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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Oct 27. 2019

카페라 쓰고,
커피숍이라 읽는 곳. 그런 곳.

어김없이 이곳을 살지만, 어김없이 '나'로 살아가는 곳들, 그런 도쿄.


얼마 전 처음보는 누군가를 만나러 들렀던 한남동 카페는 지하가 메인인 곳이었다. 1층에선 간단하게 주문과 결제만 하고, 테이블은 모두 계단을 내려간 지하에 있다. 5천원짜리 커피를 주문하고 진동벨을 갖고 내려갔다, '부~'소리가 울리면 커피를 받으러 가야하는 구조였다. 오랜만에 누군가와 만나 헤어진 뒤 비어버린 시간을 뒷골목 카페에 들어갔다. 웬만한 2층 단독 주택 크기를 넘을만큼 넓고 개방감이 느껴지는 그곳은 커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커피숍의 3호, 아니면 4호점이다. 6천원짜리 플랫 화이트를 시키고, 의자에 앉아 기다리다 찰랑찰랑 넘칠듯한 잔을 들고 2층 계단을 올랐다. 그곳은 2층이 말하자면 메인인 곳이다. 시간이 지나 두 번째 주문을 했고, 한번은 진동벨을 들고, 또 한번은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펌킨 파이를 사들고 계단을 올라왔다. 이런 곳들은 왜인지 당연히 빈 그릇도 가져다줘야 하는 분위기고, 나는 그런 수고가 편하지 않다. 체인점도 아니면서, 가게는 제법 여유를 어필하면서, 발걸음에 흘러 넘칠지 모를 커피를 들고 왔다가야 하는 노동이 편하지가 않다. 막댄 말로 싸지도 않으면서. '셀프'로 왔다가야 하는 동선을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진 공간에서 '셀프'로 왔다갔다 하다보면 이곳의 카페를 생각하게 된다. 가게가 단지 물건을 사는 곳이 아니고, 배를 채우는 곳도, 돈을 쓰는 곳도 아닌 건, 그곳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없어지고 생겨나고, 거리는 매일 공사중인데 사람의 자리는 사라진다. 도시에선 건물이 만들어내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왜인지 있다. 


조금 많이 힘들었던. 할 말을 잃은 건지 말을 할 나를 잃은 건지. 얼마 전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서는 '나는 어느새 나를 잃고 말았다'는 대사가 아무렇지 않게 다가와 떠나지 않더니, 서른 중턱의 '알 수 없음'이란. 이케마츠 소스케를 보며 왜인지 마음을 놓았고, 그래서 조금 다행이었고, 가끔은 힘이 났던 시간을, 그제 올라온 인터뷰를 보며 새삼 떠올렸다. 영화를 본다는 것, 감정을 이입한다는 것, 눈물을 흘린다는 것. 한없이 나약한 모습처럼 보이지만, 누군가에 '기대'를 품고, 의지를 가져보는 건 결코 초라한 시간이 아니다. 생에 대한 의지, 나에 대한 다짐. 하필이면 이제야 찾아온  '미야모토가 너에게', 이 영화를 되새기며 잠시 못난 망상을 조금 해봤다.

"저는 역시나 미래가 정해지지 않은, ‘도중(途中)의 단계’를 항상 살고있고, ‘어떻게 착지할 것인가’가 아니라, 착지한 뒤에 ‘어떻게 다시 한 번 뛸 것인가’ 그 과정을 생각하는 게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그  과정을 보여주고, ‘알지 못하는’ 과정의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까-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결과적으로 미래를상상할 수 있는 것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사람이 감동할 때에는 반듯이 영화와 자신 사이 발견한 ‘지금까지 살아왔던 자신’이 있고, 무언가 마음의 피부를 건드린 순간에는, 과거 비슷한 감촉을 느꼈던 자신이 반듯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영화를 통해 미래를 바라볼 수 있고, 동시에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도, 영화에서 느끼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

-cinra.net 인터뷰에서.

록뽄기 유료 서점 '분끼츠'엔 잡지로만 채워진 책장이 있다. 입구에 들어서 왼편 가득. 그곳엔 잡지가 진열된 랙을 열어보면 관련된 책들이 들어있고, 책방이 의도하길 '호기심'의 입구, 만남의 시작이다. 하지만 분끼츠는 마치 비밀처럼 이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 아는 사람만 아는. 3만 권의 책들이 채운 꽤 넓은 공간에서 유일하게 '나만 아는 공간'이다. 나카메구로의 카페 onibus coffee는 일견 멋스러운 커피숍으로 보인다. 오쿠자와를 시작으로 도겐자카, 나카메구로,진구마에 도쿄에만 네 곳의 점포를 가진 그곳은 커피가 맛있고, 인테리어가 세련되고, 소위 인스타 스폿, インスター映え로도 알려진 곳이다. 그곳에서 원두를 사기위해 편도 40시간의 과테말라에 가 현지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만들어진 커피를 가지고 선물을 하러 '다시' 편도 40시간의 길을 간다는 사실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스페셜티 커피가 유행하기 이전, 이미 8년 전부터 '스페셜'한 커피를 만들고 있는 곳이다. 국도 246길의 꼬뮨에선 에코, 환경 문제를 고민하고 행동으로 옮기며 자급자족, 전기를 수급하기 위해 자체 태양열 발전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그를 위해 쿠라모토 준 씨는 몇 십 kg은 되는 태양열 발전기를 지붕에 올리느라 애를 먹었다고도 했다. 알아주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시대가 변화하고, 새로움이 새로움과 경쟁할 때, 보이지 않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어디에도 없는 내일을 길어낸다. 어김없이 이곳을 살지만, 어김없이 '나'로 살아가는 곳들.. 내가 아는 도쿄는 어김없이 이런 곳에 있다.

https://youtu.be/Lx8wi-FaMvY

*도쿄를 애기하지만, 어느새 내 얘기를 하고있는 매거진. 굳이 매거진이라고 하니까 매거진. 도쿄에서 동경까지. 차곡차곡 애기합니다. 도쿄와 나와 나와 도쿄. 인스타그램도 합니다. 

https://instagram.com/oku_nipp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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