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샌더가 '집콕'을 하면 벌어지는 일. 코로나 이후 질 샌더 메이어 부부가 다섯 명의 포토그래퍼에게 2021 FW 시즌 촬영을 의뢰하면 던진 조건은 단 하나였다. 그들(질 샌더)를 잘 아는 지인 사진가에게 옷을 건네고, '살고있는 지역의 토지,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퍼스널한 촬영을 해줄 것.' 무엇보다 '옷'이라는 가장 큰 영감의 기반은 있었겠지만, 어떤 사진에선 옷이 한 뼘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 중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영국 출신의 크리스 로즈가 촬영한 하얀 말 한 마리. 길게 늘어뜨린 말갈퀴와 어딘가 슬픈 눈, 그리고 질 샌더라는 단정한 로고. 사진을 소개한 기자는 80년대 꼼데갸르송, 90년대 헬무트 랑의 광고 사진을 언급하며, 추상적 표현으로서의 '아름다움'을 언급했지만, 엉성하게, 헐겁게 연결되어있는 말 한 마리와 나 사이의 묘한 '이어짐'이 뭉클하게 뇌리에 박힌다. 마리오 소렌티는 자신의 아내이자 배우 마리오 프레이를 피사체로 담았고, 어떤 옷은 새삼 잃어버린 자리를 찾아 분주하지만, 어떤 옷은 남겨진 자리를 보살피느라 여념이 없다.
꼼데갸르송과 잡지 SWITCH가 '올해의 인물'을 꼽고 그들과 협업으로 이런저런 아이템을 발매했는데, 아라키 노부요시의 코치 재킷, 타니가와 슌타로의 낙서가 프린트된 티셔츠, 테니스 선수 오사카 나오미의 자필 메시지가 담긴 스니커즈 등등과 함께, 사카나쿠션의 야마구치 이치로의 노래는 코트 등짝의 QR 코드로 담겼다. 주변을 걷는 사람에게 노래를 선물한다는 메시지일까? 그 안엔 야마구치의 신곡이 담겨있다는데, 저 커다란 QR 코드를 인식하려면 얼마만큼의 거리가 필요할까? 그리고 대체 그는 어떤 노랠 그곳에 숨겨놓았을까. 확실히 코로나 이후 꼼데는 좀 꼼데같지 않은 면면이 있고, 난 그저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게 좀 수상하고 이상할 뿐이다. 디지털이 모든 것에 다 훈수질을 할 수 있는 건, 아마 아니다. 그리고 4만 2천이나 하는 저 코트 값에 노래 가격은 얼마나 포함됐을까.
잡지 '펜'에서 제작했다는, 알고보니 1년이나 된 드라마를 몇 편 보다 어김없이 '잡지'를 생각한다. 실제로 '후루기' 매니아라는 배우 미츠이시 켄이 매일 한 곳의 '후루기야'를 방문해 '이걸 살까, 저걸 살까' 고민을 하고, 나온 김에 책방에도 들리고 킷사뗑에서 가벼운 점심도 먹고 크림 소다도 마시고 하는...영락없이 심심한 일본 전형의 드라마, '도쿄후루기일기.' 설정부터 구조, 심지어 전반에 흐르는 BGM까지 쿠스미 유키의 '고독한 미식가'와 너무 닮아, 제작진이 같나 싶었지만, 전혀 그렇지는 않고, 드라마를 기획한 '펜'의 부편집장 콘도 토모유키는 그야말로 그 드라마를, 참조했다고 말했다. 이 정도면 좀 심한 카피 아닌가?...어쨋든 드라마는 '잡지'가 드라마를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의 전형적인 예로 보이기도 한다. 방문한 가게의 지면도가 일러스트로 화면에 그려지고, 코치 재킷의 가격은 물론 자잘한 설명까지 화보 캡션 붙듯 쓰여지고, 등장하는 손님이나 행인은 패션, 혹은 잡지 업계에 종사하는 모델이거나 스태프다. 일조의 자급자족적인, 혹은 각각의 쓸모, 역할을 확장하는..."저희 유튜브는 거의 오프라인 잡지 소식 알리는 용도 정도였고 방치된 상태였지만 이 드라마를 계기로 방향을 찾은 느낌이 들어요." 콘도 부편집장은 이렇게 말했다. 어딘가 전학생의 인사처럼 들려 맘이 몽글몽글. 잡지의 쓸모는 종종 미래 어느 구석인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