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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Jan 12. 2020

사람은 누구나,
한조각의 프렌치 토스트를 품고산다

그 무드는, 어쩌면 프렌치 토스트의 계절인지 모른다.


마감의 8할을 이곳에서 했다. 회사를 나온 뒤 동네 아닌 동네 카페에선 프렌치 토스트를 팔았고, 그곳엔 내가 찾은 조금 따뜻한 계절이 있었다. 2001년, 그 계절이 시작됐다.

우연을 생각한다. 지난 가을 누군가는 스티브 잡스의 유명한 ‘커네팅 도츠’ 이야기를 여름의 끝자락, 햇빛 가득한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했는데, 하나의 일들이 어느새 이어져 하나의 선이 된다는 이야기는, 늦게 찾아온 계절처럼 익숙하고, 조금 낯설다. 이미 5년 전, 더 올라가면 8년 전, 한 카페에서의 시간이 어느새 몇 개의 선을 이뤄, 뭉클하게 느껴지는 계절에 문득 지나간 날들을 떠올린다. 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침도 먹지 못한 나는 왜인지 그곳으로 향했고, 아직 오픈 전인 탓에 발길을 돌리고 어딘가로 향했을 뿐인데, 별 거 아닌 장면이 아직도 선명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졸업하기 몇 주 전 첫 회사에 들어가 네 곳의 잡지사를 돌며, 어떤 자리는 잊혀지고, 어떤 곳은 남아있다. 아마도 이런 걸 스티브 잡스는 선을 향하고 있는 점들의 순간으로 이야기하겠지만, 내겐 좀 더 어제의 유산처럼 느껴진다. 목적을 그리지 않는, 가끔은 무력하고, 가끔은 바보같게 울고, 웃고, 떠들었던 날들의 별 거 아닌 유산들. ‘비하인드’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흔한 카페 중 하나이고, 약 1년 간 동네 카페였고, 커피와 10여 종의 프렌치 토스트를 팔고있지만, 그곳엔 이상하게 기억나는 나의 계절이 있다. 2001년 문을 열어, 페점할지 모를 위기의 언덕을 넘어, 남들이 온갖 유행을 장식할 때 꾸준히 커피를 내리고, 토스트를 굽고, 참 변하지도 않았던 18살 카페. 갈 때마다 편안하고, 음악은 더할 나위 없고, 바같엔 잠시 흡연을 할 수 있는 벤치도 놓여있지만, ‘비하인드’의 이러한 별 거 아닌 따뜻함의 무드를, 나는 무어라 써야할지 모르겠다. 커피와 도톰한 빵 위엔 치즈가 녹아내리고, 오늘은 겨울이라 절인 딸기의 프렌치 토스트. 어쩌면 그 무드는 프렌치 토스트의 계절인지 모른다. 

https://youtu.be/ndIhidqqTCc

취재를 약속하고, 그곳에 옥상달빛이 흐르고 있었다. 돌연 세상의 감각이 사라진 듯 모든 게 무력했던 시절, 참 많이도 기대고, 울었던 노래가 그곳에 들려왔다. 홍대의 레코드숍 ‘김밥레코드’의 김영혁 대표가 2015년 무렵까지 카페를 운영했고, ‘비하인드’는 애초 초기부터 음악을 좋아하는 남자 넷이 꾸린 공간이고, 그만큼 남다른 선곡의 플레이리스트를 갖고있지만, 한동안 잊고있던 그 음악이 왜인지 그곳에 흘렀다. 촬영할 곳들을 물색하고, 물어볼 질문을 궁리해야 할 시간에 오래된 어제가 불쑥 찾아와 그 순간이 몹시 달콤했다. 돌이켜보면 그곳엔 나를 홀로 두지 않을 정도의 따뜻함이 있었고, 혼자일 수 있게 도와준 섬세한 거리감이 있었고, 실패하지 않을 거라 믿게하는 상냥함, 프렌치 토스트를 말할 때 느껴지는 조금의 설렘같은 게 있었다. 계란과 우유를 섞어 식빵을 담그고, 프라이팬에 오일을 뿌리고 노릇노릇 구워내는, 사실은 별 거 아닐 수도 있는 빵. 하지만 어릴 적 엄마의 프렌치 토스트는 조금 특별했고, 지난 도쿄 가장 불안했던 아침 데니쉬로 만든 프렌치 토스트는 면접을 코앞에 두고도  흥분하게 했고, ‘비하인드’를 오가며 이제야 온도로 기억되는 빵의 자리를 알 것 같다. 10년을 가깝게 다녔지만, 김영혁 대표를 이어 ‘비하인드’를 꾸려가고 있는 홍석호 사장님과 나눈 대화는 과자 봉다리 하나 나올까 말까고, 문앞에 쓰여진 Since 2001이란 문구는 어제야 보았고, 알게 모르게 지인들의 공연장으로도 쓰인다는 사실 역시 금시초문이었다. 하지만, 우연히 들려온 옥상달빛에 먼 계절은 떠오르고, 이사를 해 이제는 왕복 2시간이 넘게 걸리지만 여전히 동네 카페의 문을 열고, 또 한 번의 10년을 바라보는 지금 ‘비하인드’엔 새로운 프렌치 토스트가 태어난다. “키오스크 사장님이랑 이제 새 메뉴 만들어보자고 의논하곤 했어요. 그래서 이르면 크리스마스, 늦어도 1월엔 티라미슈 토스트가 나올 것 같아요.” 참 변하지도 않았던 카페의 내일. 레시피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들었지만,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건 언젠가 찾아올 또 하나의 도트를 기다리는 마음 때문인지 모르겠다. ‘비하인드’ 프렌치 토스트의 레시피는 계란과 우유, 비율은 10대 1, +알파. 아직은 2019. 티라미슈 토스트를 그냥 조금 특별한 또 하나의 내일로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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