‘스키마’ 식으로 이야기하면, 나가오카의 D는 예측불가능을 디자인한다. ‘롱 라이프 디자인’, 20년째 바래지 않는 이 말은, 어쩌면 지금의 고비를 넘어가는 가장 먼 지름길이 아닐까. D의 라이프가 시작하려 한다.



*싱글즈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분량 조절 전, 편집 이전 버전으로 올립니다.


©️ D&DEPARTMENT PROJECT, ナガオカケンメイ 블로그 https://note.com/nagaokakenm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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