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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르군 Feb 17. 2022

집사의서평 #28 펄프픽션

햄버거와 떡볶이를 뱀파이어와 외계인은 먹지만  로봇은 먹을 수 없지


들어가는 말


 대놓고 펄프픽션이라니. 게다가, 단편집이다. 제목에다 대문짝만 하게 '싸구려'라고 적어 놓은 데다가 다섯 개의 단편, 그것도 뒷면의 작품 소개를 보면 학원 괴담, 뱀파이어, 외계인, 오컬트... 일단, 진지하고 긴 장편을 좋아하는 내 입장에서는 일단은 고개를 돌릴만한 구성이다. 

 하지만 펄프픽션이라니. B급 감성. 한 때, B급 감성의 바람을 타고 세계로 뻗어나가 한류의 새 역사를 쓴 싸이를 기억하나. 신기해하면서 질리도록 들었던 그 강남스타일을. 군대에서 휴가 나갈 때만 착용했던 새 군복과 새 전투화를 A급, 평소 훈련이나 작업에 착용하는 것을 B급이라고 했었는데, 이것이 그 A, B급을 나누는 어원인지는 모르겠으나 자꾸 생각나는 것은 군필자의 서글픈 운명이려나. 

 하지만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굳이 아내에게 미루지 않고 읽은 것은 일차적으로는 나 역시 단편에 도전해보고 싶은(그것도 장르소설로, 심지어 소재도 몇 개 구상해둔 바에야) 욕심이기도 했지만, 왠지 이런 통속 단편 소설이 요즘 같은 시대에 소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있었다. 

 점점 짧아지는 콘텐츠 소모 속도와 고도 영상화에 따른 활자 집중력의 저하, 소설보다 자극적인 사회이슈들 속에서 되려 간략한 허무맹랑함이 독자에게 강렬하게 다가설지도 모르니까.



햄버거와 떡볶이를 뱀파이어와 외계인은 먹지만 

로봇은 먹을 수 없지


 물론, 다섯 편의 단편은 상호 간에 연관성이 전혀 없다. 어떤 주제적 공통점이 있다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굳이 뭉뚱거려 이야기하자면 결국은 사회 비판인데... 사회를 비판하지 않았던 소설이 있었는가. 말하자면, 나는 굳이 다섯 가지의 소재를 모아서 한 문장으로 만들어 놓기는 했지만, 별 의미 없다는 것.

 햄버거를 먹지 마세요 : 재수생 연인이 기숙학원에 들어가면서 생기는 일이다. 호러에 가깝다고 봐야겠다. '괴담'의 주인공은 햄버거. 재수학원에 들어가자 기숙학원에서만 판매하는 햄버거가 있고, 그 햄버거를 먹은 학생들은 몽롱한 상태에서 기계적으로 공부를 하는데, 성적이 말도 안 되게 쑥쑥 오른다. 어느 날 햄버거를 먹다가 이물질을 씹은 여주인공은 햄버거를 거부하고, 남주인공은 근로장학생이 되기 위해 햄버거 공장에서 일을 하다 비밀을 알게 된다. 

 떡볶이 세계화 본부 : 영국에서 떡볶이로 위장, 피를 공급받는 뱀파이어들을 색출해내기 위해 우리나라의 협조를 요청한다. 우연히 한국에 방문했던 영국 뱀파이어가 그 떡볶이를 먹고는 실제 죽었기 때문. 하지만 언제나 과유불급이라, 한국에서 5명 분의 재료만 준비해 간 주인공은 뱀파이어가 50명이 넘자 '한 놈만 팬다'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한 명에게 5인분의 소스를 '몰빵'하게 되고, 죽으리라 여겼던 뱀파이어는 불을 내뿜고 힘도 더 강력한 '뱀fire'로 진화하게 되고, 한국과 영국 정세는 혼란에 빠지며 외교적 문제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정직한 살인자 : 금도끼 은도끼의 현대화. 산신령 대신 외계인이 나오고, 나무꾼 대신 조폭에게 팔려와 보험금을 위해 위장 결혼 당하고 죽을 날만 기다렸던 조선족이 나오는 점이 다르다. 단순히 정직한 것이 작용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작가의 말을 보아하니 대칭되는 구조로 집필하였다고 하였는데, 난 잘 느끼지 못했다. 내가 둔한 것인지는 다른 독자분들이 판단해 보시길.

 서울 도시철도의 수호자들 : 작가는 '노병들'이라는 소설을 '동경'하고 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실제 작가의 말에선 추천하는 수준이라도 만족할 것처럼 이야기했다. 반면, 내가 느낀 것은 초기 퇴마록과 비슷한 색체였다. 한국적 주술이 도시에 숨어들어 있다는 설정과 우리 주변에 흔하게 보는 사람들과 독특해서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우리의 현실을 지탱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 풍수지리적 관점에서 지신밟기와 지하철 노선이 봉인의 역할을 하고 있고 '악'의 세력이 그 봉인을 풀어 세상에 종말을 가져오려 하는데.

 시민 R : AI에 대한 '인격' 문제는 정말 머지않아 벌어질 듯하다. 이렇게 수많은 소설과 영화에서 구구절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게, 마이너?


 일단, 전체적으로 꽤나 생경하고 색다른 경험이었다. 내가 원래 단편을 많이 읽어보질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으나, 길이의 문제를 차치하고 기발한 상상력을 유쾌하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정말 제목과 같게 '펄프픽션'의 궤를 잘 따른 것이 아닌가 싶긴 하다. 

 반면 펄프픽션치고는 조금 장르적 요소가 강한데, 이 부분은 독자마다 다르긴 하겠다. 애초에 펄프픽션이라면 싸구려 통속 소설을 지칭하는 바이고, 통속소설이라 하면 문학적 가치는 일단 저 역사의 뒤안으로 밀어 두고 그저 재미있어야 한다. 오로지 오락용의 목적으로 지어진 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그런 통속소설이라 하면 애초에 웹소설에 넘쳐난다. 되려 이 책에 적힌 소설들은 전혀 가볍게만 볼 내용들은 아니다. 

 햄버거에서는 입시 위주의 교육과 목적을 위해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들에 대해, 떡볶이는 모르겠다. 포기. 정직한 살인자는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벌어지고 마는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도시철도에서는 우리가 겉만 보고 판단한 것들의 이면에 대해 들여다볼 것을, 시민 R은 인공지능과 인공지능보다 못한 인간 사이에서 누구를 인간으로 볼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뭐, 솔직히 이런 엄청나게 독특한 주제를 가지고 거의 '뿅!' 수준의 내용 전개만 갖고 통속소설이라고 하는 것은 약간 무리가 아닐까 싶다는 것.

 게다 뒷면에는 키치와 마이너라고 적혀있는데, '키치'야, 뭐, 원래 장르소설이라는 것은 다른 것보다 재미를 위주로 하는 것이고 대중성이 그 목표이므로 그렇다 치더라도 '마이너'라니? 장르소설이 마이너이던 시절은 언제인지 기억도 희미할 정도다. 되려 요즘 마이너는 순수문학이지 않나. 그나마 도서 시장을 이끄는 것은(당연히 에세이다. 계발서와, 투자서다. 그 책들을 나는 읽지 않기에 제외하면,) 장르소설이다. 

 자기 비하는 대외적으로 하지 않을 때에만 겸손이 된다. 대대적으로 자기 비하를 시작하면 주변 사람들은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장르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역시 그렇지 않을까. 스스로 B급이라며 즐길 줄 아는 것이 참 멋있을수도 있겠지만, 시작부터 B급이라고 선 긋고 시작하는 것은 상당히 보기 좋지는 않다. 게다가 B급 문화는 이미 한물 가지 않았나? 그냥 제목이나 홍보문구, 둘 중 하나만 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아, 애초에 제목이 펄프픽션인데, 너무 진지해졌나 보다. 역시,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본 서평은 서평단 참여로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증정받아 작성하였으며,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로 적었음을 밝힙니다.



개인 블로그 : https://blog.naver.com/uyuni-sol

※ 블로그 셋방살이 중입니다. '작가의 서재' 방만 제 관할입니다. ㅠㅅ ㅠ


개인 인스타 : https://instagram.com/jeakwang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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