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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르군 Feb 02. 2022

집사의서평 #24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온 우주에 유일한 책



들어가는 말

 

 수많은 직업들이 있다. 이제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어불성설인 세상이다. 심지어 나도 본업이 있고, 작가라는 부업(수입의 여부는... 흠흠.)이 있다. 일단 정년이 보장되느냐의 문제는 차치하고, 백세시대의 문이 열리면서 우리가 갈 길이 거의 2배는 길어졌다. 그 문을 연 것이 잘한 일인지 궁금하다. 직업 하나로는 '평생'을 살 수 없게 되어버렸으니까. 그래서 직업이 많아진 것일까싶기도 하다.

 그렇게도 많은 직업들의 이야기를 살면서 모두 만날 수 있을까. 상대적으로 흔한, 식당 사장님, 공무원, 택시기사, 택배기사... 같은 직업들은 살면서 흔히 우리가 마주한다. 그리고 공기처럼, 우리의 삶에 거의 필수적으로 필요한 그 직업들에 대한 궁금증은 적어질 수밖에 없다. 혹은, 궁금할 필요가 없는 걸지도. 

 하지만 그렇게 궁금하지 않은 직업들이 있는 반면, 궁금해할 수 없는 직업도 있다. 애초에 전혀 모르는데 궁금해할 수는 없으니까. 이 책에서는 그런,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책 수선가의 삶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책이라는 타임머신


 작가는 이제 8년 차 책 수선가이다. 외국에서는 책 보존가라고 불리는 직업으로, 아마 흔한 직업은 아니지 싶다. 애초에 이 책을 접하기 전에는 모르던 직업이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흔해진 옷 리폼이라는 행위도 유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뭐든 만들어내고, 만든 것들을 뭐든 수선해내는 세상에서 책 수선이 상상불가의 행위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흔히 책의 수선을 상상하지는 못한다. 책이란 것은 읽히기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읽고 습득하고 나면 물리적 위치는 크게 상실된다. 한 번 읽은 소설은 이미 내용을 알기에 흥미를 상실한다. 한 번 배운 지식은 반론의 지식이 생기지 않는 한 배움의 욕구를 상실한다. 물리적 가치를 상실한 책의 효용은 지적 허세를 위한 장식이거나 본래의 목적 외의 용도, 냄비받침이나 가구괴임용으로 전락한다. 

 그럼에도 작가는 수많은 책의 수선 사례를 우리에게 전한다. 그리고 그 수선에 스며들어 있는 책의 또 다른 가치를 들려준다. 

 어릴 적 친구가 되어준 대사전, 어느 목사에게 선물 받아 자식에게 물려주고픈 성경, 6.25. 를 겪은 할머니의 일기장. 어릴 적 해지도록 읽은 동화책. 

 단순히 종이와 잉크의 활자로 이뤄진 전달체인 책의 물리적 효용을 넘어서, 페이지, 페이지마다 우리의 시간과 행복, 추억과 기억을 묻혀 색이 발한 타임머신 캡슐.

 그런 의미에서 책 수선이란, 책을 그저 잉크로 인쇄된 이야기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 책에 내 이야기를 덧씌워 재발행된 나만의 이야기를 다시 추슬러서 함께 미래로 가기 위한 행위 아닐까.



온 우주에 유일한 책


 언제나 물리적인 것은 시간의 흐름에 취약하다. 목재는 시간이 흐르면 뒤틀리고 갈라진다. 강철도 결국 녹이 슬고 부스러진다. 사람마저도 시간에 흩날린다. 얇디얇은 종이로 이뤄진 책이야 오죽할까.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시간의 흐름에 무색하게 지고지순하다. 되려 시간이 흐르면 그리움이 더해지고, 추억이 되면서 죽음의 순간까지도 한 장의 흑백사진처럼, 오래된 책장 내음처럼 구수해진다. 

 늘, 책의 완성과 그 평가는 온전히 독자의 몫이라는 말을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책 수선을 맡기는 그 책이 지구 상에 유일한 책은 아니다. 적게는 몇 백 부, 많게는 몇 천, 몇 만 부가 인쇄됐을 책이다. 하지만 수선이 맡겨진 '그 책'은 온 우주에 유일한 책이다. 

 작가가 썼으되, 독자가 완성한. 독자의 시간이 고스란히 묻고, 추억이 칠해지고, 향기가 배고, 눈길을 흘린 페이지가 가득 찬 그 책은 오로지 단 한 권이다. 

 그런 책을, 온전히 다시 그 주인의 품으로 돌려보내 주는 직업은 매우 감성적인 것 같다. 




개인 블로그 : https://blog.naver.com/uyuni-sol

※ 블로그 셋방살이 중입니다. '작가의 서재' 방만 제 관할입니다. ㅠㅅ ㅠ


개인 인스타 : https://instagram.com/jeakwang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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