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장의 편지와 커피 한 잔이 일상을 구한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열다. 냉장고 문을 열고 가스렌지에 냄비를 올린다. 커피 머신에 물을 따른다. 이와이 슌지 감독이 연출한 네스카페 무비 <장옥의 편지>는 일상의 소중한 순간을 떠올리는 작품이다. 영화는 '장옥의 아침, 밤, 딸, 그리고 연과 편지' 등 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0여분 넘는 짤막한 드라마인데 롱테이크로 진행되는 장면 하나하나가 잔잔하게 감정을 건드린다.
한 남자의 아내이자 시어머니의 며느리, 그리고 딸과 아들의 엄마인 은아(배두나)는 가부장적 가정에서 여기저기 치이는 여자다. 뭐만 하려고 하면 울리는 시어머니의 벨은 그녀의 발목을 시종일관 붙잡고 있다. 그리고 은아는 커피를 마신다. 영화에는 매 장마다 커피 마시는 장면이 꼭 하나씩 나오는데 PPL로서 매우 적절하게 사용되었다.
영화는 시어머니 장옥을 제목으로 삼고 있지만 스토리가 구현하는 건 은아의 일상이다. 모처럼 가진 친구들의 만남은 장옥의 '긴급 문자'로 방해되고 집안일 하나 거들지 않는 남편(김주혁)은 한 무리의 직장 동료들를 끌고 우루루 집으로 들어온다. 집안일 하느라, 시어머니 치닥거리 하느라, 자식들 깨우느라 바쁜 은아의 일상을 구하는 건 커피 한잔의 휴식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 '장옥의 연과 편지'에는 세 장의 편지가 등장한다. 장옥이 아들, 손주, 손녀에게 유서로 남긴 짤막한 글이다. 험한 일은 도맡아 하면서도 은아는 편지 한 통 받지 못한다. 남편은 은아에게 자신의 편지를 보여주는데 거기엔 "은아를 소중히 해라"라고 쓰여있다. 누군가를 소중히 한다는 것, 서로를 보듬어 안는다는 것. 영화는 이 작고 사소한 터치가 커피 한 잔과 함께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지를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커피 브랜드가 제작한 영화로 매우 적절하다. 이와이 슌지의 감각과 배두나의 연기가 조화롭게 매칭되어 보는 이의 마음을 보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