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은 적이 없는 것을 어찌 잃겠는가
인간, 실격. 인간의 존재를 판단하는 것은 대체 누구인가. 실격이 있다면, 반대로는 합격이 있을 것이다. 합合. 합쳐지는 것. 인간은 타인과 '합'쳐져 세상에 속해야만 인간으로서 '격'을 얻는 것인가.
반면, 실격이란 어떤가. 기묘하게도 '분격'이라거나, '부격'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작중에서 요우와 호리끼가 옥상에서 술을 마시며 나누던 농의 '엔터'를 예로 들면, 인간으로서 '합격'의 엔터는 '분격'이 맞을 것이다만(단순히 언어적 의미는 아닐 것이나) 엄밀히 반대말로 '실격'이 쓰이는 것은 왜인가.
그것은 아마 요우가 그리도 두려워하던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타인을 '잃어서는' 안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절대 요우는 인간으로서 실격되지 않았다. 슬프게도 단 한 번을 타인을 얻은 적이 없던 요우가 타인을 '잃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니까.
요우는 유복한 집의 아들로 태어난다. 태생적으로 타인의 분노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요우. 상대가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는 내심을 알 수 없었던 요우는 어려서부터 그러한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거짓된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한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유년의 우수한 성적과 일부러 하는 우스꽝스러운 행동이 합쳐져 문제없는 학창 시절을 보내던 중, 이를 꿰뚫어 본 친구를 만나게 된다. 그 친구가 자신의 그림을 칭찬하자 화가로의 꿈을 키우지만, 그 꿈 때문에 만난 호리끼로 인해 술과 담배, 여자로 찌든 방탕한 삶에 발을 들인다.
그런 방탕한 삶에서 만난 술집 마담 츠네코에게 얹혀살지만, 집에서의 지원이 끊기면서 자괴감에 빠지고 츠네코와 동반자살을 시도하지만 혼자 살아남는다. 이런 사건의 결과로 집과의 단절과 함께 돌이킬 수 없는 폐인의 길로 빠진다.
이후로도 여러 여자들을 거치고 삼류 만화가로의 삶을 이어가다 순진한 처녀인 요시코를 만나 결혼하지만 요시코가 그 순진한 신뢰의 결과로 윤간을 당하는 모습을 본 뒤 다시 수렁에 빠져든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어느 정도 허문 요우에게 신뢰의 결과로 윤간을 당하고 신뢰가 흔들려버린 요시코의 모습은 더욱 강력한 두려움과 좌절감을 안겨준 것이다.
술을 넘어 결국 모르핀에 중독된 요우는 결핵까지 걸려 최악의 상황에 이르자 자살을 시도했다가 집으로 장문의 편지를 보내고, 형들의 도움으로 정신병원을 거쳐 시골로 요양을 가면서 수기를 남긴다.
작중 화자는 이 수기를 얻은 한 작가로, 기묘한 요우의 사진 세 장에 흥미를 느껴 이를 출판하기를 다짐한다.
위에 언급했듯이 요우는 인간 실격인가. 아니다. 그저 요우는 공감능력이 결여된, 사이코패스에 가깝다. 수많은 사이코패스 범죄자들과 비교해도 그렇다. 그들은 상대의 고통과 슬픔에 공감하지 못한다. 요우 역시 그렇다. 그들이 여성들에게, 특히 매춘부나 순진한 처녀와 같은 사람들에게만 진면목을 보이는 것은, 아마 자신의 그 부족한 공감능력을 보충할 만큼 '과잉'되게 공감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은 우리가(요우는 세상이라고 지칭했다.) 어떻게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남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는 진심을 숨기고 가면을 쓴 채, 나와 타인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계속하고 있다. 요우의 삶은 줄타기를 할 수 없는 삶이었다. 요우는 상대방이 잡고 있는 줄을 잡을 수 없었으니까.
전체적으로 '아몬드'와 비슷한 느낌의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공감능력의 결여. 그로 인한 개인의 고뇌와 번민. 다만, 아몬드가 좀 더 감동과 따뜻함에 방점을 찍었다 치면 이 소설은 오로지 인간 본연의 외로움과 타인과의 관계에서 공감이 결여되면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더욱 집중한 느낌이다.
아무래도 고전인 만큼, 만연체에다가 표현 자체도 올드한 느낌은 강하다. 게다가 수기 형식으로 서사가 진행되는 만큼 어찌 보면 서술이 중구난방이며 제 멋대로인 느낌도 있다. 이런 부분이 읽는데 방해가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집중해서 읽다 보면 되려 시쳇말로 '양가감정'이라고 불리는(개인적으로 싫어하는 표현이다.) 인간 본연의 내면에 대해 매우 잘 표현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합격인가. 세상은 인간으로서는 합격인가. 나는 인간으로서 합격인가. 도대체 그 판단은 누가 내려주는 것인가. 자신의 마음을 한 번이라도 감춘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봄직한 소설임에 틀림없다.(스테디셀러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본 서평은 서평단 참여로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증정받아 작성하였으며,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로 적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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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 셋방살이 중입니다. '작가의 서재' 방만 제 관할입니다. ㅠㅅ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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