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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르군 Apr 18. 2022

집사의서평 #46 이기적인 기억

망각이라는 선물

들어가는 말


 내 기억이 맞다면, 이영도 작가의 작품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망각이란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다.' 그렇다. 인간이 사는 동안의 모든 기억을 단 하나도 잊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기억이란 단순히 어떤 사건에 대한 기록이 아니다. 기억의 주체는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수학 문제를 풀었던 기억을 봐도, 오랫동안 못 풀던 문제를 풀어내고 정답을 찾아냈을 때의 기쁨이라는 감정이 함께 존재한다. 우리의 기억이 단순히 기록이 아닌 이유다.

 그런 고로 그런 기억들을 단 하나도 잊지 못하고 산다면, 우리는 그 엄청난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다.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라면 조금 그 시기가 늦어질지도 모르겠으나, 그건 단지 시기의 문제일 뿐 결국에는 모두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억이란 이기적인 게 맞을 것이다. 소설 중에 나왔던 대사처럼, 인간의 이기심이란 생존을 위한 본능이며, 그런 본능은 스스로를 지키려는 무의식이 합쳐지면서 기억을 선택적으로 조작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기심이란 인간의 생존에 도움을 줄지는 모르지만 결국 삶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이기심이 아닌 이타심일 것이다. 단순히 생명체로써 존속하기 위해 우리가 사는 것은 아니니까. 우리는 사회라는 공동체 속에서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길 원하니까.

 그런 면에서, 굳이 스스로 감춰둔 기억을 억지로라도 찾아내는 주인공은 생존을 포기한 것일까. 아니면 진정한 삶을 살기 위해서 기억에 맞서기로 한 것일까.



잊어버린 기억을 되찾는 사람


 주인공 진우는 계속된 악몽과 개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 정신과 진료를 받던 도중 오히려 증상이 악화되고, 약혼자의 아버지인 원장이 제시한 1년이라는 시험기간이 임박하자 압박감을 느낀다. 그러던 중 기억 교정이라는 기묘한 치료법을 알게 되고, 최면요법을 통해 자신이 '잊어버린' 기억을 다시 만난다.

 그 기억에 얽히고설킨 형과 엄마, 진애누나, 우태와 우태 아버지, 왕 씨 아저씨... 잊었던 기억을 되찾으면서 진우가 마주한 진실은 슬프고도 처참했다.



복잡한 관계, 부족한 개연성


 전체적으로 대화체가 많고 문장이 간결하게 되어있어 가독성이 좋다. 다 읽는데 2시간도 걸리지 않을 정도. 하지만 너무 빨리 읽어버린 탓일까. 내용이 잘 짚이지 않아 다시 돌아보는 일이 잦았다. 대화체가 주를 이루는 경우, 화자가 누구인지 독자가 알아보기 쉬워야 하는데 부차적인 장치를 쓰지 않아 읽기는 쉬운 반면 자꾸 화자를 되짚어봐야 하는 난점이 있었다.

 이건 개인적인 부분인데, 각 단락마다 부제 형식으로 곁들인 문장들도 조금 거슬렸다. 이런 문구를 쓰는 경우는 대부분 단락의 내용을 축약하여 관통하는 한 문장이 들어가는 것이 독자에게 내용에 대한 예시를 주면서 읽고 나서는 그 문장에 대해 이해하는 쾌감을 줘야 한다. 그런데 내용과 관련이 있다기보다는, 그저 단락의 제목에 대한 작가의 작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게다가 어떤 문단에서는 생략되기도 했는데, 일관성마저 없어지면서 부제의 매력이 희석되고 말았다. 딱히 부제에 집중할 의미가 없어졌달까.

 그리고 전체적으로 진우가 기억을 찾는 것에 대해 집착하는 원인이 조금 약하다. 단순히 약혼자의 아버지인 원장의 신임을 얻기 위해서라고 하기에는 학원에서 일에 집중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불편한 것도 아니다. 물론 개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겨 실신하는 장면이 나오기는 하지만, 약혼자가 개를 데려온다고 해서 기억을 찾으려는 것과 기억을 찾는다고 해서 무조건 그 트라우마가 풀릴 지에 대한 확신이 없는데도 과도하게 집착하는 경향이 짙다.

 게다가 원장은 모든 사실을 마치 아는 것처럼 진우를 몰아붙이는 데다가 왜 진우에게 그런 기회를 주는 지도 설득력이 약하다. 스포일러지만, 기억의 사고 당시 상황도 조금은 억지스러운데, 당장 아이가 개에 물려 병원에 시급하게 가야 되는 상황에서 어디 있는지도 모를 우태의 아버지에게 연락해서 오라고 했다는 점이나, 그 사고를 간단히 뺑소니로 묻어둘 수 있다는 것도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상황으로 느껴진다. (우리나라 뺑소니 검거율이 거의 100%라는데 말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아침드라마에나 등장할 사건을, 16년이 지난 시점에서 기억을 상실한 주인공의 시점에서, 다시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되짚어 풀어낸 점이나, 꽤나 많은 등장인물 간의 관계를 빠짐없이 이어나간 인물 간 관계 등은 탁월한 것 같았다.

 책 표지에서 언급한 것처럼, 기억 교정이라는 소재가 생각보다 그리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었다는 점은 실망이 컸지만.





본 서평은 서평단 참여로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증정받아 작성하였으며,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로 적었음을 밝힙니다.



개인 블로그 : https://blog.naver.com/uyuni-sol

※ 블로그 셋방살이 중입니다. '작가의 서재' 방만 제 관할입니다. ㅠㅅ ㅠ


개인 인스타 : https://instagram.com/jeakwang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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