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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르군 Feb 20. 2022

집사의서평 #30 엄마의 엄마

봄기운이 도는 성장소설



들어가는 말


 일본의 천재 작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 이 소설이 바로 그 천재 작가의 세 번째 작품. 늘 신예작가, 게다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작가에 대한 평론의 찬사는 조금 과장이 덧대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특히나 문학 부분에서 찬사는 그 바탕이 문예이기 때문인지, 과도한 미사여구와 수식이 붙는다. 약간 거부감이 들 정도로.

 그런데 이 소설을 읽고 나서는 조금 생각이 바뀌었는데, 정말 충분한 미사여구와 수식이 붙은 소개인 것 같다. 다른 그 무엇보다 그의 나이가 이제 15살이라는 점이 그러한데, 웬만한 성인 작가가 이런 소설을 썼다면 꽤나 잘 쓴 소설이라고 평했을 것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해도 삶에서 오는 깨달음과 성찰의 느낌은 다르다. 물리적 시간에서 오는 경험과 반복된 작문의 능력은 다르다. 그 어린 나이에 이토록 좋은 소설을 써낸다는 것. 천재라는 말 외에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해의 하나미


 하나미는 모녀가정에서 평범한 서민 가정보다는 조금 더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산다. 막노동을 하는 엄마 밑에서 자라지만, 늘 가난을 이야기하는 것 치고는 상당히 유쾌한 엄마. 함께 어울려주는 집주인 아주머니와 한 때 수재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현직 백수인 겐토와의 생활은 상당히 따뜻하다. 

 어느 날 겐토를 찾아온 학창 시절 동기에게 흰 장미 두 송이의 이야기를 듣고, 인간의 사랑에 대해 고민한다. 중학교에 진급해 만난 친구 사치코의 사연에서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머물 곳이 있음에 감사한다. 

 그렇게 나름 평안하달 시간 속에 갑자기 죽었다고 들었던 할머니가 등장하게 된다. 엄마와 사이가 극도로 틀어진 할머니. 하나미는 그런 할머니가 밉지만, 자신과 엄마의 사이를 생각하며 조금은 그들의 갈등과 미움이 해소되기를 바란다. 엄마는 나름대로 '그 갈등'을 갈등하지만 결국 하나미는 마음을 열었고, 이미 사라져 버린 엄마의 엄마, '할머니'를 외친다. 

 하나미의 친구 신야는 가족의 강압에 못 이겨 미션스쿨에 진학하지만, 그곳에서 신이 진실을 깨닫고 신부가 되기로 결심한다. 잠시 집에 들렀다가 하나미를 만나고는 자신의 내면과 조우하지만, 다시 굳은 결심을 한다.

 하나미의 초등학교 선생이었던 기도 선생님은 어느 날 사라져 버린 형을 생각하며 오컬트 문화에 점점 빠져든다. 그런 고민이 삶을 잠식하려 하는 때에 거짓말처럼 '평행우주'속의 형을 만나게 되고, 안심하고 만다. 



할머니라는 호칭


 내내 잔잔하다. 모녀가정에서 경제적으로 쉽지 않게 살아가지만, 하나미는 엄마의 성격 탓인지 그늘이 없다. 당차다. 그런 하나미의 모습이 소설 전반에 걸쳐 따뜻함을 준다. 

 우리가 성장소설에서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어린 주인공이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며 성공해내는 스토리는 불편하다. 그 어린것에게마저 이 더럽고 추악한 세상의 어두운 면이 드리워지는 것에 대한 슬픔은, 주인공이 종국에 가서 그 고난을 이겨낸다는 희열을 넘어서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그런 고난은 없다. 역경도 없다. 물론, 엄마와 할머니 간의 거의 평생에 가까운 버림과 버려짐의 고통이, 상처가, 응어리가 넘어서기 힘들 정도로 높은 벽을 치고 있지만, 하나미는 그 벽을 조금씩 조금씩 무너뜨린다. 그것은 어린 소녀이기에 가질 수 있는, 그리고 엄마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기에 시도할 수 있는 용서와 화해의 제스처다. 

 그런 상징적인 모습이 소설을 읽는 동안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처음에는 불이 붙은 채 던져진 담배꽁초를 밟아 끄며 흉을 보던 하나미가 할머니의 머물 곳을 걱정한다. 어서 나가기만을 바라며 돈을 벌겠다고 공원에 나섰다가 범죄에 연루되는 사건까지 겪었지만, 막상 떠나는 할머니를 붙잡으려 한다. 사진을 달라는 할머니를 기다리라며 신신당부하고는 사진을 찾아 내달린다. 그런 순수한 마음이 이 소설 표지의 화창날 날씨 같다. 

 하나미가 겪는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 하나미가 파문을 던진 종교적 신념. 하나미가 들어주고 공감해주므로 인해 희망을 놓지 않게 되는 그리움. 마치 하나미가 온 우주의 주관자로서, 소설의 주인공으로서, 혹은 본인이 성장하는 배경에 자신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인물들을 아우르며 쓰다듬는 듯한 느낌이 너무나 좋았다. 

 어찌 보면, '할머니!'라고 외치는 모습에서 살짝은 구시대적 갈등 해소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기는 했지만, 아무리 구시대적인 것이라도 겨우 15세 소녀의 글에서 표현되니 어찌나 절절하면서도 따뜻하게 순수하던지. 진심으로 이 작가의 다른 소설이 궁금해졌다.




개인 블로그 : https://blog.naver.com/uyuni-sol

※ 블로그 셋방살이 중입니다. '작가의 서재' 방만 제 관할입니다. ㅠㅅ ㅠ


개인 인스타 : https://instagram.com/jeakwang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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