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에 해당 될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건 어떤 하루의 문장일까. 마감이 쌓이고 쌓여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때엔 나도 그런 말을 무심코 수 십 번은 흘렸던 것 같은데 그 때의 나는 무슨 말이 하고 싶었을까. 얼마 전 뉴스에서는 일본에 사람들이 꺼려하는, 하지만 하고 싶은, 혹은 해야하는 일을 대신 해결해주는 서비스업이 생겨났다는 소식도 들렸는데, '세상의 이런 일이'식의 이야기엔 별로 관심이 없다. 혼자서 살다보니, 정확히 혼자가 되고보니 별 거 아닌 우연들이 가끔 무언가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고, 소위 '집콕에서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에세이로 쓰게된 요즘, 갑자기 눈에 띄는 '렌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이야기는 관심을 안가질 수가 없다. 방 꾸미기에 관해 이야기를 풀까 생각하다 침대에 누우면 어느 여자의 DIY 영상이 올라오고, 마음이 조금 더 찌뿌둥할 때엔 '유즈'의 오래 전 PV가 떠, 가라오케 포맷으로 만든 촌스러운 영상이 떠 야밤에 혼자 놀라기도 하고, 파스타로 검색한 게 언제라고 하야미 모코미치의 요리 채널이 매일밤 식욕을 돋군다. 새로 시작하는 책 한 권의 한 챕터를 마치고 불안한 맘에, 잠이 좀 길게 늘어져버렸다. 12시를 눈앞에 두고,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말아보자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실존 인물이다. 오사카 대학 물리학부를 졸업했고, 애가 하나 있는 애아빠고 1981년생이니 나랑 멀지도 않은 세대고,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된 건 여느 샐러리맨들이 겪는 일과 관계의 부대낌, 좀처럼 섞이지 못하는 내향적 인간의 말못할 속사정, 뭐 그런 나날이 폭발할 지경에 달하고 난 뒤의 이야기인 듯 싶지만, '렌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란 이름으로 트위터 계정을 만들고, 한 사람, 두 사람, 의뢰를 받으며 그 곁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그의 지금은, 어떤 퇴사자와도, 어떤 방에 틀어박힌 사람과도, 어떤 게으름뱅이와도 전혀 다른 일상을 그린다. 이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그는 꽃놀이 돗자리 자리도 대신 맡아주고, 맛집 대기표도 대신 받아주고, 꿈을 갖고 상경했지만 실패한 여자의 마지막 도쿄 타워로 오르는 길도 함께한다. 이만큼 말과 행동이 다른, 모순의 인간형이 또 어디 있을까 싶지만, 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드라마를 보며 어쩌면 내가 무심코 내뱉었던 말들의 속내와 마주친다. 렌탈 씨에 의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건 '주관적'이고, '케이스 바이 케이스'고, 그걸 판단하는 건 '렌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본인. 한 인터뷰를 보니 '싫은 걸 마지못해 끄적이는 것보다 깔끔하게 끝내버리는 게 좋을지 몰라요'라도 했던데, 앞날은 잘 모르겠고,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말자'고 다짐하는 순간, 그 때만큼 가뿐한 아침은 없고, 그만큼 가장 나를 마주했던 날도 없다.
렌털하는 물건에 관한 애정은 생기지 않는다. 렌털하는 집에 애착은 2년, 혹은 3년짜리고, 리스 차는 면허도 없으니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렌털하는 인생은 내가 사는 현실보다 훨씬 가벼울지 모른다. 어린 아이 때문에 외출이 힘든 여자와 함께 레스토랑에 들어가 비프 스튜를 먹으면서 갑자기 울어제치는 아이를 달래느라 허둥대는 의뢰인을, 그는 도와주지 않는다. 도쿄 타워 입장권 성인은 1200엔이나 하는데 계산대 앞에서 핸드폰이나 보고있다. 유모차에, 가방에 짐 때문에 버스를 놓치는 주부 의뢰인을 보고도 멀뚱멀뚱 미동도 없다. 하지만 사람인지라 계단을 오르지 못해 낑낑대자 유모차의 한 쪽을 잡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가끔 난처해질 때가 있어요"라고 이야기한다. 필요한 시간에 필요한 용무만 필요한 만큼 해주는 사람. 가장 최저한의, 최소한의 관계가 오갈 뿐인데, 도전하지 못했던 여자 혼자 무제한 야키니쿠는 성공하고, 늘 셋이 어울리는 탓에 속내는 말하지도 못한 채 휘둘리던 여대생은 렌탈 씨 앞에서 처음으로 원하는 생일 파티를 즐긴다. '렌탈'이란 말은 분명 돈 냄새가 나고, 차갑고, 매정하지만, 불필요한 관계가 소거된 자리에서 생겨나는 다소 사무적일 것 같은 그림은 왜인지 더 일상,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의 품이다. 드라마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을 통해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걱정, 나도 모르게 하게되는 실례, OO하려 했는데 XX가 되버리는 오해란 이름의 일상을 멀리서 바라보려 한다. 가장 중립적인, 객관의 자리에서의 이야기랄까. 주인공은 매번 의뢰가 올 때마다 대부분 '了解です, 짤막하게 알겠다고 답하고, 그의 일상은 이미 세 권의 책, 드라마로 계약이 되었는데, 그 때도 트위터에 같은 달랑 한 문장의 답을 했을까. 그리고 블로그에 글을 쓰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에 해당될까요. 되지 않을까요. 드라마 하나 보려 했는데, 달랑 렌탈 서비스에, 삶을 사색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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