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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Jun 25. 2019

have a book night

어제를 바라보는 책방, 백 투 더 퓨쳐 도쿄.


일본의 복합 서점 체인 ‘츠타야’가 지난 2월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 점의 문을 닫았다. 같은 해 6월 록뽄기 ‘아오야마 북 센터’가 폐점 소식을 알렸다. 한 달 뒤 1980년 오픈한 키치죠지 ‘파르코 북 센터’가 38년이란 긴 시간에 마침표를 찍었고, 올 3월부터 지금까지 ‘츠타야’가 문을 닫은 점포는 전국 평균 10곳에 이른다. 30년의 시대 ‘헤세이(平成)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 레이와(令和)가 떠오르는 지금, 도쿄의 풍경이다. 남아있는 서점이라 해도 모습들은 어딘가 수상해 100여 년 전통의 ‘키노쿠니야(紀伊国屋)’ 신주쿠는 지난 해부터 카페를 겸업하고, 3대 대형 서점이라 불리는 마루젠(丸善)과 쥰쿠도(ジュンク堂)가 잡화를 취급하기 시작한 건 이미 오래 전 일이다. 국내에선 츠타야 다이칸야마 지점 T-Site의 세련되고 버라이어티한 모델이 책방의 내일처럼 비치기도 하지만, 지금 일본은 매일 3개의 책방을 잃고있다. 지하철엔 문고본 대신 스마트폰을 손에 쥔 사람들이 눈에 띄고, 책방 혹은 편의점에 서서 타치요미(立ち読み-사지 않고 서서 책을 읽는 것)하는 행위에 대한 자제의 목소리도 불거지는 요즘이다. 2020 올림픽을 앞에 두고, 시대와 시대가 오고 가는 길목에서 도쿄의 책방은 사라지고, 최소한 어제의 책방이 아니다. 헤세이 마지막 밤, 신주쿠 카부키쵸의 이름도 요상한 책방 ‘Book and Bed’에 짐을 풀었다 .

book and bed shinjyuku(左) 'kapsel', 前谷開(右)


신주쿠와 책방은 어울리기도, 어울리지 않기도 하는 묘한 관계에 있다. 관광객의 현관이자 유흥가와 도청을 비롯 고층 빌딩들이 혼재하는 그곳은 무엇도 별 위화감 없이 섞여 공존하는 거리이다. 93년의 역사를 지닌 ‘키노쿠니야’ 본점이 신주쿠도리(新宿通り) 길변에 여전히 건재하지만, 그곳을 가리키는 암묵적인 대명사는 동양 최대의 환락가 ‘카부키쵸’이다. 하지만 최근 기세로 점포를 확장하고 있는 부동산 회사 R-Store가 ‘Book and Bed’의 다섯 번째 점포를 신주쿠 카부키쵸에 오픈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and 이후의 자리, 잠자리의 시간이 카부키쵸의 밤과 무리없이 스쳐갔다. ‘Book and Bed’ 신주쿠는 걷는 내내 스마트폰 지도 어플을 보지 않으면 찾지 못할 정도로 골목 구석에 숨어있고, 고작 엘레베이터를 타고 8층에 도착했을 뿐인데, 방금 전과는 전혀 딴판인 데시벨의 공간을 품고있다. 러브호텔이 즐비한 거리의 핑크빛 밤과 책에 둘러싸인 호텔의 오렌지 빛 밤. 공간을 계획한 R-Store의 리키마루 사토시 부장은 ‘신주쿠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 공간의 빛을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천장을 장식한 미러볼과 흐릿하게 깔리는 오렌지 빛은 분명 어딘가 카부키쵸 뒷골목과 닮아있다. 이곳은 숙박과 시간별 이용이 모두 가능하고, 책을 서서 읽거나 앉아서 읽거나, 방에 가져가 보다 잠들어도 무방하다. Book이 아닌 책 그리고 무엇. ‘Book and Bed’를 설명하는 건 ‘독서 확장’과 ‘숙박 확장’이고, 카부키쵸에는 잠이 오지 않는 밤도, 자고 싶지 않는 밤도 흘러간다. 


책방이 돈을 주고 책을 사는 공간이라면, ‘Book and Bed’는 책방이 아니다. 모두 1천 여 권의 책들이 진열되어 있지만, 여기서 구매할 수 있는 책은 한 권도 없다. ‘Book and Bed’는 책을 사러 가는 가게가 아닌, 책을 읽으러 가는 곳에 가깝다. ‘잠을 자러 간 호텔에서 자고 싶지 않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 때 최적인 게 책이라 생각했고, 그냥 책을 진열 하는 건 재미없으니까 독서’에 포커스를 두었다’고 리키마루는 말한다. ‘Book and Bed’엔 침대가 책장 선반과 선반 사이 숨어있고, 책을 읽을 때 보통 떠올리는 테이블이 아닌 천장까지 이어지는 계단을 책들이 채우고 있다. 리키마루가 일하는 R-Store는 부동산 회사라고는 하지만 ‘삶을 디자인하고, 셀렉팅한다’를 모토로 삼고있는, 조금 세련된 부동산이다. 책방은 이제 책을 사고 파는 행위가 아닌 책과 함께 하는 시간으로 거리를 채우는 도쿄의 아침 혹은 점심, 아니면 밤의 공간이다. ‘앉아서 책을 읽는 것만이 독서가 아니다’는 리키마루의 말은 얼핏 꽤나 도발적으로 들리지만, 실은 책은 이미 오래 전부터 거실 소파 구석에, 화장실 선반에, 침대 머리맡에도 있었다. 로비에 들어서면 눈을 가득 채우는 천장의 만화 ‘Akira’의 페이지 수 백 장은 그저 멋진 장식으로 보여도, 눈과 머리가 아닌 몸과 피부로 느끼는 독서도 어쩌면 존재한다. 구석 창가에 홀로 두 발을 길게 뻗고 잡지를 넘기던 여자, 계단 중앙에 앉아 책과 함께 숨어버린 노란 머리의 남자, 미러볼 아래 유독 혼자인 듯 보였던 꽤 잘 생긴 남자. 4월의 마지막 날. 밤은 아직 오지 않았다. 



밤에 시작되는 거리, 불이 꺼지지 않는 카부키쵸에 ‘잘 수 있는 호텔’ ‘Book and Bed’은 사실 위화감 그 자체이기도 하다. 호텔이 들어서있는 건 흔한 상업 빌딩 8층이고, 바로 위엔 야키니쿠 가게, 근처엔 파친코가 자리한다. 그곳에서 책을 펼친다는 건 거의 초현실에 가까울지 모른다. 하지만 카부키쵸에도 어김없이 혼자의 시간이 있고, 그곳에 컬쳐가 태어나는 건 사람 한 명 한 명의 발걸음이 쌓인 덕분이다. ‘Book and Bed’의 책 셀렉션을 담당한 시부야의 서점 SPBS의 후쿠이 세이타 대표는 ‘카부키쵸라고 해도 혼자서 오는 사람들이 있고, 잘 수 있는 호텔, 릴랙스 할 수 있는 책들을 의식했다’고 말한다. ‘Book and Bed’에 매일같이 쏟아지는 신간의 스피드는 없고, 잡지의 과월호들, 만화 전편에 담긴 시간의 무게, 동네 서점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비쥬얼의 디자인 서적들이 기분 좋은 밀도를 채운다. 교토, 오사카에 이어 세 번째로 ‘Book and Bed’ 신주쿠에서 일하는 미카는 ‘점포별로 책들이 다 다르고, 좀처럼 보기 힘든 책들이 있어 오는 재미가 있다’고 밤 12시를 넘긴 카운터에서 커피를 내리며 얘기했다. 시끄럽고 복잡한 건 그만큼 다양함이 존재하기 때문이고, 카부키쵸의 밤, ‘Book and Bed’의 밤엔 너와 나의 서로 다른 밤이 스쳐간다. ‘카부키쵸라고 해서 모리야마 다이도(森山大道) 사진집 같은 것만 가져다 놓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카부키쵸, 신주쿠란 거리의 컬쳐를 조금 다른 문맥에서 이해하고, 표현하려고 했죠.(후쿠이 세이타)’ 좀처럼 변하지 않는 신주쿠의 복잡한 밀도와 풍경 속에, 책방은 흘러가는 시간을 잊고 책과 책 사이에서 내일을 길어낸다. 1980년 창간한 잡지 ‘브루타스’의 초창기 백넘버가 책장 하나를 채우고, 나카야마 마사라(中山正羅)의 사진집이 책장 중앙을 차지하는 그곳에서, 2012년 12월 발매된 ‘미술수첩’을 들고 방에 불을 껐다. 그곳의 와이파이 비밀번호는 Have a book night이다. 


*'한겨레21'에 '일본 서점 기행'으로 기고 중인 글 중 한 편입니다. 편집으로 넘어가기 이전, 제 손을 떠나기 직전의 초고입니다. '한겨레21'에 게재된 버전은 링크 안에 있습니다.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712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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