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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Dec 01. 2019

픽션의 민낯

영화는 현실 깊은 구렁에서 바라보는 하늘. 그러거나 말거나의 두 편.


세상에 시간은 사실 모두 1인칭이고, 그렇게 타인은 뿌옇고 흐린 창에 갇혀있고, 사실 별 상관없지만, 나는 나를 볼 수 없다. 후호 감독의 데뷔작이자 유작이 된, 무려 4시간이 넘는 영화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를 대략 요약하면 이렇다. 여러모로 중국의 폐쇄적이고 암울한 지금을 은유하는 이야기임이 뚜렷이 느껴지는 스토리이지만, 그곳엔 본질을 향한 삶의 운동이 있다. 한 동물원 우리 안에 있다는 코끼리. 장난을 치고, 돌을 던지고, 헤꼬지를 해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다는 코끼리.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코끼리는 그곳에 조용히 앉아있다. 다시 한 번 요약하면 중국 작은 시골 마을의 네 남녀 이야기를 쫓으며, 그들이 어느 순간 마주하는 순간을 포착하는 영화. 거기엔 끝까지 가보려는, 알 수는 없지만, 어차피 달라지진 않지만, 끝까지 가보려는 안간힘의 몸짓이 있고, 이곳을 벗어날 수 없음에 배어나는 상처받는 희망의 내일이 있다. 후호 감독은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스물 아홉 나이에 세상을 떴고, 그런 아찔함이 시종 퀘퀘한 어둠을 벗어나지 못하는 영화에 가득히 묻어난다. 후반부의 전개가 다소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어차피 희망은 유치하니까. 다만, 오구니 시로의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에, 이 영화는 마음에 무리가 가고, 아메리카노 라지 사이즈를 마시고 234분 영화는 꽤나 힘이 든다.

어제는 집에 앉아 한 문단 쓰고 낑낑대다, 안되겠다 싶어 오늘은 밖에 나와 카페에서 뒤적대다 맘에 들지 않게 긴 한 문단을 쓰고, 예매해 둔 영화를 보았다. 이영애 주연, 신인 감독 데뷔작이라는 '나를 찾아줘.' 같은 제목의 데이비드 핀처 영화가 지난 해 있었고, 포스터만 보면 흡사 비슷한 무게의 톤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결론은, 아동 학대X여성 폭력X동물 학대. 결국 길거리에 나붙은 '우리 아이를 찾아주세요'인데, 스크린, 아니 도처에 깔린 괴물같은 타인에 고개를 돌리게 된다, 극장에선 여기저기 카톡, 뒤에선 여보세요. 영화가 영화일 수 없어서, 영화가 영화답지 못해서, 남는 건 폭력이고, 나를 피폐하게 하는 건 과연 뭘까라는, 영화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상한 본질적인 물음을 떠올렸다. 아무리 오락이어도, 엔터테인먼트라 해도, 영화엔 최소 현실에 대한 최소한의 애정이 있어야하고, '나를 찾아줘'는 알 수 없이 실종된, 이름만 배회하는 누군가의 '상실'에 관한 이야기다. 장사를 위해 현실이 희생될 이유는 어디에도 없고, 주말의 멀티플렉스는 왜인지 알 수 없는 실패를 품고있다. 고작 타인이라서, 겨우 그곳에 있어서. 겨울에 이런 밤은 조금 참혹하고, 입고있던 외투의 지퍼를 목까지 채운다. 우리 동네 이야기이지만, 결국은 대한민국 스토리. 영화는 조금 현실을 위한 뻥이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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