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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Mar 28. 2017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라고 말했다

일어나 운동을 한다. 두 다리 들어올리기 50회씩 두 세트. 숨을 고른 뒤 밥을 먹는다. 어제 사놓은 식빵에 필라델피아 딸기 크림 치즈를 바르고, 엄마가 부어놓으신 우유에 그래놀라 콘프레이크를 붓는다. 블루베리가 들어간 콘프레이크가 딱딱하게 씹힌다. 빵 한 장을 다 먹은 뒤 또 한 장에 크림 치즈를 바른다. 대충 1분 정도가 소요된다. 


엄마가 옆에서 식사중이다. 좋아하시는 코다리를 무치셨고 봄동과 부추로 부침개를 만드셨다. 그리고 또 하나 오이무침. 엄마는 아침에 일어나 일하는 걸 좋아하신다. 밥 한 숟가락을 뜨시더니 "일찍 일어나서 만들었는데 왜 밥 안 먹냐"고 말씀하신다. 나는 "점심에 먹을게요"라고 말한다.


식사 직후에 먹어야 하는 약 한 알을 먹는다. 침대 아래에 보관해 놓은, 빛을 피해야 하는 약이다. 약을 먹고 빈 그릇을 치우는데 어제 사 담고 온 비닐봉지가 널부러져 있었다. 정리를 하려고 비닐봉지를 들었다. 바스락 소리가 났다. 묶어서 매듭을 지으려 하는데 엄마가 뭐라고 하신다. 시끄러워 누나들 꺨 것 같다고 하시는 것 같다. 나는 "그럼 하지 마?"라고 말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별것도 아닌 일에 마음이 삐졌다.

  

침대에 누었다. 조금 춥다. 일어나 이불을 덮고 다시 누었다. 한 손에 트위터를 쥐고 보고 있는데 자가 명상과 심리 치료에 좋다는 음악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Teen Daze의 <I Feel God in The Water>라는 곡이었다. 너른한 강을 배경으로 음악이 흘렀다. 나무 가지가 일렁인다. 동일한 멜로디가 수차례 반복된다. 마음이 물 속 깊이 침전한다. 엄마가 방문을 열었다. "삐졌냐"라고 물으셨다. 나는 아니라고 답했다. 엄마는 "미안해"라고 하셨다. 엄마한데 미안해란 말을 들어버렸다. 손의 핸드폰에는 열차가 강물을 가르고 있었다. 나는 미안해 미칠 것 같았다. 엄마 앞에서 나는 항상 미안하고 만다.


음악을 한 번 더 들었다. 4분 여가 또 지났다. 밖에 나가야 할 것 같았다. 엄마가 부엌에서 냉장고 안을 보고 계신다. 곁으로 갔더니 "혁이 뭐 줄까"라고 하신다. 나는 "삐져서 미안해"라고 말했다. "곰돌이 깰까봐 그랬지"라고 엄마가 말씀하셨다. 별 것도 아닌 일에 삐졌던 내가 미웠다. 그래도 말 한마디에 맘이 편해졌다.


양치를 했다. 거울을 보는 데 위에 입은 회색 나이키 티셔츠가 껴입은 토가 카디건과 함께 이상했다. 회색과 회색인데 어울리지 않았다.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폴러의 카키색 짚업을 입었다. 이번엔 이상하지 않았다. 밖에선 곰돌이를 두고 웃음이 한판이다. 다시 밖으로 나가 같이 웃었다. 움츠렸던 일요일이 활짝 기지개를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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