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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Sep 02. 2020

책방이 아마, 사라지지 않을 이유

책방을 시간으로 센다면...유료책방 '분끼츠'와 자리세 받는 '후즈쿠에



책 한 권 사러가는 외출도 조심스러워지는 시절, 인터넷 서점을 클릭하고 몇 권을 골라 하루 쯤을 기다리기도 하지만, 방구석에 꽂혀있는 오래된 책을 꺼내본다.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굴러가는 요즘, 그 자리엔 사실 많은 물음들이 남아 ‘책을 산다’는 게 왜인지 생소하게도 느껴진다. 서점에 발길을 하는 것도 힘들어진 시절에 책은 결코 의식주는 아니라, 나는 ‘책을 산다'는 시간을 내 방 어느 구석에 꽂아야 할지 새삼 고민스러워지기도 한다. 클릭 단 한 번에 구매할 수 있지만 책이 완성되는 건 내게 도착해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이후이고, 심지어 그건 몇 달, 길게는 몇 년을 필요로하기까지 한다. 나의 의지를 필요로 하는 책, 게으름에서 깨어나 두 세시간 집중하는 나를 요구하는 책, 그렇게 이뤄지는 나와의 ‘오고감’을 기다리는 책. 모든 게 불확실해진 지금 책을 일상이라고 한다면, 그건 어김없이 시간으로 시작해 시간으로 마침표를 찍는, 말그대로 ‘책의 시간',  책으로 드러나는 나의 일상이 그곳에 있다. 유료 서점으로 화제가 됐던 ‘분끼츠’, 그곳을 디렉팅한 소메야 타쿠로를 이미 두 해 전 도쿄의 가을에서 만났다.



입장료 1500엔. 이 숫자는 참으로 노골적이라 그저 자본주의의 돈 냄새를 풍기는 듯도 싶지만, 세상 모든 가격은 물건이거나 시간에 대한 가치라, 책방에 가격을 붙인 순간, 책은 시간의 매개체가 된다. 영화는 대부분 두 시간에 15천원, PC 방은 시간당 15백원, 마사지는 60분 코스 7만원, 자유 이용권이지만 대부분 반나절도 보내지 못하는 놀이공원은 8~10만원...그리고 책방, ‘분끼츠’에서의 OO시간은 1만 5천원. 분끼츠는 시간에 제한이 없는데, 말하자면 한 번 입장하면 나오는 건 내 마음인데, 그건 곧 책방 내 꽂혀있는 책 3만권의 가격이란 얘기이기도 하다. “첫 시작은 ‘망가 킷사’였어요. 그걸 문학에 대입하면 어떻게 될까? 망가 킷싸는 입장할 때 15분 당 얼마...이런 식의 요금을 받잖아요. 그런 식의 셈법이 책방에도 가능하다고 보았죠.” 사실 시간의 값어치라는 게 애매하기 그지없어 결국 경험치에 대한 값이 되어버리고, PC 방에서도, 놀이 공원에서도, 그리고 분키츠에서도 1500엔은 결국 ‘자기 하기나름의 가격’이 되고만다. 그러니까 우리가 책을 쌓아놓고도 보지않고 있는 건 (우스운 변명같지만)제한된 시간이 없어서기도 한다는 이야기...그 와중에 소메야는 “책은 유일하게 시간이 가시화되는 미디어에요”라는 꽤나 의미심장한 이야기도 털어놓았다. 책은 점점 시간이 되어간다.



책과 시간이라고 한다면, 도쿄 하츠다이, 최근엔 시모키타자와에 2호점까지 낸 후즈쿠에의 셈법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후즈쿠에는 오로지 책, 그리고 나. 독서만을 위한 공간인데 이곳엔 몇 가지 룰이 있어 잡담 금지, 컴퓨터 작업 금지, 동반 입장 가급적 제한...등의 엄격한 제한을 감수하고 입장해야 한다. 이렇게만 보면 동네 도서관이 가장 가까울 듯도 싶은데, 가게를 오픈한 아쿠츠 타카시는 “책을 가장 집중해서 볼 수 있는,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염두했어요”라고 이야기한다.


후즈쿠에에선 소위 자리세가 기본 발생하고, 음료, 디저트, 간단한 식사 요리, 심지어 알코올까지 제공해 주문을 할 수록 자리세는 0엔이 되기도 한다. 가령 예를 들면 커피 한 잔만 주문하면 자리세 9백엔을 포함 16백엔, 하지만 커피 한 잔과 케이크를 하나 더 시키면 자리세는 0엔이 되어 19백엔. 독서를 위한 공간의 계산법이라고 할 때, 사실 배를 불리러 오는 사람을 별로 없을테고, 결국 질 좋은 독서의 가격으로 2천엔 안팎의 지출이 발생하는 셈이다. “1인당 2천엔 정도를 생각하며 짜낸 방식이에요. 가게를 지속함에 있어서 어느 수준의 숫자는 필요하다 느꼈고, 손님들도 커피 한 잔 시키고 3시간씩 있고 싶어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해요.” 단골 카페에 가 오래 머무르는 탓에 땡기지도 않는 케이크를 하나 더 시키고, 하루치 카페인을 초과했음에도 또 한 잔의 카푸치노를 주문했던 날들을 생각하면, 공간의 장사라는 건 곧 시간의 장사다. “돈을 지불할 수 있게만 해준다면, 더 쓰고싶다는 감각은 분명 있다고 생각했어요.” 커피 한 잔에 3시간. 그런 찜찜함의 3시간. 시간의 장사라는 건, 곧 기분의 장사기도 하다.



“책은 종이책이 아닌 스마트폰으로도 볼 수 있지만, ‘분끼츠’처럼 공간적으로 ‘읽는 장소’를 제시하면, 거기 있는 시간이 스마트폰으로 책을 보는 것보다 재미있다는 무드가 형성돼요. 그런 장소에 대한 무드를 만드는 게 책의 유의성을 확장하는 일이라 느끼고, 우연히 만나는 음악처럼, 지금 이 시간이 좋다, 오늘 참 좋은 날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장소를 기획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분끼츠'를 나가면 바로 스마트폰을 켜겠지만(웃음) 근본적으로는 ‘좋은 시간을 지내고 싶다’, 그걸 어떤 형태로 만들어갈 것인가의 이야기라고 봐요.”-
소메야 타쿠로


아직도 코로나를 이야기하고 있는 요즘, 책방, 오프라인 책방은 이제 어떻게 살아갈까...싶지만, 코로나가 세상 대부분의 것들에 거대한 물음표를 제기한 지금, 필요한 건 대체할 무언가를 찾거나, 다시 돌아가기 위한 버팀이거나, 모두가 하던 일을 접고 비대면 업종에 나서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가까운 전환, 수도없이 이야기한 ‘거리 두기’와 ‘잠시 멈춤’에 대한 고찰, 지금의 나, 지금까지의 나에 대한 자성, 그리고 무엇보다 재앙의 시절을 과도기로 보내는, 뒤로 걷는 걸음의 ‘느림’이 필요하다. 앞으로 걸을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을 바라바야 하는 계절이 그저 지나가고 있는지 모른다.


분키츠가 트라이피크와 함께 만든 책에 어울리는 맥주, 후즈쿠에가 시모키타 정원에 마련한 '책을 읽게되는 의자'


돈까지 내고 들어가는 책방 분끼츠는 이 지옥같은 시절에 가장 영향이 클 것 같아도, 요즘 그곳은 단축 영업을 하고있다. 입장료에 포함됐던 커피를 테이크아웃으로 서비스하고, 심지어 가게의 강점인 ‘센쇼, 큐레이션’을 활용해 책 배달 서비스까지 시작했다. 우유, 신물 배달도 아닌 책 배달 서비스, 책방에서 사들고 가는 테이크아웃 커피. 세상이 참 변하고있다 생각하지만, 그저 책의 셈법이 조금 달라졌을 뿐인 이야기인지 모른다. 일상에서 책의 자리가 조금씩 작은 이동을 하고 있을 뿐인 이야기인지 모른다. 아쿠츠 타카시는 “후즈쿠에는 단지 가게 이름이 아니라 ‘기분 좋게 책을 읽는 체험의 총칭’라고도 했는데, 다시 한 번 책을 시간의 미디어라고 할 때, 책방은 내게도, 네게도, 우리의 일상이 멸망하지 않는 한, 단 한 자의 해쉬태그에도 존재한다. 후즈쿠에는 코로나 자숙 기간 #후즈크에독서 라는 캠페인을 진행했고, 이건 그저 밀려가는 SNS 속 몇 글자에 불과할지 몰라도, 새로 시작하는 시절에 책 한 권과 내가 만들어낸 하루의 어떤 조각이기도 하다. 후즈쿠에에선 독서에 좋은 음악이라며 오카야마 출신의 뮤지션 nensow의 앰비언트 뮤직을 CD로 발매하기도 했다. 음악이라는 책의 자리.

https://youtu.be/v-y2-uvGt_w


책방이 커피를 팔고, 전시를 하고, 각종 생활 잡화를 파는 건 그저 시대의 조금 별난 변화처럼 보이기 하지만, 그곳엔 어김없이 페이지를 넘기는 시간이 흘러간다. 책의 시간, 그런 이름의 일상이 그저 오늘도 하루를 살고있을 뿐인지 모른다. 언제 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나의 나츠메 소세키의 몽십야가 아직도 보지 않은 채 책장에 꽂혀있는 걸 보면, 책은 참 수상하니까. 그렇게 이상한 생물체니까. 책을 시간으로 계산할 때,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은 수 만, 사실 그 이상의 페이지가 될지도 모른다.


*아쿠츠 타카시의 부분은 hotpper 음식 웹진 めし通 참조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진 credit_fuzkue, cinra.net, harumari.tokyo, bunkitsu.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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