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미국 간다
나는 개인적인 글을 쓰고 싶다. 글을 쓴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개인적이지 않은 것을 생각한다. 마틴 스콜세지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고 했다는데, 나는 창의성과는 별개로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니면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봉준호는 스콜세지의 말을 믿고 개인적인 영화들을 만들었다고 하나, 사실 그의 영화는 궁극적으로 픽션이기에 내가 생각하는 개념의 개인적인 것과는 다르다. 나는 개인적인 논픽션을 쓰고 싶다. 번지르르한 말이지만 사실 일기를 쓰고 싶다. 아직 일기를 쓰는 것 말고는 쓰고 싶은 것이 없다. 브런치에는 에세이스트로 지원했는데, 일기도 하나의 에세이일 수 있을까.
내일 미국에 간다. 나는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주변에 흔히 있는 미국에 살다 온 애 정도로 인식되었는데, 고등학교 때 다시 미국에 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대학도 항상 한국 대학을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국 고등학교를 다니다 보니 수능에 가망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빠르게 진로를 틀었다. 그런 나는 결국 대학도 미국에서 졸업하고 독립도 미국에서 한다. 가끔씩 침대에 누워서 생각해 보면 내가 미국에 산다는 사실이 어이가 없다. 학창시절에 전학을 많이 다녀서 그런지 나는 움직이는 것이 싫다. 그래도 또 움직이는 것을 보면 나는 이럴 운명인가 보다.
이상하게도 내가 미국에서 자란 곳들은 하나같이 그곳에 평생 살아온 애들밖에 없었다. 고등학교를 케이티라는 휴스턴 변방의 도시에서 다녔는데, 거기는 심지어 부모님들까지 평생을 휴스턴에서 보낸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친구들은 당시 외국에서 온 나를 부러워하며 이런 거지같은 곳에 굳이 왜 와서 사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그들이 거지같다고 할 수 있는 곳이 있어서 부러웠다. 거지같다는 말에서 그들은 이곳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텍사스에서도 몇 해를 보내지 못하고 이사했다. 텍사스가 어땠냐고 물어보면 나는 괜찮았다 정도의 표현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저번엔 친구가 나에게 너는 비행기를 일년에 몇 번 정도 타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나는 그걸 세볼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잠시 말을 멈추고 머릿속으로 세보았다. 올해는 비행기를 세번 탔는데, 한 해의 반이 지난 것을 생각하면 작년이랑 비슷하게 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세번 탔다고 말해주었더니 그는 화들짝 놀라며 비행기 너무 많이 타면 힘들지 않냐고 했다. 나는 비행기 타는 것이 힘든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또 잠시 말을 멈추고 머릿속으로 생각해 보았는데 나는 비행기를 싫어한다. 노래가사에 나오는 공항의 설렘은 잘 모르겠고 내가 앉아있던 공항 터미널의 벤치는 늘 혼자였고 이별을 동반했다. 비행기에 탑승한 이후에는 초록색 비상등 표시를 바라보며 멍을 때리려고 하는데, 비행기에서 생각이 많아지면 느껴지는 답답함은 정말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나는 떠나는 사람이다. 과거 누군가는 나에게 너는 떠나는 사람이라서 남겨진 사람이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서는 모를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남겨진 사람의 고통을 모르는 나는 화를 냈다. 한국에 집도 있고 가족도 있고 강아지도 있는데 떠나는 내가 힘들지 남겨진 당신이 힘들겠습니까. 그러자 그는 남겨진 사람은 일상을 공유하던 사람이 떠나버리면 생기는 공허함은 채울 수 없는 것이어서 고통스럽다고 했다. 떠나는 사람인 나는 내가 나의 뿌리를 떠나 느끼는 그리움만 알지, 아끼는 사람이 떠나는 공허함 같은 것은 잘 모를 거라고. 나는 고개를 대충 끄덕였지만, 떠나는 비행기에서 덮쳐오는 감정은 집에 대한 그리움보다는 어떠한 초월적인 공허함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내일 미국으로 떠난다. 밖에는 비가 쏟아진다. 내가 살게 될 서부에는 비가 잘 오지 않는다. 떠날 때가 되니 갑자기 비마저 아름답고 한국적인 것처럼 보인다. 신이 나에게 위로라도 해주고 싶으신 건지, 갑자기 서울지방병무청에서 예비군 동원훈련에 참석하라는 카톡이 왔다. 날짜를 확인해 보니 7월 16일이라는데, 아, 나는 그때 미국에 있어서 예비군을 못간다. 그래, 예비군보다는 미국이 낫지. 그렇게 또 미국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