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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형 Aug 22. 2020

진심을 전하는 브랜드의 제품 디자인 원칙

도트윈이 수작업 제작방식과 가죽 소재를 고집했던 이유


2015년 나와 동생이 도트윈을 창업했을 때, 우리의 브랜드는 ‘점자지갑’이라는 키워드로 가장 많이 알려졌다. 도트윈이라는 브랜드로 출시한 첫 번째 제품이 ‘지갑’이었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2019년 내가 도트윈을 폐업할 때 까지도 ‘점자지갑’으로 가장 많이 기억되었던 것은 그만큼 ‘점자지갑’이라는 키워드가 도트윈을 대표하는 특징들을 가졌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2015년 지갑을 시작으로 여권커버, 이어폰 홀더, 책갈피, 가방, 팔찌, 필통 등 많은 종류의 제품들을 개발하고 출시해갔다. 우리가 ‘지갑’을 첫 제품으로 결정한 것에 고도의 전략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를 결정했던 과정들은 훗날 우리가 제품을 디자인하는 기준이 되었다.


도트윈은 나와 동생이 ‘2011 전국 소셜벤처 경연대회’에서 발표했던 제품인 ‘점자노트’에 그 시작점을 둔다. 단순히 ‘노트’라는 의미의 점자를 각인하여 제작되었던 제품은 이제 원하는 문구가 점자로 각인되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도트윈은 소중한 사람에게 전하고자 하는 진심의 문구를 주문하면 점자로 각인되어 제작되는 가죽제품 브랜드로, 2011년에 출전한 소셜벤처 경연대회의 아이디어를 브랜드로 발전시킨 것이었다. 도트윈이라는 브랜드가 첫 제품인 ‘미니멀 월렛’을 출시하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브랜드가 제품을 낳을 때는 일정한 기준에 의해 디자인되어야만 했는데, 이러한 기준들은 브랜드가 지닌 가치에 기초하고, 또 브랜드가 고민하는 것들을 반영하며 정해지곤 했다.  


도트윈을 창업하기도 전인 2015년 1월, 우리에게는 5평 남짓의 작업실이 있었다. 패기라고 말하기에 한없이 무모했던 스물한 살의 치기로 만든 작업실에서 도트윈의 첫 제품인 지갑, ‘미니멀 월렛’이 탄생한다. 우리의 작업실은 아버지의 작업실을 닮아 늘 가죽과 공예 도구가 구비되어 있었다. 특별한 목적 없이 만들었던 작업실이었지만, 그곳은 우리에게 일종의 실험실이 되어줬다. 소중한 사람에게 전하고자 하는 진심의 문구를 주문하면 점자로 각인되는 브랜드를 만들자는 합의를 이룬 후, 우리는 곧장 작업실로 달려가 어떤 제품을 만들 것인지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한다. 그 당시 제품을 디자인하고자 나눴던 생각들이 추후 도트윈의 제품 디자인 기준이 되고, 원칙이 되었다.


(c)박재형 5평 남짓 우리의 첫 작업실
(c)박재형 5평 남짓 우리의 첫 작업실


어렸을 때부터 가죽공방을 운영하셨던 아버지를 보고 자란 우리가 가죽을 소재로 한 제품을 개발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도트윈의 주소재를 가죽으로 한 것은 비단 가죽공방을 운영하셨던 부모님의 영향만은 아니었다. 도트윈을 준비하면서 가죽이 아닌 다른 소재를 사용해보고자 고민해봤지만, 점자가 닿는 촉감이 사람들의 인식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 것이라는 생각은 2011년 그 당시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플라스틱이나 철재, 고무 등의 소재보다 가죽이 손에 닿는 촉감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자 하는 도트윈의 감성과 맞닿아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추후 다른 소재를 사용한 제품을 출시하기도 하지만, 점자가 각인되는 부분만큼은 가죽의 소재를 사용했다.


점자를 매개로 하는 브랜드이니 만큼, 도트윈이 제작하는 제품이 손에 잘 만져지는 제품 이어야 한다는 생각 또한 2011년이나 2015년이나 변함이 없었다. 이 생각은 도트윈이 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어 논의되곤 했다. 2011년 고등학생이었던 우리는 성인이 되었고, 성인이 된 우리의 손에 잘 만져지는 것은 노트가 아닌 핸드폰과 지갑이었다. 물론 고등학생도 지갑을 사용하지만, 성인이 되면서 지갑이 주는 의미는 더욱 커졌다. 신분증, 학생증, 다양한 종류의 카드들을 들고 다닐 지갑은 언제나 우리의 손에 쥐어지는 것이었다. 도트윈의 첫 제품으로 지갑을 디자인해보자는 합의에 이룬 것은 ‘손에 잘 만져지는 제품’이라는 기준이 가장 컸다. 2020년인 지금까지도 도트윈이 건재했다면, 아마 우리는 지갑이 아닌 핸드폰 케이스를 디자인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요즘은 스마트폰이 지갑의 기능까지도 함께하고 있으니 말이다.


(c)박재형 가장 처음 제작했던 도트윈 미니멀 월렛 샘플


우리가 도트윈의 런칭 제품을 ‘지갑’으로 결정했던 데에는 ‘손에 잘 만져지는 제품’이라는 생각 외에도 또 다른 생각이 있었다. 도트윈은 소중한 사람에게 진심을 전하는 브랜드이니, ‘선물하기 좋은 제품’ 이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누군가의 선물로 ‘지갑’은 꽤나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는 제품군이다. “평소에 사람들이 선물 고민할 때 지갑을 제일 먼저 떠올리니까, ‘개개인의 메세지가 점자로 각인되는 지갑’ 이게 도트윈이 되면 괜찮을 것 같은데?” 라며 답을 찾았다고 생각했던 우리였다. 소중한 사람을 위한 선물로서 도트윈을 구매하였으면 했기에, 선물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지갑’이 첫 제품으로써 적절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생전 처음 보는 브랜드의 지갑을 누군가에게 선물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지갑’ 은 선물로서 쉽게 떠오르지만 개인의 취향이 반영되기에 쉽게 선물하기는 망설여지는 제품이었고, 우리는 나름의 해결 방식을 고안해내야 했다.


우리는 선물을 하더라도 부담이 없을 지갑의 종류인 ‘카드지갑’을 도트윈의 첫번째 제품으로 제작하기로 결심한다. 도트윈이 소비자들과 처음 만나는 신생 브랜드인 것을 감안하여, 보조로 사용할 수 있는 지갑을 출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미니멀 월렛’은 카드만 수납될 수 있도록, 가장 기본의 형태를 따랐던 제품이다. 지금은 대중화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와디즈에서 도트윈의 첫 제품인 ‘미니멀 월렛’을 펀딩하여 출시한다. 정확히 나와 동생 중 누가 ‘카드지갑’을 제안했는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렇게 출시된 첫 제품의 접근은 꽤나 성공적이었다. 도트윈의 첫 런칭 제품인 ‘미니멀 월렛’을 디자인하고서, 첫 작업실과는 작별인사를 했다. 어린 날의 치기로 만든 작업실이라고 여겼지만, 실험하고 도전할 수 있게 만들었던 우리만의 실험용 차고와 같았던 작업실이었다.


2015년 와디즈에서 진행했던 크라우드펀딩
(c)도트윈 - 미니멀월렛
(c)도트윈 - 미니멀월렛


크라우드 펀딩의 리워드로 제작한 ‘미니멀 월렛’은 가죽의 재단부터 염색, 바느질까지 수작업으로 제작되었다. 성공적인 첫 펀딩 후 브랜드를 정식으로 런칭하면서, 우리는 앞으로도 수작업의 제작방식을 유지한 핸드메이드 브랜드가 되기로 결심한다. 우리가 수작업의 제작방식을 고수한 것은 ‘진심을 다한 선물은 제작과정에서도 정성이 담겨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했다. 손바느질로 완성한 지갑과 미싱으로 완성한 지갑의 품질은 우리의 눈에 보일 정도로 차이가 컸고, 수작업이 아니라면 우리가 원하는 기준의 품질을 완성하기 어려워 보였다. ‘진심을 전한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던 만큼, 제품을 제작하는 데에도 그만한 진심이 담겨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손으로 한 땀 한 땀 완성한 수작업 제품이야말로, 정성을 그대로 담아낼 수 있는 제작방식이었다. 또한 개개인이 주문하는 문구를 한점 한점 점자로 직접 각인해야 했기에 수작업의 제작방식은 불가피해 보였다. 펀딩을 끝마친 2015년 3월 말, 우리는 도트윈의 런칭파티에서 제품이 만들어지는 전체 과정을 수작업으로 제작하고자 한다는 뜻을 밝힌다.


재단부터 염색, 바느질까지 수작업으로 제작했던 도트윈


진심을 다해 제작을 하겠다고 했지만,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제작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브랜드를 런칭 후 우리는 수작업의 제작방식을 유지하되, 제작과정을 간소화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연구했다. 이 고민의 과정들은 자연스럽게 도트윈의 디자인으로 반영되었다. 수작업으로 제작하면서도 대량생산이 가능한 방식을 디자인으로 해결해보고자 했던 것이다. 크라우드펀딩의 리워드로 대량으로 지갑을 제작해보면서 깨달은 점이 있었다. 주문받는 점자를 각인하여 발송하는 과정이 보다 신속해지려면, 점자를 각인하기 전에 제품이 꽤나 완성되어있어야 했다. 우리는 제품을 제작하는 단계를 ‘점자를 각인하기 전’과 ‘점자를 각인한 후’로 나눠 생각해야만 했다. 첫 제품의 개발 이후, 우리에게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하면 제작 단계에서 점자를 각인한 후의 과정을 줄일 수 있을까’하는 것이었다.


(c)도트윈 한점 한점 점자를 각인하는 방법


처음 출시한 지갑의 제작과정을 요약해보면 이렇다. 넓게 펼친 가죽을 지갑의 도면에 맞게 가재단한다. 그 후 지갑 도면 모양의 철형으로 눌러 찍어 재단한다. 가죽의 표면은 손으로 광을 내고, 뒷면은 매끈해지도록 마감재를 발라 손으로 가공한다. 바느질을 위해 바느질 구멍을 타공하고, 로고를 각인한다. 여기까지가 ’점자를 각인하기 전’까지의 과정으로 우리는 이를 ‘가제작단계’라고 불렀다. ‘가제작단계’까지 완성해둔 후 주문이 들어온 메세지를 점자로 각인한다. 바느질은 점자를 각인한 후에 할 수 있었는데, 바느질의 시간이 꽤나 오래 걸렸다. 바느질을 끝내면 옆면을 마감재로 마감한 후 지갑의 모양을 완성한다. 여기까지가 ‘점자를 각인한 후’의 과정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만약 ‘가제작단계’에서 바느질까지 완성이 되어있다면, 고객의 주문이 들어왔을 때 개개인의 문구에 맞게 점자만 각인하면, 바로 배송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지갑을 출시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또 다른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을 통해 두 번째, 세 번째 제품을 출시했다. 우리는 앞선 고민을 바탕으로 ‘가제작단계’ 이후 점자만 각인하면 완성될 수 있도록 제품을 디자인한다. 도트윈이 디자인을 접근했던 방식이 바로 이러한 ‘제작과정에 따른 디자인’이었다. 제작과정을 간소화하기 위한 노력은 제품의 가격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낮추는 데에도 일조했다. 수공이 많이 들어갔던 미니멀 월렛은 고가의 가격으로 출시가 되었는데, 두 번째 세 번째 제품은 이에 비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을 구성하여 전체적인 가격의 구성을 다양화하고자 했다. 이러한 과정으로 디자인된 제품이 바로 ‘여권커버’와 ‘이어폰 홀더’이다. 점자의 각인을 제외하고는 모든 과정이 ‘가제작단계’에서 제품이 완성되는 여권커버와 이어폰 홀더는 훗날, 지갑과 함께 도트윈을 대표하는 제품들이 된다.


(c)도트윈 - 미니멀월렛, 여권커버, 이어폰홀더


그 후로도 다양한 제품들을 출시했지만, 도트윈은 늘 ‘점자지갑’으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었다. 2016년 4월, 도트윈이 ‘점자지갑’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반영하여,  ‘미니멀 월렛’ 이후 또 하나의 지갑을 디자인한다. 이 지갑 또한 수작업의 제작방식은 유지하되, 점자가 각인된 이후의 과정을 축소하기 위한 전략으로 디자인된 제품으로 우리는 ‘세미스티치라인’이라 이름 지었다. ‘세미스티치라인’의 개발 단계에서는 두 종류의 명함지갑과 한 종류의 동전지갑을 개발했는데, 그중 가장 많은 이들이 찾았던 가로형 명함지갑만 정식으로 출시하게 되었다.


‘세미스티치라인’은 불필요한 요소를 최소화하여 소중한 사람에게 전하는 메세지인 ‘점자’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디자인된 제품이었다. 정안인에게는 점자 또한 일종의 장식 요소였는데, 나는 이 점자가 시각적으로도 가장 눈에 띄기를 바랐다. 시각적으로 눈에 띄는 스티치(바느질선)를 없애고, 오로지 점자에만 집중될 수 있도록 디자인하였다. 재단된 모양에 맞춰 사방의 가죽을 중앙으로 접고, 중간에 두 땀의 바느질을 하면, 접힌 모양이 온전히 지갑의 모양을 완성하도록 디자인하였다. 본 제품 또한 제작과정의 간소화를 통해 제품 가격을 보다 합리적인 수준으로 낮출 수 있었고, 그로 인해 기업체의 단체주문을 가장 많이 받았던 제품이기도 했다.


(c)도트윈 - 세미스티치라인 명합지갑
(c)도트윈 - 세미스티치라인 명합지갑


2015년 3월, ‘미니멀 월렛’ 이후 ‘세미스티치라인 명함지갑’까지 도트윈은 지속적으로 제품을 디자인하고 출시해갔다. 도트윈의 제품 디자인은 온전히 브랜드의 철학과 개개인의 점자를 각인해서 완성되어야 한다는 브랜드의 원칙을 따라갔다. 또한 수작업으로 제품이 제작되어야 하니, 제작방식을 고려한 디자인은 필수적이었다. 점자를 매개로 하는 제품이니 만큼 손에 닿아야 한다는 것, 선물하기 좋아야 한다는 것, 수작업의 제작방식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 점자가 각인되는 소재는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 등은 지갑을 디자인해가면서 우리가 세운 수칙들이었다. 이후 크고 작은 기준들이 생겨나면서 도트윈만의 스타일이 되기도 했다. 도트윈이 정했던 기준들을 벗어나 보고자 시도한 제품들이 있는가 하면, ‘가장 도트윈스럽다’라고 여겨지는 제품들도 있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브랜드의 제품을 디자인을 하는 과정은 기능만을 따르지 않는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철학과 가치는 제품을 통해 전달되기에 제품은 일종의 매개체이자 미디어이다. 그렇기에 제품은 브랜드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다 가장 잘 전달될 수 있는 형태로 디자인되어야 했다. 어찌 보면 요즘의 제품은 제품의 1차적인 기능을 넘어 2차적인 기능, 즉 제품을 통한 가치를 따라 형태가 완성되는지도 모르겠다. 브랜드가 처한 상황에 따라 디자인의 기준들과 원칙들이 변화하기도 했다. 그러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브랜드가 지켜야 할 진짜 가치가 무엇인지, 핵심 요소가 무엇인지를 구별해나가는 것이었다. 도트윈의 제품 변천을 보면, 그 시기에 나와 우리 회사가 고민했던 부분들이 여실히 보이는 것 같다. 도트윈이 만들었던 제품은 아직까지 누군가의 손과 마음에 남아, 그 기능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회사는 문을 닫았지만, 정성을 다해 제작한 도트윈의 제품이 지갑 그 이상의 기능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

이전 06화 진심을 담은 점자를 통해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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