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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인배 Nov 18. 2024

불안할 이유

어차피 어떻게 해도 불안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실, 나는 30대의 내가 직장인이 되어있을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다.

10대의 나는 현대미술가를 꿈꾸며 그림을 그렸다. 예고, 미대 입시를 하며 학창 시절을 온전히 보냈기에 내가 그렸던 나의 미래는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작품을 만드는 모습이었다.

회사라는 공간으로 출퇴근하며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두들기는 현재의 일상은 20살 때까지 상상해보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미대 입시에 실패하고 다른 전공을 선택해 대학에 진학하게 되면서, 나는 나의 학창 시절을 바쳐 기대하던 미래와 작별해야 했다.

그림을 그리지 않는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지?

내가 잘하는 것은 뭐가 있을까?


고등학교 시절을 오롯이 함께한 화실 친구들은 나를 제외하고 모두 미대에 진학했다.

사실 내가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임은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갑자기 나 혼자 외딴섬에 떨어진 느낌을 받았다.

그 외딴섬에 떨어진 느낌, 그것이 나의 대학교 신입생으로서의 첫 기억이다.


의식적으로 그림을 멀리하고자 했다.

대학교 1학년 1학기의 어느 밤에는 자려고 누웠다가 갑자기 손에 쥔 붓이 종이에 닿는 그 촉감이 생각났다.

서운함에 소리 죽여 엉엉 울었다. (사실 지금도 그 밤을 떠올리면 살짝 눈물이 난다.)

그 감각이 이제 나에겐 상관없는 미래라는 것이 너무 서러웠다.

하지만 그 서운함과 서러움을 그냥 가슴속에 묻고, 나는 대학 입학 이후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학창 시절에 미술을 했었다고 하면, 다들 '그림을 잘 그리겠네요.', '요새도 그리시나요?'라고 묻는다.

대학교 입학 이후 지금까지 나는 그림을 그린 적이 없다.

대학교 신입생 시절의 나는 나름 절박했다.

내가 취미로라도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되면, 분명 다시 예술가가 되겠다며 학교를 때려치우게 될 것 같았다.

강박적으로 그림은 다시 그리지 말자고 다짐했다. (이 때도 강박의 기질이 있었을까)

그리고 나는 다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다.


오랜 기간 해 온 것을 그만두었을 때의 나는 '잘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아이'였다.

취미도 특기도 내세울 것이 없다는 그 막연함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일단 내게 주어진 학문에 열심히 몰입하고자 노력했던 것 같다.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파고들었던 것 같다.

내가 손에 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불안은 그렇게 시작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이해하고 정립해 나가는 10대의 학창 시절에는 되고 싶은 것이 명확했다.

그랬던 것이 20대가 된 시점에 하루아침에 날아가버렸다.

나의 특장점이 사라졌다는 불안은 학습과 경험, 성장에 대한 욕구로 이어졌다.

다행히 우연히 선택한 전공은 적성에 맞아서(혹은 작품을 만들면서 이루고자 했던 자아실현 지점과 일부분 맞닿은 지점이 있어서) 수업을 따라갈 수 있었다.

그리고 다양한 외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쫓기듯이 빈 곳을 채워나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까?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사회에 나와 직업을 갖게 되고 나쁘지 않은 평가를 쌓아나가게 되면서도 여전히 불안했다.

아마 그것은 한순간에 나의 장기를 잃어본 경험에서 온 불안이 남았던 것 같다.

장기(長技) : 가장 잘하는 재주(표준국어대사전)

이것이 온전한, 영원불멸한 나의 장기일까?


디지털 시장은 끊임없이 변한다.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좋은 기획을, 좋은 커뮤니케이션을,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내가 현재 지닌 지식과 경험은 시장의 흐름 속에서 그 가치가 유동적이었다. 한순간 쓸모 없어질 수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나의 평가가 언제든지 다시 0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계속 '성장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살았던 것 같다.

성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아무 특장점이 없는 사람이 된다.
그렇기에 '지금' 받는 이 '좋은 평가'는 일회성이며 휘발적이다.
'지속적'인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내가 여기서 만족하면 안 된다.

나는 나를 계속 채찍질했다.

최초에 마음속에 그려왔던 진로를 버린 후, 새로이 갖게 된 진로에서는 뒤처질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전 회차에서도 언급했듯이, '성장'이라는 것 또한 막연했다.

성장이란 무엇일까?

성장(成長)
1. 사람이나 동식물 따위가 자라서 점점 커짐
2. 사물의 규모나 세력 따위가 점점 커짐
(표준국어대사전)

실력이 자란다는 것, 실력이 커진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나는 나의 업무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에 집중했다.

새로운 경험, 그리고 이전보다 확장된 경험. 그 경험들이 나를 성장시켜 줄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믿는다.


하지만 나의 불안하고 강박적인 나의 성향은 그 어떤 경험에서도 온전한 만족을 갖지는 못하게 만들었다.

1. 그 경험 안에서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결과물, 형태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 완벽하지 못한 것은 실패라고 치부해 버리고 괴로워하는 나

2. 지속적으로 새로운 경험 혹은 확장된 경험을 더 얻지 못할까 봐 계속 불안해하는 나(제자리 걸음하고 있다고 느껴지면 불안해서 참을 수 없었다.)

의사 선생님과의 진료에서 의사 선생님은 나의 이러한 모습이 분명 빠른 성장과 좋은 평가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하셨다. 불안하니 남보다 조금 더 앞서 나아갔고, 불안하니 강박적으로 꼼꼼히 업무를 수행하고 성장했을 것이라고, 하지만 나의 마음을 돌보고 단단하게 만들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그것이 나의 우울의 원인이었다.


완벽을 추구하면서 스스로에게 박한 평가를 내리고, 조금이라도 내가 제자리에 멈춰 있는 것 같으면 불안해지는 나.

그런 내가 나의 마음의 병을 키웠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성향인 불안과 강박을 버려야 하는 것일까?

근데... 그러면 나는 나태해지고 성장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마음의 병을 얻는 순간에도 내가 나를 돌보는 과정에서 남들보다 뒤처질까 봐 무서웠다.

그래서 진료를 받으면서도 느꼈다. 나는 불안과 강박을 버리지 못할 것이라고.

지긋지긋한 불안, 그러나 나를 키워온 불안.

그런 나의 성향이 사라지면, 나의 경쟁력을 잃을 것 같았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비단 나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나는 나와 같은 동지들을 여럿 알고 있다.

내가 잘하고 있는 게 맞는지 스스로를 믿지 못하면서, 내가 이것을 해낼 수 있을지 불안에 떨면서, 실수 혹은 실패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강박적으로 일을 붙들고 있는 직장인들.

이 것은 나의 이야기이지만,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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