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모럴에 관하여
도시에 태어났다. 회색빛 빌딩에 차디찬 아스팔트. 그곳에 고향의 푸근함은 스며들지 않고, 타인은 점점 타인이 되어간다. 몹시도 추웠던 밤, 지하철 손잡이에 남은 누군가의 체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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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를 타지 않기로 마음먹고 3년이 흘렀다. 10년 넘게 마감 생활을 하며, 택시 없이 못살던 내가 택시 없는 1000일을 넘게 보냈다. 운이 좋지 않으면 반말을 듣고, 까딱하면 아침부터 담배 연기에, 부러 돌아가는 길에 마음이 쪼그라져 화나는 시간이, 택시 문 닫듯 마음도 닫게했다. 인도를 걷다 마주오는 사람은 비켜갈 맘이 별로 없고, 평지여야 할 인도는 곳곳이 굴곡이라 보이지 않는 돌부리에 걸리고, 러쉬 아워 지하철이라도 타면 신경은 곤두서 조바심이 인다. 내리기도 전 문을 닫아버리는 버스에선 2 정거장 전부터 마음이 가시방석. 고작 거리에 나왔을 뿐인데, 이만큼의 실패가 쌓여간다. 전동 바이크, 자전거 도로, 기술은 발달해, 환경은 이슈가 돼, 전에 없던 궁리와 이야기들이 새어나오지만, 정작 인도를 활보하는 오토바이에 나는 수도 없이 놀란다. 길가에 늘어선 봉고와 택시, 인도를 치고 들어온 SUV 승용차, 엄연히 법으로 정해진 질서는 어느새 밀려나, ‘다들 하니까’, ‘잠깐이니까’, 차를 피해 걷는 게 일상이 되었다. 달리는 차, 주차된 차, 그리고 그걸 피해걷는 사람들. 타인의 자리는 남아있지 않다.
타인과 타인이라 해도, 도시의 타인이라 해도 그곳에 계절은 있다. 사람은 누구나 함께하며 만들어가는 자신이 있고, 그건 곧 어떤 타인도 완전한 타인일 순 없다는 이야기이고, 그렇게 느껴지는 타인의 체온을 도시의 계절처럼 기억한다. 오래 전 영화 ‘타인의 취향’에서 감독 아네스 자우이는 차이로 드러나는 취향의 거리를 별 거 아닌 타인의 풍경처럼 묘사했는데, 영화이긴 하나, 알 수 없는 우연, 예고없던 마주침, 왜인지 스쳐간 누군가의 발걸음 이후 벌어지는 이곳의 일이기도 하다. 편견과 선입견, 외면이 걷히고 타인의 시간이 드러난다. 콘크리트 빌딩의 차가운 도시에서, 타인은 그렇게 태어난다. 하지만, 현실에서 택배는 언제부터인가 물건을 문 앞에 둔 채 벨만 누르고 가버리고, 카페에선 신용 카드를 점원이 아닌 단말기에 직접 꼳아야하고, 택시들이 진을 친 버스 정류장에선 한 차선, 때로는 두 차선이나 앞에 나가 버스를 타야한다. 버스 곳곳에 쓰여있는 ‘벨을 누른 뒤 정차 후 일어나라’는 말은, 내릴 곳을 놓쳐 고생을 하기 딱 좋을 조언이 되어버렸다. 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는 “‘사람은 다수의 사람들이 반응하는 행동을 사회적 믿음이라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는데, 익숙해져버린 비상식의 상식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법이 있기 앞서, 도덕을 말하기 이전, 도시는 다수에 숨기 시작했다. 타인을 잃은 수많은 개인들, 각자의 사정 만이 평행선을 걷다 충돌하는 교차로. 체인 커피숍 카운터엔 오늘도 픽업을 종용하는 진동음만이 세차게 울리고 있다.
얼마 전 서울시는 택시 불만을 해결하기 위한 S-택시란 어플을 공개했다. 늦은 밤, 특히나 연말연시면 유독 심해지는 승차 거부, 외국인을 상대로 한 바가지 요금, 차내 흡연을 방지하기 위한 벌금제 등 승객의 편의를 위한 조치라 하지만, 전에 없던 행정 처분을 위한 바탕 작업이기도 하다. 택시를 타지 않기로 3년, 내게 스쳐간 건 도덕을 위압하는 제재, 선의가 실종된 현실의 고육지책, 타인을 타인에 옭아매는 도시의 고장난 계절같은 풍경이었다. 타인을 망각한 도시에서, 바까은 겨울. 지하철에 핑크색 임산부 양보석을 만들고, 모든 음식점 내 흡연실을 없애고,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휴지통을 없애고, 플라스틱 스트로우를 만들지만, 거리엔 번듯이 흡연을 하고 꽁초를 버리는 사람이 있고, 길가 곳곳에 쓰레기가 발에 치인다. 지난 11월 포천시 한 식당 여주인은 근처 야산에 투기된 쓰레기 탓에 “하루 파리 40마리를 잡았다”는 하소연을 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어차피 내가 아닌 타인의 사정. 선의와 도덕의 자리를 의무와 제도, 급조한 법들이 장악하는 사이, 도시는 망각의 길을 걷고있다. 그곳에서 타인을 상상한다. 도시는 타인의 거리이고, 그곳엔 나의 시간이 흘러가고, 마이클 이그나티에프가 <The Ordinary Virture>에서 ‘서서히 서로를 알아가고, 눈마주침을 주고받고, 코너를 돌아 맥주 6팩을 사고 돌아오며 그곳에 속함을 느낀다’고 설명했던, 모럴의 오퍼레이션이 작동한다. 타인이란, 어쩌면 그저 조금 낯선 ‘우리.’ 화장실을 가는 누군가의 머리는 영화관 화면을 가리고, 왜인지 큰 목청을 타고난 누군가는 카페에서 이어폰 볼륨을 높이게 하지만, 곁에 흘러가는 계절, 타인의 계절을 생각한다. 그곳에 남아있는 나의 오늘을 생각한다. 잠시 잊어버린, 도시의 계절을 위해, 그렇게 너를 한 번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