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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르군 Feb 26. 2022

집사의서평 #31 밤의 얼굴들

기억이란 온전히 개인의 것인가



들어가는 말


 약간 기이했다. 황모과라는 작가의 이름이 일단 어딘가 낯익었다. 내가 가진 느낌은 서정적인 현대문학의 것이었는데, 막상 펼쳐보니 SF라니. 그렇지 않아도 SF라면 서리가 붙을 듯 차가운 금속성의 기이함이 소름 돋는데, 거기에 인간 개인의 기억이라는 부분을 이어 붙여놓으니 불편함이 더 기승을 부린다.

 하지만 최근 읽었던 단편과는 다르게 여섯 개의 이야기의 내용이 일관성이 있어서 좋았다. 작가의 말에 미발표작까지 꼼꼼하게 검토해준 출판사에 감사하는 내용이 있는 것을 보니, 분명 단편 중 그 주제가 비슷한 것들을 추려서 출간한 것이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는 단편집이라도 큰 주제를 통일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일단, 단편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차치하고.) 하지만 막상 이렇게 큰 틀이 잡힌 듯한 단편집을 보고 나니, 작가가 지닌 여러 사고의 방향을 볼 수 없다는 점과 매 단편이 약간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단점이 보인다. 인간의 욕심이란. 



기억이란 온전히 개인의 것인가


 SF의 여러 단골 소재가 가상세계와 기억의 구현 및 조작이다. 여섯 개의 단편 모두 비슷한 기술을 그 바탕으로 한다. 얼핏 작가가 혹시 이런 기술 관련주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 (농담)

 하지만 단골 소재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인간들에게 미지의 세계이거나 꼭 갖고 싶은 기술인 경우가 많다. 고로, 가상세계와 기억의 구축이라는 기술을 우리 인간은 원하고 있다.

 가상세계를 원하는 인간의 욕구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결국은 현실의 도피 혹은 불가능의 시도 아니겠는가. 참혹하고 불행한 현실을 피해 꿈에서나 그리던 이상적인 삶을 사는 것. 혹은 천 길 낭떠러지에서 맨 몸으로 뛰어내려 보거나 블랙홀에 줄을 던져 줄다리기를 하는 놀이. 결국 이런 행위는 현실에 대한 불만이다. 그리고 불만에 대한 대응체계는 만족할 때까지 제공하거나 욕구를 삭제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욕구를 제거하는 방법은 죽는 것 밖에는 없으니, 결국 제공할 수밖에.

 소설 속에서는 그렇게 인간에게 제공된 기술들이 인간에게 어떠한 작용을 하는지, 그리고 기술을 받아들이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려내면서 우리의 내면과 기억, 그것이 온전히 개인만의 것은 아님을 이야기한다.

 특히, '연고, 늦게라도 만납시다'에서는 실제 역사적 사실인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을, '니시와세다 역 B층'은 일제강점기 전시 의학 범죄 문제를, '탱크맨'에서는 5.18 민주화 항쟁을 그 주제로 삼고 있는데, 개개인의 기억을 단순히 죽음으로 소멸되지 않고 죽어서까지 과학 기술로 전승되고 진실을 밝히는 매개로 작용하는 모습을 서술하면서, 기억과 기술의 만남을 통해 진실과 정의의 실현이 이뤄지는 이상을 표현해냈다. 

 또, '당신의 기억은 유령'에서는 기억의 데이터화와 공감각 구현화를 통해 조부에게 전해진 이주자 가정폭력 피해자의 실상을 그대로 체험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단순히 타인의 삶을 '아는' 것이 아니라 '느낌'으로써 조금 더 인간다워지기를, '모멘텀 아케이드'에서는 개인의 기억이라는 굴레에서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상처를 주는 슬픈 사람들에게 타인과의 감정교류를 통해 굴레를 벗어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투명 러너'에서는 기술의 이야기는 배제하되, 인간의 사고와 기억이 얽히고설켜 만들어진 '2번 주자'의 존재를 통해 사람 간의 유대의 힘을 이야기한다. 

 애초에 불가능이라 여겼던 일들이 어느새 현실이 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바다 깊은 곳을 탐사하고, 하늘을 날며, 달에 깃발을 꽂는다. 물리적으로,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긴 것들이 당연한 현실이 된 지금, 오로지 개인이 완전한 개방의 마음만 먹는다면 가능한 것. 즉, 온전히 개인의 것인 기억과 타인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개인의 마음을 순수하게 열고 타인에게 다가서 결합하는 것 역시 언젠가 가능해지기를 바라본다. 뭐, 당장이라도 가능할 수도 있지만.




개인 블로그 : https://blog.naver.com/uyuni-sol

※ 블로그 셋방살이 중입니다. '작가의 서재' 방만 제 관할입니다. ㅠㅅ ㅠ


개인 인스타 : https://instagram.com/jeakwang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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