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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르군 Feb 12. 2022

집사의서평 #27 아버지에게 갔었어

울어라!


들어가는 말 


 다른 말보다는 인스타에 작문했던 두 문장으로, 서문을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 아버지 : '아빠'라고 부르며 생글생글하던 내가, '아빠'라는 말은 눈시울이 뜨거워 아부지라는 말로 

              대신하고 곱은 등을 곧은 등에 뉘인다.

- 엄마 : 그 어떤 이야기든 가슴 벅차게 슬퍼지는, 세상에 없는 사랑이 되는. 그래서 매번 눈시울이 뜨거워

           외면하고 마는 사람



할 말 없다


 헌은 불의의 사고로 딸을 잃고 본가에 가기를 멈춘다. 어느 날, 어머니가 병환 치료를 위해 서울로 가게 되면서 아버지가 혼자 남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어머니가 셋째와 서울로 떠나는 날, 혼자 남은 아버지가 그렇게 울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3년 여만에 집으로, 아버지에게 간다.

 아버지는 뇌경색의 후유증인지, 혹은 전쟁의 후유증인지, 혹은 유신의 상처인지 모를 원인으로 불면과 몽유의 증상을 겪은 지 오래. 주인공은 그런 아버지를 옆에서 모시면서 그동안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애써 외면하고 모르는 척했던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게 된다. 

 6. 25.부터 4. 19. 등. 긴 세월을 말없이 버텨낸 아버지의 삶을 조금씩 알아가던 헌은, 늦게나마 다른 형제들과 어머니, 주변인에게 물어가며 개별적 아버지의 모습을 알아간다.

 늘 '할 말 없다.'는 아버지. '할' 말이 없는 것인지, 할 '말'이 없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아버지의 삶을.

 


울어라


 워낙에 감성적인 주제다. 특히나 내게는 취약한 주제. 부모님을 주제로 한 소설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내 개인적인 감정을 이용당하는 느낌이랄까. 엄연히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작가의 능력인데, 이 소재는 작가의 능력과는 무관하다시피 하게 내 감정이 절로 흘러나오는 기분이라 책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에.

 게다가, 이 작가는 지난 몇 편의 소설에서 표절논란에 휩싸였다. 개인적으로 약간 과민하게 규칙에 얽매이는 편인데, 표절이라니 용서하지 못할 규칙 위반이다. 하지만 이 소설이 표절인 것은 아니고, 게다가 근 4년 여만에 나온 소설이라니 이번엔 아니겠지, 했다. 게다가 표절 의혹이 인 작품을 다 읽은 것도 아닌 입장에서, 표절의 가부를 여론만 보고 판단하기에는 조금 오만하다 싶었다. 

 초반 소설은 조금 지루했다. 거의 활자중독에 가까운 나로서도 지치는 문장. 등단도 못한 주제에, 이런 말은 웃기지만 대중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과도하게 현란한 수식과 문장의 기교는 순수문학의 이루 못할 단점이다. 그렇다고 탓할 것만도 아닌 것이, 서정적이고 수려한 문장은 단순한 글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것이고, 움직이지도 않고 흑과 백, 두 색으로만 이뤄진 글이 독자에게 조금 더 역동적이고 생경하게 다가기 위해서는 필요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초반 문법은 쉬이 익숙해지지 않을 정도로 과도한 수식과 어법으로 지루했다. 거기에 더해 주인공의 독백의 형식을 빌어 쓰여있기에 감정 이입하기가 되려 어려웠다. 대부분의 글이 화자의 일방적인 이야기임에는 분명하지만, 내용뿐만 아니라 서술방식에서도 독백적인 요소가 과도하게 스며들어있어서 더욱 감정이입이 어려운 면이 있었다. 

 그럼에도 역시나, 아버지라는 소재는 너무 강렬했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2~30년대 출생에 시골에서 자란 부모님을 둔 독자라면 분명 눈시울을 붉힐 수밖에 없을 부분이 너무 많았다. 실제 나도 몇 번 눈가를 훔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아버지와 너무나 비슷한 삶을 사신 것 같아서다. 전쟁통을 겪었고, 학교에 다니지를 못했으며, 채석장일, 막노동 같은 일들을 돈을 벌기 위해 전전하고, 그렇게 번 돈은 오로지 자식들 뒷바라지에 쓰이며, 나라에서 장려해서 잠깐 소도 키우고, 그렇게 늙어 집에 오지 않는 자식들을 어두운 눈으로 멀리 그리는. 그 시대 아버지들의 공통된 모습인 것일까. 

 큰오빠와 아버지 간의 편지, 둘째 아들과의 인터뷰나 점점 기억을 잃는 모습들에서 자꾸만 내 아버지가 떠올라 중간에 책을 덮을까도 고민했다. 하지만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건, 이 소설에서 내가 얻어갈 수 있는 것은, 못나서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내 마음에 조금이나마 울림을 줘서, 다음에 집에 들렀을 때는 조금 더 아버지의 손을 꼭 잡을 수 있기를, 혹은, 잠깐 더 아부지 옆에 앉아 옛날이야기를 물어볼 수 있기를, 만약 기회가 된다면 나도 아버지의 인생을 한 번쯤은 글로 쓸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소설은, 아버지의 삶을 재조명한다. 그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 아무 말 없이 살아오고 아무 말 없이 자식 여섯을 키워내고 이제 스러져가는 삶을, 그 그늘에서 살면서도 관심 없던 딸이, 모든 자식이 그렇듯, 조용하고 깔끔한 죽음이 자식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라 여길 때 조명을 비추는 것이다. 

 뛰어난 문체와 디테일한 묘사, 탄탄한 스토리를 가진 소설이다. 거의 자전적 소설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런데 왠지, '울어라!'라고 속삭이는 신파극을 본 것 같은, 약간 불쾌한 이 기분은 뭘까. (이건 약간 내가 개인적으로 너무 감정적으로 취약한 부분을 건드려서 생긴 것일 수도.)




개인 블로그 : https://blog.naver.com/uyuni-sol

※ 블로그 셋방살이 중입니다. '작가의 서재' 방만 제 관할입니다. ㅠㅅ ㅠ


개인 인스타 : https://instagram.com/jeakwang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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