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NORESQUE Nov 09. 2019

빵집에 가는 계절, 그런 계절.

이제야 그렇게 느끼는 어른으로 커버렸다.


#01 시부야 뒷골목의 영화관 유로 스페이스를 프레쉬니스 버거로 기억한다. 자주 입지 않는 라드 뮤지션 셔츠를 볼 때마다 타케시타 도오리 뒷편의 한적한 거리가 생각난다. 싸기만 할 뿐 정말 맛이 없는 커피숍 베로체는 오래 전 도쿄에서의 시절을 떠올리며 찾곤하고, 영화를 보러 가고, 옷을 사러 찾는 곳이지만, 남아있는 건 영화도, 옷도 아닐 때가 종종 있다. 비하인드를 드나들다 알게 된 빵집 아오이 하나가 없어졌다. 알고보니 아오이 토리 2호점 격에, 마지막 회사를 다니던 시절 도산 사거리 길목 도쿄 팡야의 파티시에가 운영하던 그 곳이 문을 닫았다. 거기가 아니라고 빵을 못 먹는 건 아니지만, 빵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떠올랐던 그곳의 무드, 어떤 장면은 사라지고 없다. 예정보다 일찍 도착해버린 시간에 빵집에 들린다. 컵케이크 모양으로 구워낸 브리오슈, 크림치즈가 얹어진 포피 시드 파운드, 한 조각에 1000엔이 넘는 몽블랑, 배가 터질 듯한 도너츠. 비어버린 시간을 채운다. 가던 길의 어떤 정류장 같은. 결코 같은 오늘은 없겠지만, 그곳엔 내가 아는 시간이 흐른다. 빵을 먹는 것과 빵집에 가는 건 다르고, 영화를 보는 것과 영화관에 가는 건 전혀 다른 일상이고, 이제야 그렇게 느끼는 어른으로 커버렸다. 패딩을 꺼낸 날의 기록. moi의 시나몬롤이 생각난다.

#02 시부야 도겐자카 도오리, 분카무라 맞은편의 viron. 내가 도쿄에 살던 무렵부터 있었으니 10년은 훌쩍 넘은 오래된 빵집. 뭘 하든 제대로 하고보는 도쿄에서 프랑스 정통빵을 팔고, 오래 전 외국인 노동자 시절에 선뜻 찾지 못했던 빵집. 아오이 하나가 10월 30일을 끝으로 없어졌단 소식에 그곳이 생각났다. 아침이면 1500엔 +소비세로 바게트 두 종과, 세레아루, 거기에 6종의 비에누아즈리 중 하나와 6종의 잼, 커피나 티는 바닥을 보일 쯤이면 어느새 다가와 리필을 해주고, 사람 북적이는 시부야 한복판, 샹들리에 반짝이는 소파에서 느긋한 여유를 부릴 수 있다. 9월 더위에 땀 흘리고 들어가 아이스 커피를 시켰다, 뒤늦게 후회하고 추가 요금 치르고 있었지만, 빵을 먹는다는 것과 빵집에 간다는 건 나이가 들 수록 달리 느껴진다. 오후 3시 키치죠지 moi의 시나몬몰이나, 비개인 저녁 이노카시라 스타벅스의 포피 시드 파운드, 그런 차이들. 패딩을 꺼낸 첫 날, 그곳의 아침이 생각났다. 

ゆっくり行こう、creephyp




매거진의 이전글 가끔은 식빵같은 사람이고 싶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