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재경 Jul 23. 2024

쓸데없는 것들.

에 대한 고찰


1) 자전거

목적지


요새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자전거는 나에게 자유를 준다. 페달을 밟으면 내가 힘을 주는 것 이상으로 진전해 있어 노력한 것에 비해 많은 대가를 받는 것 같아 기쁘다. 바람이 부는 반대 방향으로 달리면 더욱 느리게 간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공기가 얼굴을 강하게 때리는 느낌은 내가 빠르게 가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나는 목적지에 빠르게 가는 것보다 빠르게 가고 있다는 착각을 하는 것이 더 좋다. 그래서 항상 바람을 더 잘 느낄 수 있는 고층빌딩 사이의 좁은 길로 달린다. 자전거가 나에게 자유를 준다는 것은 사실 바람이 나의 얼굴을 때리는 것일 뿐이다.


쓸데없는 것이란 무엇인가? 영화가 다시 좋아졌다. 필름포럼이 서울에만 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사실 서울에 있는 필름포럼이 뉴욕에 있는 필름포럼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었다. 다섯 시에 퇴근하고 호텔에 다섯 시 반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여섯 시에 영화관으로 향한다. 호텔 앞에 시티바이크라고 하는 공용자전거들이 모여있다. 나는 가입이 안돼있어서 탈 때마다 5달러를 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전거를 탄다. 지하철이 더 빠르고 3달러밖에 안 하지만 나는 쓸데없이 땀을 흘리면서 자전거를 탄다.


영화는 쓸데가 있나? 영화는 아무래도 쓸데가 없다. 필름포럼 앞에는 항상 이상하게 생긴 사람들이 앞에 위치한 아파트 창문을 바라보며 각자 담배를 피우고 있다. 다른 영화관들 많지만 나는 그 사람들이 좋아서 필름포럼에 간다. 나도 주춤거리면서 담배를 꺼내 물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데 다른 회사에서 면접을 보라는 문자가 왔다. 오—연기가 입에서 나오면서 든 생각은 면접 준비 해야 되는데, 아, 담배는 쓸데가 없다. 오늘 저녁은 쓸데없는 것들만 하면서 보내는구나.


2) 피츠카랄도

일기장


오늘 보러 간 영화는 <위대한 피츠카랄도>라는 영화다. 이 영화가 깐느 영화제에서 대상인가 감독상인가, 프랑스어로 된 상 하나 받았다는데 나는 초반부 이십 분 동안 졸았고 옆사람이 한숨 쉬는 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렸다. 그래서 영화 내용을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주인공이 아마존 밀림 속에 오페라하우스를 짓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졸면서 봐도 알 수 있었다. 이 꿈이 얼마나 강력하냐면, 주인공이 배를 지어서 밀림 속으로 들어간 다음 강의 끝자락에 다다르자 그곳에 있는 산을 깎아내고 원주민들을 동원해 배를 산너머로 이동시키려 한다. 배를 산너머로 이동시키는 작업을 하는 과정이 영화의 절반이다. 보면서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고 이건 레터박스 2점따리다—했는데 끝나고 나오니까 감독이 영화 제작 중에 썼던 일기를 팔고 있어서 18달러 내고 샀다. 2점따리에 18달러를 썼다니—나는 쓸데없는 소비를 했다. 아마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을 것이다. 죄책감이 들어서 그냥 4점 줬다.


이 영화는 인간의 쓸데없는 꿈을 그린다. 아니 무슨 아마존에 오페라하우스를 짓겠다고, 미친놈인가—라는 생각이 들고, 이 실화를 영화로 만들겠다고 실제로 배를 산너머로 이동시키려고 한 감독도 미친놈인가—라는 생각이 들지만 영화관에서 나와서 생각해 보니 나는 왜 전날밤 잠도 못 자서 피곤한데 자전거 끌고 혼자서 이런 쓸데없는 영화 보러 왔지, 미친놈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쓸데없는 짓들과 쓸데없는 꿈들과 쓸데없는 욕망들로 가득 차 있다. 그래도 나만 그런 건 아니고 감독인 베르너 헤어조크랑 주인공인 피츠카랄도도 쓸데없는 짓들과 쓸데없는 꿈들과 쓸데없는 욕망들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아서 나는 위안을 얻었다. 그래, 영화는 쓸데있을 수도 있어. 나는 목요일에도 영화를 보러 갈 것이다.


쓸데없다는 것의 반대말은 뭘까. 쓸데있다는 말은 너무 무게감이 없다. 나의 자아는 쓸데없는 것들을 갈망한다. 아나 사실 그건 거짓말이야. 나는 쓸데있는 것들의 필요를 알고 있다. 아니 알고 있는 게 맞으면 이러고 있겠냐? 쓸데있고 쓸데없고 아, 그거 해야 되는데, 이거 하는 게 맞나.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들지만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고 있으면 벌써 두세 시간이 지나있고 만약 이 시간에 잠을 잤다면 내일 쳐야 하는 시험에서 더 높은 점수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래, 나는 잠을 잤어야 했는데 벌써 여기까지 글을 써버렸는걸. 쓸데없는 것이라도 끝까지는 해봐야 되지 않겠나. 쓸데없는 것도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쓸데있어지는 날이 올 수도 있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쓸데있어지게 해주세요 부탁입니다.


3) 기타

커피


나는 항상 불안을 느끼고 산다. 뒤쳐지면 어떡하지, 나중에 후회하면 어떡하지, 무언가 놓치고 살고 있으면 어떡하지. 중학교 때는 지금보다도 이런 경향이 심했는데 그때 나는 고등학교 입시에 대해 불안감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내가 먼저 엄마한테 가서 수학과외 하나 더 해달라고 했다. 당시 나는 존메이어를 동경했고 존메이어 좋아하는 중학생이 대체적으로 그렇듯 나의 방에는 통기타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때 단기로 오셨던 과외선생님은 들어오시자마자 나의 기타를 보시더니 저런 쓸데없는 것들은 치워야 한다고,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하셔서 나는 수업이 끝나고 기타를 창고 깊숙이 넣어두었다.


그 기타는 과외선생님과 연이 끊긴 이후에도 창고에서 나오지 못했고 방학마다 하루에 세 시간 정도는 유튜브 보면서 존메이어 노래 하나씩 배우는 것이 너무 좋았던 나는 존메이어 노래 딱 두 개만 배우고 고등학교 진학한 이후에는 기타를 만지지도 못했고 존메이어 노래도 그냥 안 들었다. 선생님의 말씀이 크게 다가온 건지 나는 기타는 쓸데없는 것이라 생각했고 공부는 쓸데있는 것이라 생각했고 인생을 잘 살려면 인생을 쓸데있는 것들로 채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어 수학 역사 화학 생물 등 쓸데있는 것들로 나의 인생을 채워나갔다.


그런데 이젠 공부도 쓸데없다. 같은 부서에서 일을 하는 한국인 친구가 한 명 있다. 본인은 회사 들어가는 것을 일 년 미루고 석사나 딸까라는 고민을 했다고 했다. 그래서 오, 멋있네, 어떤 과 석사—라고 물어보니 부끄러워하면서 사학과—라고 대답하는데 나도 웃으면서 그래, 쓸데없긴 하네, 회사 잘 왔어—라고 장난을 쳤고 우리 둘 다 하하 웃었다. 웃음이 그쳐갈 때쯤에도 엘리베이터는 아직 14층이었고 우리의 오피스는 35층이어서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어색했는지 친구는 나름 대학교 역사로 외부활동 밀어서 갔는데—라고 얼버무렸고 나는 할 말이 없어서 맞아, 역사가 재밌긴 하지, 라고 했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우리는 말없이 오피스로 돌아가 엑셀을 공부했다.


쓸데있는 것들의 범주가 너무 좁아졌고 이제 내가 좋아하는 것들 중에 쓸데있는 것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전 06화 뉴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