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는 많은 힘이 있다. 말은 말일 뿐이라고 우리는 알고 있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말의 힘을 거부하지 못한다. 연인이 사랑한다고 말하기 전과 후 사랑하는 정도가 바뀌지는 않겠지만 우리는 사랑한다는 말을 좋아한다. 비슷하게 오늘 아침 여덟시에 자동으로 눈이 떠진 나는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계속해서 불안정하다는 느낌이 들어 안경도 끼지 않은 채로 유튜브에 들어가 검정치마의 <걱정하지마>를 틀었다. 검정치마는 나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는 나의 상황이 어떤지 그리고 심지어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를 테이지만 담배를 최근에 끊어서 그런지 조금은 걸걸한듯한 목소리로 걱정하지말라고 노래하니 마음이 가라앉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최근에는 검정치마 노래를 전혀 듣지 않았다. 여름까지만 해도 그렇게 좋아했었는데 무엇이 바뀐 걸까. 그와 동시에 세상을 떠나면 어떨까. 나는 요새 세상을 떠난다는 느낌을 주는 음악을 좋아한다. 나의 취향이 고급지다거나 그렇게 인디음악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지만 세상을 뜨는 듯한 음악을 좋아한다. 요새 검정치마를 듣지 않은 이유는 나는 원래 그의 음악을 그의 가사 때문에 좋아했고 요새는 가사가 중요한 노래들을 좋아하지 않고 그 이유는 가사는 현실을 노래하는 듯해서이다. 나는 요새 현실을 노래하는 노래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말에는 힘이 없다. 말은 나에게 세상을 떠난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말은 그저 현실을 해석할 뿐이다. 말에는 힘이 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돈을 아끼기 위해 무조건 커피는 사먹지 않고 내려먹겠다고 다짐했던 나이지만 오늘 일어나 생각해보니 이번주 내내 커피를 사먹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은행잔고를 확인하고 오늘만큼은 커피를 내려먹어야지라고 다짐한 나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커피콩을 갈기 위해 부엌으로 향했다. 그렇게 물을 끓이고 있는데 학교 후배에게 전화가 왔다. 딤섬을 먹으러 도시로 향하는 중인데 나도 혹시 딤섬이 먹고 싶지 않냐고 물어왔다. 딤섬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식욕이 그렇게 왕성하지도 않고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는 나는 딤섬이라도 먹어야지 라는 생각이 들어서 물의 온도가 75도 정도쯤 끓어올랐을 때 주전자를 끄고 옷을 대충 차려입고 대문을 나섰다. 나서기 전 물의 온도를 확인해보니 78도였다. 전원을 껐는데도 불구하고 왜 온도가 올라갔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씩 현실이 꿈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는데 주전자에 적혀있는 78의 숫자를 바라보고 있으니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고 잠시 아무도 없는 거실을 바라보고 있자니 창밖에 보이는 구름이 멈추었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나만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핸드폰 진동이 울리면서 후배가 언제쯤 올것 같냐고 물어왔고 다시 세상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삼초 정도 멈춘 세상에서 나는 자유로웠다.
엘리베이터에 1층을 누르고 조용히 열린 엘리베이터에 혼자 탑승했다. 탑승하는 순간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을 바라보았는데 조명이 어두워서인지 나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최근에 거울에 비친 내 자신의 모습을 삼초 이상 응시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어떻게 생겼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고 털이 꽤 빨리 자라는 나는 면도를 이틀에 한번은 해야 하기에 면도하기 위해서라도 세면대 앞에서 거울을 보고는 했었는데 요새는 세면대 앞에서 면도하기도 귀찮아서 그냥 샤워하면서 유리에 대충 비친 내 얼굴을 보면서 면도하고 그랬다. 아무 이유없이 오늘은 내 모습을 삼초 이상은 바라보아봐야지 라고 마음먹고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데 한 삼초쯤 시간이 지나갔고 나는 내 모습을 보는 것이 어딘가 부끄러웠고 왜 나는 내 자신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거울은 왜 그렇게 봐야 하는지 엘리베이터에 거울은 왜 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는 아무도 밖에 나가고 싶은 사람이 없는지 엘리베이터는 빠르게 아래로 하강했고 순간 어지러워진 나는 거울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모습이 흐려서 잘 보이지 않았다. 중심을 잡기 위해 발을 잠시 헛디딘 나는 거울에 등을 기대었고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엘리베이터는 이미 도착해 있었고 빨리 내리라는 듯이 나를 바라보던 할아버지 탓에 나는 고개를 숙이고 빠르게 엘리베이터에서 나갔다. 나는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약속장소까지 걸어가야하나 대중교통을 타야하나 택시를 타야하나 고민하던 나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는 느낌을 받았고 이것은 신이 나에게 택시를 타라고 하는 소리 같아서 그냥 택시를 탔다. 택시에 탑승하면서 나의 이름을 말하고 안전벨트를 맸는데 안전벨트를 매기 전에 뒤에서 트럭의 빵빵하는 소리가 들렸고 안전벨트를 끼우려고 집중을 하고 있는 나는 아, 안전벨트를 매려고 하다가 차에 치이면 억울하겠다. 새벽에 퇴근하면 무조건 택시를 타는데 회사에서 집에 오는 길은 상당히 위험해서 많은 노숙자들이 차도인지 인도인지 구분하지 않고 마구 걸어다니는 경우가 상당한데 그들은 사실 죽고 싶은 것인지 살고 싶은 것인지 왜 그렇게 마약을 많이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인지, 그들은 살려고 노력을 하지 않는다. 아니다. 그렇게 마약을 하는 것을 살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다. 가만히 누워있는 것은 살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다. 차도를 걸어다니는 것은 죽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살려고 죽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안전벨트를 맸고 가는 길에 창밖을 바라보며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은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나는 갑자기 카프카 생각이 났다. 그렇게 유명한 카프카이지만 자신이 쓴 글의 구십퍼센트를 불태웠다는데, 나는 노트북을 불태울수는 없고 메모장에 쓴 글을 지울 수는 있다. 그리고 <변신> 생각이 났는데 나는 마침내 카프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 멋있고 싶어서 읽은 <변신>에서 주인공이 벌레로 변하는 이유라던가 왜 카프카가 말도 안되는 벌레로 변하는 주제를 잡았다던가 등에 대해 인터넷에서 읽은 대로 수업시간에 열띤 토론을 벌이고는 했었지만 사실 나는 벌레로 변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 나는 내가 그것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안전벨트를 매고 창밖에 웃음을 띄며 조깅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그렇게 유명하다는 주니퍼 베이커리 앞에서 어떻게든 크로와상 하나 건지려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내 대각선에 무표정으로 운전을 하고 있는 택시운전사를 한번 바라보고 어느덧 제대로 빨지도 않고 여섯번째 입고 있는 나의 청바지에 있는 모래자국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니 나는 마침내 카프카의 <변신>을 이해할 수 있었다. 순간 내가 읽은 것이 정확히 번역본이였는지 영어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고 벌레가 매미였는지 바퀴벌레였는지 파리였는지도 기억이 나진 않았고 기억이 나는 것은 유튜브에서 본 <변신>의 영화로 각색된 버전의 예고편에 나온 이미지 뿐이었는데 분명한 것은 나는 바퀴벌레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바퀴벌레라는 생각이 또 들었고 나는 바퀴벌레였고 그래 씨발, 나는 바퀴벌레였다. 나는 마침내 바퀴벌레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바퀴벌레로 산다는 것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변신>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벌레인 것이 너무 부끄러워서 방 밖에서 나오지 못하지만 나는 내가 바퀴벌레인 것이 그렇게 부끄럽지는 않아서 방 밖에 나오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지만 내가 방 밖에 나오는 것이 싫을 뿐이었다. 바퀴벌레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사사삭 기어다니고 이것은 나와 바퀴벌레가 상당히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요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께에는 친구가 집들이 파티를 연다고 해서 파티에 갔는데 나는 도착하자마자 구석자리를 찾아 자리를 잡았고 근처에 있는 아무 술이나 따라서 그냥 들이켰다.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저 멀리 솟아오른 건물들 사이로 빨간 지붕을 가진 집 하나가 있어서 빨간색만 응시하고 있던 나는 그저 네모난 바탕에 진한 적색이 가득차 있는 이미지만 떠올리고 있었고 거기에 가끔 진한 검정색으로 낙서를 휘갈기는 상상을 하고 있었고 그 외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을 뿐이었는데 친구가 다가와 괜찮냐고 물어보았고 나는 괜찮은데 왜 계속 사람들은 나에게 괜찮지 않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세상을 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그냥 눈을 감았고 눈을 뜨니 나는 다시 택시 안이었고 크나큰 바퀴벌레가 다리를 움직이다가 멈췄고 택시도 멈추었고 나는 다시 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후배가 틴팅이 잘 되지 않는 창문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보았고 나는 왜인지 모르게 그냥 웃었다. 나의 웃음에는 아무 의미가 없는데 후배는 나의 웃음을 보고 그도 웃었다. 우리는 그냥 아무 말도 안하고 서로 보고 웃었고 딤섬을 먹기 위해 줄을 섰다. 말을 하는 것이 피곤한 나는 그냥 웃는다. 말에는 힘이 필요하다.
딤섬을 구매한 우리는 근처에 있는 공원을 찾아 걸어갔고 공원에 걸어가는 길에 학교 후배와 후배의 언니와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최근에 말을 많이 하지 않는 나는 말을 하는 것이 그렇게 익숙하지 않았고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과 내 머리에서 하고 있는 생각들과 거리감이 상당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 그 거리를 좁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 머리에 집중해서 단어 하나하나를 뱉는데 갑자기 후배가 멍을 때리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뭔말을 한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고 그러고 또 웃었다. 그러자 아차, 내 머리에 지나치게 집중했구나, 요새 나는 빨간색 파란색 검정색 등 색깔밖에는 떠오르지 않아서 머리에 집중하면 안되지, 라는 생각이 들어 이제는 내 입에 집중해야지, 하고 말을 뱉는데 이번에 후배는 나를 바라보면서 또 그게 무슨 말인지, 뭔말을 한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고 나도 내가 내 입으로 무슨 말을 했는지 떠오르지 않아서 당황스러웠다. 말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고 나의 머리와 나의 입을 잇는 것은 불가능할 뿐이었다. 나의 말이 오해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더 나쁠까 그냥 아예 이해가 되어버리지 않는 것이 더 나쁠까라는 생각이 들 무렵에 그냥 먹는 것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딤섬을 입에 쳐넣었다. 그렇게 십분 동안 정적이 흘렀고 예전같으면 정적이 불편했겠지만 나의 입은 그냥 먹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먹으면서 하늘이나 바라보았다. 그리고 후배와 눈이 마주쳤고 나는 그냥 웃었다. 그래 웃어야지.
딤섬을 다 먹고 너무 추워진 나머지 카페에 들어가서 나란히 셋이서 앉은 우리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도 말을 많이 했고 그들이 너무 편안해서인지 나의 기억력이 짧은 것인지 집에 돌아오는 길에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는데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내가 말을 했는지 웃었는지 말을 들었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내가 말을 할 필요가 있는지 말의 영향을 받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내가 유일하게 기억이 나는 것은 택시타고 딤섬을 먹으러 가는 길에 창밖에 비춰진 사람들의 모습이었고, 그때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택시 룸미러에 비춰진 운전자의 모습과 운전자가 룸미러 각도를 이상하게 잡은 나머지 살짝 보이는 나의 왼쪽 눈밖에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십사년동안 살아오면서 검정색인 줄 알았던 나의 눈은 알고보니 갈색에 가까웠고 갈색에 가까운 나의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느 순간 눈을 보고있는 것인지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렸고 아, 나의 눈알에는 중심이 없었다. 눈을 깜빡이는 것을 깜빡한 나는 나의 머리보다는 몸이 먼저 반응해주었고 눈물 때문에 다시 흐려진 나의 눈은 더이상 거울을 바라볼 수 없었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창밖을 바라보니 나는 다시 딤섬가게에 도착해 있었고 다시 사람이 되었고 나는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