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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르군 Jan 30. 2022

집사의서평 #22 타인의 집

역시, 역시.




들어가는 말


 아몬드라는 소설로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오른 작가의 소설집이다. 단순히 이 책을 위해 써진 글도 아니고, 17년부터 여기저기 발표된 단편을 모아 묶은 소설집이다. 

 기존에 발표된 단편들을 모아 묶는 것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부정적인 면도 있고, 긍정적인 면도 있다. 독자는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보석 같은 작가의 단편을 한 곳에 모아 볼 수 있어 편하다. 하지만 어찌 보면 이미 발표된 작품을 굳이 다시 묶어 책으로 펴낸 출판사의 의도는 좋게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그저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것이, 아무래도 작가의 다양한 색이 들어있는 단편을 일일이 찾아보는 수고를 덜어주기도 하고, 여러 색체의 단편들을 모아 보면서 시간에 흐름에 따라 변하는 작가의 사상이나 혹은 투영된 시대의 흐름까지도 엿볼 수 있다는 장점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타인의 집은 꽤 묘하다. 처음에는 책을 내기 위해 쭉 써 내려간 단편들이라고 생각했다. 여덟 개의 단편이 비슷한 색채를 띄고 있었기 때문이다. 근 4년 동안 시간차를 두고 써 내려간 단편들이 이렇게나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니. (물론, 상자 속의 남자는 아몬드와의 연관성 때문인지 살짝 어긋나 있었다.) 

 개인적으로 단편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손원평 작가의 확실한 색을, 느낌을 알 수 있게 된 단편집이었다. 



불행이 있다


  보통 소설집은 수록된 단편 중에서 대표 격인 작품을 제목으로 가져온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집의 제목은 적절했을까. 약간, 의문스럽다. 

 여덟 개의 단편 중 여섯 개의 이야기는 모두 '집'과 관련이 있다. 물론 물리적인 장소의 집과 상징적인 집을 의미한다. 4월의 눈에서는 부부 사이의 비극과 슬픔, 괴물들은 가정폭력과 부모, 자식의 단절. zip은 부부의 잘못된 결합, 아리아드네 정원에서는 가정이 부재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타인의 집에서는 세입자의 세입자로 사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이 모든 이야기에서 내가 일관되게 느낀 것은, 나와 타인이 만나 이루는 집이라는 공간과 공감각의 쓸모없음이었다. 주인공들은 갈등이 해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는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많은데, 이마저도 개운함은 없이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우주. 그 광활한 희망과 가능성과 무지와 미지의 세계는, 단순히 '집'+'집'이라는 사칙연산 중 단 하나 더하기만으로 완성되었다. 그렇게도 단순한 것. 우리의 세계. 하지만 결국 더하기라는 것은, 홀로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홀로 될 수 없다는 것이 타인과의 부대낌을 야기하고 만다. 

 집을 구성하기 위해서 우리는 타인과의 결합을 강요받는다. 그렇게 완성된 우리의 우주는 결국 타인과의 갈등으로 금이가고 삭아간다. 갈등의 해소는 결국 타인의 배제. 그러나 우리가 갈등을 회피하고자 갈등을, 타인을 배제하는 순간, 결국 우주는 무너져 내린다. 

 상자 속의 남자는 아몬드와의 연관성 때문인지 갑자기 훈훈한 바람이 불어 당황스러웠다. 아몬드와 겹치는 장면이 반갑고 재미는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소설집의 색과 어울리지 않게 느껴졌고, 주인공이 가진 생각과 다르게 사건에 개입하는 장면은 개연성이 떨어졌다. 게다가 우연에 우연이 겹치는 사건으로 주인공의 생각이 변하는 모습은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인간 본연의 심성이라고 반박한다면 할 말은 없겠지만.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는 흔히 문학 스캔들로 가끔 언급되는 도용과 표절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연찮게 재도용되는 소설과 결국은 피해자로 남는 원작자의 이야기. 그렇게 큰 느낌이 남지는 않은 작품이었다. 

 열리지 않은 책방은 해설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작가의 필치와 좀 괘를 달리하는 작품이다. 글이란 것이 쓰다 보면 가끔 다른 것도 쓰고 싶은 법이다. 매일 양념치킨만 먹을 수는 없으니 가끔 반반이나 후라이드를 먹는달까. 아몬드나 본 책의 다른 단편들에서 보여주는 서사가 없이 약간 몽환적이고 흐릿한 작품이다. 다른 말로 하면 글에 개연성이나 논리는 없다는 것. 대신 마치 한 편의 시처럼 극도의 추상으로 범벅된 작품이다. 



역시, 역시.


 개인적으로 단편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가능하면 장편, 못해도 중편 정도의 길이를 좋아한다. 가능한 서사를 많이 하고, 친절하게 이야기를 해주길 바란다. 

 작가는 글로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글의 장점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일방적인 통보일 뿐이라는 것. 이야기를 하고 질문을 받거나, 오해를 다잡을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난 글을 쓸 때에도 가능한 독자가 궁금해할 만한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이라도 더 서술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면에서, 소설이라는 글이 너무 구체적이면 금세 지루해져 버린다. 

 내가 아직까지 갖추지 못한 능력이 그런 것 같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독자가 글 속에서 자연스레 깨닫거나 느낄 수 있게 적는 것. 하지만 아무리 빼어난 작가라도 어느 정도 지면을 할애해야만 독자가 자연스럽게 알 수 있도록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내게 단편집은 좀 부족하다. 내 상상력, 혹은 내 공감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그 짧은 지면 속에서 주인공의 모든 서사를 느끼고 추측하고 상상하기에는 내가 너무 굳은 모양이다. 

 그럼에도 소설집 거의 모든 부분에서 느껴지는 가슴 답답함과 무거움, 쓸쓸함과 안타까움은 각각 소설이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다음 소설이, 그 전 소설이, 마지막 소설이 부연해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마케팅이, 브랜딩이 답이라지만, 서평을 하면서 겪게 되는 소설들을 보자면, '괜히 베스트셀러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 소설집 역시 그런 생각이 들게 했다. 

 하지만, 역시 아몬드의 후광을 무시하긴 어렵다고도 느꼈다. 최근 읽은 여러 젊은 신예 작가님들의 단편집과 비교했을 때, '비교불가' 수준으로 빼어난 느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요즘 같은 '감성 출판'시대에, 아픔의 소설이라니. 약간은 취향 저격당했다. 




개인 블로그 : https://blog.naver.com/uyuni-sol

※ 블로그 셋방살이 중입니다. '작가의 서재' 방만 제 관할입니다. ㅠㅅ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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