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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르군 Feb 02. 2022

집사의서평 #23 일회용 아내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세요.


들어가는 말


 SF 장르에 일회용 아내라는 제목, 그리고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똑같아 보이는 여성을 집게로 집어 올리는 표지. 누가 봐도 이건 복제인간에 대한 이야기구나 싶다. 여러 번에 걸쳐 언급하지만, 이미 인류의 창작은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진부한 이야기라거나 뻔한 이야기라는 말은, 솔직히 거의 대부분의 창조품에 통용되는 평가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책을 읽는 것은 음식을 먹는 것과 같다. 똑같은 김치찌개라도, 거의 매번 미묘하게나마 맛이 달라지니까. 게다가 어쩔 때는 이것이 내가 알던 그 김치찌개란 말인가! 싶을 정도로 맛있으니까. 그런 면에서 이번 책은, 글쎄. 



직업윤리는 해피엔딩에 비하면 중요하지 않죠. 암.


 에벌린은 생명공학자로, 어릴 적 강압적인 생명공학자 아버지의 가정폭력과 억압 속에 성장한다. 우연한 기회로(?) 아버지가 실종되고, 그 보험금과 어머니의 전폭적인 지지로 생명공학자가 되었다. 수많은 연구와 고민 끝에 인간의 뇌지도를 통해 복제인간을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다. 그런 천재적인 그녀에게도 해결하지 못한 것이 있으니, 임신과 임신을 원인으로 한 남편 네이선과의 갈등이었다. 

 늘 자신보다 좀 부족하며 신중함이 떨어지는 남편과의 결혼 생활은, 상의 없이 중절을 함으로써 파탄에 다다른다. 그 뒤로 남편은 다른 여자를 만나 약혼을 했다. 어느 날, 약혼녀가 연락을 해 만나기를 원한다. 에벌린은 주위 만류에도 불구하고 만나러 나가고, 네이선의 새 약혼녀가 자신의 복제인간임을 알게 된다. 심지어, 임신한.

 에벌린은 임신한 마르틴을 보며 혼란에 빠진다. 네이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자신의 직업윤리와 사회적 성공의 양자택일 문제. 믿었던 보조 세예드의 배신. 그리고 자신과 자신의 복제인간 사이에서 오는 기묘한 열등감과 경쟁심리. 

 에벌린을 만난 마르틴은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 네이선에게 이야기를 꺼내고, 결국 복제가 실패했다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에벌린을 복제하지 못했다는, 결국 또다시 '그런' 에벌린을 만들었을 뿐이라는 생각에 마르틴을 죽이려던 네이선이 마르틴에게 되려 살해당하면서 이야기는 혼돈으로 치닫는다. 

 결국, 복제의 시작은 복제로 끝을 낸다. 심지어 나름, 해피엔딩이다. 물론, 내가 과학자는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해피엔딩이어도 괜찮은가 싶다. 영화나 소설에서도 수없이 나오는 직업윤리. 복제인간의 인권. AI의 인격화. 이런 고민들은 '소름 돋게도' 이 소설 안에서는 없었다.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세요.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세요.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좀 웃기지만, 이 가사가 참 '지시적'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사랑을 내가 볼펜으로 쓰든 라카로 쓰든 무슨 상관인가. 가사의 바람처럼 지우개로 깨끗이 지운다고 상처가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뜬금없이 이 노래를 꺼낸 것은, 이 소설의 필치가 그랬기 때문이다. 감성 SF의 시작인가. SF소설인데 지면의 대부분은 그저 주인공의 내면 표현에 할애되어있다. 주인공의 유년시절에 대한 회상과 유년시절이 주인공의 현재에 미친 영향. 그리고 유년시절 정서적 학대가 세뇌되어 현재로 미치는 부작용. 남편에 대한 비아냥과 무시. 자신의 복제인간에 대한 비하. 그리고 뒤에 따르는 미묘한 경쟁심리와 열등감.

 SF소설이지만, 어떤 상상력을 자극하지는 못했다. 워낙 복제인간이라는 소재가 많이 쓰인 것도 있겠지만, 소재를 전달하는 필치가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차라리 순수문학을 표방했다면? 뭐, 그렇다고 하기에는 에벌린의 심리묘사가 또 부족하긴 하다. 스릴러라고 하기에도 조금. 읽는 내내 별다른 긴장감이 생기질 않았으니까. 

 가끔, 순수문학을 읽다 보면 솔직히 의미 없는 수사와 미사여구에 지칠 때가 많다. 물론, 글로 아름다움을 표현해 내는 것을 좋아하고 동경한다. 그럼에도 의미 없이 긴 문장은 독자를 지치게 한다. 이 소설 역시 그랬던 것 같다. 에벌린의 심리를 묘사하기 위해 갖가지 미사여구와 관용구, 표현력을 남발한다. 문제는 이 소설이 SF면서, 인간복제와 살인, 은폐가 주된 소재라는 것이다. 

 일견, 인간 복제를 업으로 삼고 있는 에벌린이라면 복제인간의 시체 열댓 구를 봐도 별 감흥이 없을 수 있고, 전 남편에 대한 분노로 그 죽음에 별 감정이 없을 수 있고, 자신과 같지만 자신과 다른 복제인간에 여러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개연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는 사건 흐름이긴 하다. 하지만 여기까지 들여다보기에는 약간 거추장스럽고 지루한 실험가운을 입은 느낌이랄까. 

 인간의 본질이라든지, 복제인간을 대하는 심리 같은 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모를까 SF 스릴러 같은 소설을 기대한다면 비추천. 뭐, 알고 보니 에벌린도 아버지의 복제인간이었다던지, 혹은 에벌린이 네이선의 1호였다던지, 마르틴이 에벌린과 네이선을 처치하고 진짜로 살기 위한 음모였다던지 하는 내용이었다면, 상투적이긴 하더라도 긴장감과 반전감은 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상투적인 반전마저 안타까울 정도로 평이하고 지루한 소설이었다. (마지막 장면이 에벌린의 유년시절과 겹쳐지면서 이게 혹시 반전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냥 내 욕심이 만들어낸 허상 같다.)




본 서평은 서평단 참여로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증정받아 작성하였으며,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로 적었음을 밝힙니다.



개인 블로그 : https://blog.naver.com/uyuni-sol

※ 블로그 셋방살이 중입니다. '작가의 서재' 방만 제 관할입니다. ㅠㅅ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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