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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재경 Sep 09. 2024

여름 / 겨울

끝나간다



여름이 끝나간다. 여름이 끝나간다는 말도 클리셰가 되어버렸다. 유튜브를 돌다 보면 모든 플레이리스트들이 여름의 끝남에 대해서 노래한다. 여름이 대체 뭐길래 사람들을 이렇게 절규하게 만드는지, 내가 가을이라면 쓸쓸할 것 같다. 


나는 원래 여름을 싫어했다. 이름부터 못생겼다고 생각했다. 어딘가 발음하다 보면 여드름 같기도 하고. 태어날 때 부터 땀이 많이 나던 나는 여름만 생각하면 하루에 샤워 두 번 해야한다는 생각에 진절머리가 났다. 유월부터 구월까지는 출퇴근시간에 지하철을 탑승해야 할 일이 있으면 늦어도 버스 아니면 택시를 탔고, 매일 집에서 나서기 전에도 어떻게 하면 덜 더울 수 있을까하고 매일 고민하고 있는 내 모습이 싫었다. 더위 하나 때문에 나의 여유가 없어져 더위와 싸우는 데 내 모든 에너지를 할애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어려서부터 겨울을 좋아했다. 겨울은 춥지만 안에 있으면 춥지 않았다. 겨울만 생각하면 초등학교 육학년 때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생각이 난다. 나의 방에는 왼쪽에 큰 창문이 있어서 공부하다가 바깥을 바라보면 작은 점처럼 보이는, 추워서 서로 부둥껴안으며 걷다가 뛰다가 걷다가를 반복하는 커플 몇몇과 집앞 놀이터 가로등 아래에서 눈사람을 만드는 아이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한창 사춘기 초기에 접어들 무렵이었던 나는 남들과 달라야만 하기에 한국어 말고 영어로 나오는 팝송을 들었고, 콜드플레이 정도면 인디라고 생각했던 나는 <Christmas Lights>를 삼성 MP3로 틀고 그렇게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아파트 위에서 바라보며 인간과 삶의 의미에 대해서 고민하고는 했다.


그렇다. 여름의 단순함과 다르게 겨울에는 어떠한 우울함과 깊이가 있다고 믿었다. 여름만 되면 사람들은 매번 해변에서 물장구를 치며 웃고 있거나 너무 더워서 가볍게 불평하거나, 두 개의 모습만 보여주는 것 같았다. 겨울에는 그와 대조되게 사람들이 집에 조용히 앉아 차 한잔 가볍게 마시며 깊이 있게 자아성찰의 시간을 가지는 것 같았다. 이러한 나의 생각은 스무살까지도 지속되었는데, 여름에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에는 막연하게 한강에 가서 서로 쓸데없는 장난을 치거나 아무 비트 틀어놓고 프리스타일 랩을 하다가 새벽 네시 쯤에 귀가했고, 겨울에는 인테리어부터 이쁘고 고급스럽게 되어 있는 이자카야 같은 곳에 와서 각자의 미래와 사랑, 그리고 내년에는 어떻게 더 열심히 살 것인지 등에 대해 담론하다가 새벽 한시 쯤에 막차를 타고 귀가했다. 바깥이 너무 추워서인지, 단순히 연말이라서 그런 것인지, 겨울이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이 좋았고 그 우울함에서만 올 수 있는 어떤 에너지가 있다고 믿었다. 겨울에는 막차를 타고 집에 가도 아쉽지 않았고 집에 오는 길에 바깥에 쌓인 눈을 바라보며 걸리는 어떤 최면 같은 것을 사랑했다.


겨울하면 생각나는 책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이다. 정확한 줄거리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미국에 있을 시절에 엄마가 한쪽에는 <노르웨이의 숲> 한국어 번역본을 펼쳐두고, 다른 한쪽에는 <Norweigian Wood>라고 쓰여져 있는 영어 번역본을 펴두고 평상에 앉아서 영어를 공부하던 모습이 기억이 난다. 대학 입시와 학교 공부, 그리고 디베이트로만 가득 차 있던 나의 고등학교 시절에 남아있는 몇 안되는 사진같은 기억 중 하나이다. 당시 아빠는 한국으로 먼저 들어가고 엄마와 나랑 동생만 더 작은 아파트로 이사해 살아가게 된 이후 첫 겨울이었다. 타지 중에 타지라고 볼 수도 있는 미국의 텍사스에서의 겨울이 추워봤자 얼마나 춥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으나, 나에게 그 겨울은 정말 추운 겨울이었고 그렇게 잔상처럼 남아있는 엄마의 모습과 엄마가 잠시 외출했을 때 몰래 훔쳐본 한국어와 영어가 휘갈겨진 공책은 정말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이유로 나에게 겨울과 동일시되는 하나의 이미지가 되었다. 꽤나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나는 크리스마스 시즌만 되면 산타나 루돌프 같은 이미지가 떠오르기보다는 <노르웨이 숲> 표지 커버 특유의 강렬한 초록색과 빨강색의 대조가 떠오르고, 그것은 여전히 나에게 심한 노스탤지아를 불러일으킨다.


나는 이제 만 스물넷, 사실 오년전만 됐었어도 스물여섯이라고 불리웠어야 할 나이가 되었다. 그렇게 겨울을 사랑하던 나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여름이 좋아졌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히 여름만 되면 매일같이 제초작업을 시키던 군대에서는 아닐텐데. 내가 좋아하는 바리스타 중 하나인 방현영 바리스타가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서 한 말이 기억이 난다. 바리스타의 하루를 촬영하는 컨텐츠였는데, 카메라맨이 주말에 친구들 만나면 어떤 이야기 하세요? 하고 물어보자 방현영 바리스타는 어렸을 때 인생을 진지하게 살지 않을 때에는 친구들과 진지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인생을 진지하게 살고 있는 요즘에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밖에 떠오르지 않네요, 라고 답변했다. 계절과는 관련이 없는 이야기였지만, 내가 여름을 좋아하게 된 시점과 인생을 말보다는 행동으로 살게 된 시점이 어딘가 맞닿아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 해변에서 물장구를 치며 웃는 사람들의 모습이 가벼워보이기 보다는 행복해보이기 시작했고, 너무 더워서 불평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어딘가 청춘인것만 같아 보이기 시작한 시기가 있었다. 그 시기는 매년 미뤄두다 결국에 <노르웨이의 숲>을 읽게 된 스물한살의 첫 겨울방학이었을 수도 있고, 군대 병장 시절 후임을 재우고 마지막 야간 말뚝근무를 서며 전역하면 뭐하지—앞으로 인생 어떻게 살지라는 생각보다도 당장 뭐하지—라는 고민을 하던 스물네살의 어떤 겨울밤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 수록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된다. 예전에 친한 친구와 마주보고 앉아 서로의 삶의 목적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술에 취해서인지 나는 삶에서 행복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내뱉었고, 친구는 화들짝 놀라며 자신은 무조건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행복은 절대 지속되지 않는 것이라고, 인생은 대부분 불행한 것이라고, 행복을 찾다보면 더욱 불행해질 뿐이라고, 삶은 아름다움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라고, 마치 엄청난 고난을 겪고 삶의 진리를 깨달은 철학자마냥 소리쳤다. 친구는 대체 아름다움을 찾는다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고 그것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나를 한심해했고, 나는 행복을 찾아야 한다는 친구의 말이 너무 순진하다는 생각에 대화를 중단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렇게 컴퓨터에 앉아서 타자를 두드리고 있자니 나는 이제서야 성숙한 것은 시니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삶의 의미를 찾아간다는 것은 소파에 앉아서 차를 마시며 생각한다고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되었고, 누군가의 단순해보이는 답변에 담겨있는 무게도 함부로 판단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말수도 적어졌고, 비슷한 이유에서일까, 이제는 겨울보다 여름이 더 좋아지게 되었다. 


구월 초에서 중순으로 넘어가는 요즘에 부쩍 바람이 차가워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사실 샌프란시스코에는 여름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 마크 트웨인이 말하기를 자신이 경험한 가장 추운 겨울은 샌프란시스코의 여름이라는데, 실제로 이곳은 남들이 여름이라고 말하면 떠올리는 유월부터 팔월까지는 최악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날씨가 나쁘다. 나쁜 날씨라고 말하면 비가 그렇게 많이 오나, 라고 상상할 수도 있을 텐데 차라리 비라도 왈칵 쏟아지면 좋을 것이다. 대부분의 아침들은 길 건너가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으며, 안개가 서서히 떠나가나 싶으면 해는 이미 져서 밤이 되어있다.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정확하게 칠월에 한국에서 넘어와서 정착하게 되었다.


그래서인가,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유튜브에 있는 플레이리스트 제작자들이 여름이 끝나감을 가슴이 아려오는 문구로 노래하면 나는 문득 깨닫게 된다. 나의 여름은 이미 끝났다. 대학교 시절 룸메이트와 앉아서 위스키를 매일같이 마시며 쓸데없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던 것, 아무 이유 없이 새벽 세시에 몇 안되는 친구들을 불러 밖에 나가 추위에 떨며 줄담배를 피우며 삶을 계획하던 것, 사랑은 무엇이고 졸업은 무엇이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기숙사 침대에 누워서 고민하던 것, 술만 먹으면 한강공원에 찾아가 물앞인지 물안인지 분간도 못하고 대충 걸터앉아 프리스타일 랩을 하던 것, 이 모든 것은 여름이었는데 나는 뭐 그렇게 겨울을 바라보았던 것인지. 야밤의 한강공원에는 모기가 들끓어 며칠동안은 미칠듯이 다리가 가려웠는데 이상하게 돌이켜 생각하면 가려웠던 날들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여름은 끝났고 여름은 항상 여름답게 단순하고 행복하게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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