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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Sep 06. 2019

책방은 책방이라 책방이다(1)

책을 사러 갈 때 우리는, 쇼핑을 한다고 왜인지 말하지 않았다.


책이 사라질 듯 암운이 짙게 퍼지던 시절. 인터넷 서점이 난립하고, 아마존이 전 세계 유통 시장을 선점하고, 오래된 책방들이 하나둘 문을 닫던 시절, 책방은 가장 오래된 단어가 되어버렸다. 국내에선 중소 규모의 책방들이 하나둘 장사를 접고,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디지털과 SNS의 활황 속 사양 길에 접어들며, 책방은 내일을 잃은 체념 어린 말이 되었다. 심지어 독서 강국이라 불리는 일본 도쿄에서조차  하루 평균 세 곳의 책방이 폐점한다는 소식이 쓸쓸히 들려온다. 50년 전통, 3대, 4대 이어가는 책방들이 무력하게 두터운 세월의 문을 닫고있다. 하지만 책방은 왜인지 책방이라, 중국이 지금이 수선하고, 도쿄가 다시 활발하고, 대만이 어느새 활기차다. 오늘에 밀리고 내일에 치이며, 어김없이 어제가 되어가는 시간 속에 책방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때로는 책방을 지우고, 때로는 책방을 넘어, 거리에 수상한 그림이 그려진다. 중국과 일본과 대만과 말레이시아, 그리고 여기와 저기의 어쩐지 서로 닮은 이야기. 책방은 왜인지 책방이라 책방이다.

침체에 빠진 하수상한 시절 속 책방이 연일 문을 여는 곳이 있다. '중국 문화의 고향'이라 불리는 산시성 시안 시는 지난 해에만 책방이 두 배나 늘어 무려 2000곳을 넘겼다. 서울 보다 조금 적은 900만 정도의 인구를 가진 도시가 하루에 두 곳 꼴로 새로운 서점을 오픈한 셈이다. 숫자도 어마어마한데, 하나 하나 규모도 대륙의 풍모를 닮아, 지난 해 시안 시 마이커 센터에 오픈한 엔지요우(言几又)는 1400평 규모에 13만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마주하는 건 2층까지 연결된 장대한 책장, 수 십개의 선반을 가득 메운 13만 권이란 숫자의 압도적인 그림이다. 6m에 달하는 이 책장에 대해 서점 관계자 왕 웨이는 '꼭대기는 위험하기 때문에 두 단은 그림으로 장식했고, 나머지는 모두 진짜 책이다'라고 말했다. 다소 우습게 들리기도 하지만, 이곳에선 서점이 죽어간다는 말이 오히려 죽은 문장이다. 엔지요우의 시안 지점은 일본의 체인 서점 츠타야의 다이칸야마 T-SITE'를 디자인 한 이케가이 토모코가 작업했고,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라고도 불린다. T-SITE와 유사하게 카페와 바(bar), 그리고 전시 공간을 겸하고 있다. 2006년 사천성에서 시작돼 중국 전역 60곳에 점포를 갖고있는 엔지요우의 시안 지점. 서점이란 이름의 그림은 이미 어제를 크게 벗어났다.


2006년 정부 주도로 시작된 전민열독(全民閲読) 운동, 매년 500~600곳 씩 늘어나는 대규모 쇼핑몰, 그 속에 기생하며 태어나는 대형 서점. 지금 중국 서점의 성황을 설명하는 건 이렇게 다소 부자연스럽고 경직된 정부 주도 움직임이다. 여전히 검열과 허가제가 유효한 탓에 책장이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 일도 있고, 이러한 빈 칸들이 오히려 지금의 중국 책방을 설명하는 더 유효한 그림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풍경은 어렴풋이 도쿄, 타이페이, 그리고 서울의 책방과 자연스레 어우러진다. 책만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남겨두는 '여백의 공간', 팔고 사는 행위를 넘어 머무르며 함께 하는 '관계의 공간', 이미 신선함이 휘발된 '제품 소비에서 경험 소비로의 전환'이란 말의 현장은 중국에서 압도적인 규모로, 가장 약동적인 운동으로 팽창하고 있다. 2010년 사천성 청두에 복합형 서점을 처음으로 오픈한 엔지요우의 CEO 단 지에는 '이제 더이상 서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픈 당시 그곳은 매장의 30%에만 책을 진열했고, 나머지 공간을 커피, 그리고 라이프 스타일 제품으로 채웠다. 츠타야가 도쿄 다이칸야마에 생활형 복합 서점 T-SITE를 오픈하기 1년 전의 일이다. 이에 더해 2017년 11월 베이징에 오픈한 싱가폴의 체인 서점 Page One은 50m에 달하는 책장으로 화제가 됐다. 이곳은 베이징에서 가장 처음으로 24시간 영업을 시작한 곳인다. 현재 베이징엔 24시간 문을 닫지 않는 책방이 90 곳이 넘고, 기억을 더듬어 보면 2000년대 후반 타이페이의 청핀서점이 여행객 사이에서 화제가 된 건 하루종일 불을 끄지 않는 서점이란 점 때문이었다.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중국의 쇼핑몰은 그 숫자만큼 불안하고 텅 빈 이야기처럼 들려온다. 하지만 그곳에 태어나는 책방들은 어김없이 현실 위에, 일상 속에 안착한다. 엔지요우는 현재 60곳 모든 매장에 60곳의 카페를 운영하고 있고, 레스토랑도 갖고있다. 지난 12월 중국에서 열린 ‘문화와 문화 소비 포럼’에서 엔지요우의 CEO 단 지에는 엔지요우를 설명하는 가장 큰 키워드가 ‘연결’이라 얘기했다. “다양한 오프라인 상점이 ‘보이는 장면’이라면, ‘보이지 않는 장면’은 연결입니다.” 책과 책의 연결, 책과 사람의 연결,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연결. 엔지요우는 대형 서점의 이점인 넉넉한 공간을 활용해 음악과 예술, 영화 살롱, 그리고 독서회 등 다양한 이벤트도 활발히 열고있다. 매우 새로운 듯 싶어도 이미 익숙한해진 이야기. 엔지요우의 지금은 최근 국내 대형 서점 교보문고 광화문 지점의 장면이기도 하고, 2012년부터 맥주를 팔고있는 도쿄 시모키타자와의 B&B의 장면이기도 하고, 어쩌면 지금 책방이 도달한 가장 오래된 내일의 장면이기도 하다. 도쿄에선 카페는 물론, 갤러리, 잡화점, 극장, 레스토랑, 호텔까지 껴안은 책방들이 등장하고, 심지어 책을 팔지 않는 책방같지 않은 책방도 문을 연다. 지금 국내에서 가장 책이 활발한 건 아마도 서점이 아닌, 각종 소규모 독서 모임이다. 책방은 지금, 사용법을 새로 쓰고있다.

(つづく)


*'싱글즈' 9월호에 게재된 기사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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