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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르군 Apr 11. 2022

집사의서평 #45 83년째 농담 중인 고가티 할머니

제목을 왜...



들어가는 말


 보통 이런 류의 소설에서 노인들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과는 늘 다르게 움직이게 마련이다. 작가가 요양원에서 일하며 관찰했던 노인들의 특징을 바탕으로 소설을 구상했다고 하는데, 보통 이런 소설의 주인공인 노인은 실존인물의 믹스인 경우가 흔하긴 하다. 

 아마 이 책을 선택한 절반 이상의 독자는 분명,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기대했지 않을까. 물론 나 혼자만의 기대일 수도 있겠지만, 일단 이런 자극적인 제목을 전면에 내세웠다면 꽤나 유쾌한 이야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조금 비약하자면 책을 펼치는 순간 웃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는 홍보문구가 가장 웃겼다. 

 혹은, '내 친구들은 왜 산으로 갔을까'처럼, 아무래도 한국 정서에 아일랜드의 유머 코드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지도 모르겠다. 개인적 의견으로, 유쾌한 코믹류의 소설이라고는 말할 수 없겠다. 

 하지만, 되려 드라마적인 요소가 더 책을 읽을 수 있게 만든다. 노인의 삶, 노인이 왜 그렇게 변해가는지, 노인이 왜 취약한지, 10대 소녀의 방황과 전업주부인 남편의 자괴감과 함께 20년 된 부부의 권태까지. 

 


총체적 난국


 밀리 고가티는 83세의 노인으로, 자식과 따로 산다. 경증의 도벽과 여기저기 참견하며 아직 스스로 노인임을 인정하지 않지만, 자꾸 사고를 일으키며 아들 케빈이 수시로 자신을 요양원에 처박을 궁리만 한다고 의심한다. 그러던 중 슈퍼에서 슬쩍하다가 경찰에 연행되고, 케빈의 술수로 실비아라는 도우미를 집에 들이게 된다. 처음에는 척을 뒀지만 어느새 마음을 열게 되지만, 집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요양원에 끌려가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요양원에서 탈주하지만, 결국 실비아가 사기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미국으로 추적을 시작한다. 

 에이딘은 쌍둥이 언니 누알라와 외모를 비교하며 격동의 사춘기를 보내다가 사고를 치곤 기숙학교에 강제로 전학가게 된다. 그러던 중 할머니의 도우미인 실비아의 조카 션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동시에 불량한 룸메이트 브리짓을 만나 큰 사고를 치고 사라지기로 결심한다. 그런 와중에 할머니의 추격전에 참여하게 되어 갑자기 미국으로 떠난다. 

 케빈은 편집자로 일을 하다 경기불황으로 실직을 하게 되고, 의도치 않게 전업주부로 전향한다. 종종 구직활동을 하지만 취업은 영영 멀어 보이고, 일단 편집자 일을 하고 싶은지 확신도 없다. 그러던 중 에이딘의 학교 직원에게 흑심을 품고 바람을 시도하지만, 마지막 순간 네 명의 아이들을 생각하며 정신을 차린다. 하지만 결국 아내 그레이스에게 적발되고, 가족에게서 떨어지는 벌을 받는다. 그리고, 그 벌을 받는 동안 할머니와 에이딘에게 사건이 발생하고, 총체적 난국 속에서 아내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화해한다. 



웃픈 이야기


 작가가 요양원에서 근무한 경험이 잘 반영된 것 같다. 노인의 사고방식이 잘 드러나 있다. 상식선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고집들. 십 대의 원인모를 방황도 반항 역시도 꽤 잘 표현된 듯하다. 게다가 실비아에게 홀딱 넘어가는 밀리의 모습은, 현실에서 흔히 벌어지는 노인 대상 사기와 그 모양이 흡사했다. 독거노인의 외로움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발로한 고집이 결국은 관심과 애정으로 사라진다는 것을, 실비아의 사기를 통해서 잘 표현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너무 쉽게 마음을 여는 장면들은 조금 개연성이 떨어졌다. 그렇게 꼬장꼬장한 밀리가 금융업무 등에 대해 쉽게 넘겼다는 것도, 에이딘이 션과 사랑에 빠지는 부분, 케빈과 로즈의 불륜 등은 거의 운명인 듯이 큰 상황설명 없이 흘러가 버렸다. 특히 미국까지 넘어가서 만난 거스와의 모습은, 그저 마무리를 위해서 등장한 억지 캐릭터의 느낌이 너무 강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실망한 것은 책 제목. 83년째 농담 중이라고 하기에는 밀리의 말들은 그다지 재미있진 않다. 매 상황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삶에 대한 위트나 해석이 담겨있는 것도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이것이 아일랜드식 유머라면 번역서를 선택한 독자가 잘못한 것일까. 아니면 애초에 원작 제목인 'Good Egg'를 굳이, '83년째 농담 중인 고가티 할머니'로 편집한 출판사의 잘못일까. 




본 서평은 서평단 참여로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증정받아 작성하였으며,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로 적었음을 밝힙니다.



개인 블로그 : https://blog.naver.com/uyuni-sol

※ 블로그 셋방살이 중입니다. '작가의 서재' 방만 제 관할입니다. ㅠㅅ ㅠ


개인 인스타 : https://instagram.com/jeakwang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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