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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르군 Jun 24. 2022

집사의서평 #55 가장 질긴 족쇄,지긋지긋한 족속,가족

멍에를 이고 가는 것은 부모뿐일까


들어가는 말


 한때 가장 좋아했던 이승환의 노래 중 가족이라는 노래가 있다. 밤늦은 길을 걸어서 지친 하루를 되돌아오면, 언제나 나를 맞는 깊은 어둠과 조용히 잠든 가족들. 가족이라는 멍에는 누가 져야 하는 것인가. 가계를 책임지는 가장의 몫인가. 가정을 돌보는 아내의 몫인가. 가정을 존속시키는, 혹은 확대시킬 자녀의 몫인가.

 그런 고민은 의미가 없다. 결국 지친 하루를 되돌아 가족에게 돌아와도 나를 먼저 맞이하는 것은 깊은 어둠이니까. 물론 노래 가사의 종결은 다르지만. 소설의 제목에서 이미 그런 어감을 짙게 느껴지지 않는가? 나와 가장 질기게 이어진 벗을 수도 없는 족쇄. 평생을 나와 함께 그 족쇄에 채워진 채, 홑몸으로도 지칠 만큼 힘겨운 세상을 걸어가야 하는 지긋지긋한 족속들. 

 가족의 가장 큰 문제는 다름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가 멍에를 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 자녀들이 아이인 시절, 자신의 의지로 어디론가 향해갈 생각보다는 그저 듬직한 부모의 등짝만 보고 따라서 걸을 때야 멍에에 걸리는 힘이 한 방향이므로 수월하다. 하지만 결국 자녀가 성인이 되고 자신의 길을 걸어 나가려 하면 서로 얽히고설킨 멍에가 방해가 되기 마련이다. 



재건을 위해 파괴되어야 하는


 영춘 씨와 정숙 씨는 자수성가했다. 슬하에 넷이나 되는 자녀를 두었다. 부유하지 못한 생활을 자식에게 물려줄 수 없어 부지런히 자식농사에 매진했다. 다들 대학까지 공부를 시키고 맏딸은 교사, 장남은 의사가 되어 동네에 자랑이었다. 그러나 잘된 농사에 병해 하나 없을까. 정 많고 활달했던 셋째 은희는 남편과 이혼해 생계가 마뜩잖고 막내 현기는 착하기만 하지 매번 공무원 시험에 낙방하며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아직 부모가 부모로의 힘이 있을 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부모로서의 권위와 힘을 갖춘 때에는. 하지만 정숙 씨가 갑자기 뇌출혈이 오면서 자리에 눕게 되고, 영춘 씨 역시도 정년퇴직 후 정숙 씨의 병치레를 하는 동안 많이 늙어버리고 만다. 

 부모가 늙어버리는 만큼, 자식은 커버리고 만다. 

 이제 더 이상 자식은 부모의 그늘에서 쉬려고 하지 않고, 부모가 모든 가지를 접고 땅에 누워 쉬기를 바란다. 하지만 나무가 바닥에 눕는 것은, 죽었을 때뿐이다. 

 영춘과 정숙은 더욱 늙어감으로 점점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어, 자신들이 늙었으며 약해져 이제는 자식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한다. 결국 그런 이율배반적 행위는 오로지 고성과 욕설, 상처를 주는 것들로 채워진다.

 자식들 역시 그들이 늙어가고 약해짐을 강제로 인정하게 됨으로써 오는 슬픔을 직접적으로 언급할 수 없다. 게다가 그 슬픔에서 오는 죄책감은 더욱더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다. 그래서 자식들은 단절을 선택한다. 

 자식들 모두, 그리고 부모 역시 각자의 속내와 사정으로 갈등과 단절을 교묘하게 왕래하던 중에 영춘 씨의 생일날이 되었다. 하지만 가족 모두가 모일 거란 영춘 씨의 바람과 달리, 자식들은 띄엄띄엄 각자 찾아오고, 그날 밤 정숙 씨와 영춘 씨는 살해당하고 만다. 범인에 대한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고, 범인이 누구인지 쉽사리 밝혀지지 않는 것보다 그들의 심정에 더욱 답답해진다.



 불편한 이야기


 작가의 소설을 처음 접한 건 작년쯤이었나 싶다. 네 번째 밤이었던가. 그때도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도 뭔가 기대 이상이었다. 개인적으로 약간 일정 분량 이상의 글이어야 호평이 나오는 편인데, 이 정도 분량으로도 충분히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작가의 능력이 너무 부럽다. 

 특히 다른 것보다 지구력이 약한 내 입장에서, 이 얇은 책을 쓰고 출판하기까지 3년이란 시간이 걸렸다는 작가의 말에서 조금은 시기를 느꼈다. 우선은, 적어도 3년은 써야 이런 글이 나오는 건가라는 한탄. 그리고 나도 본업이 작가라면 3년 간 한 작품에 매진할 수 있을 텐데라는 시기. 거기에 그렇더라도 난 절대 한 작품을 3년간 붙잡고 쓰진 못할 거야라는 포기. 

 그만큼 이 소설의 완성도가 높았다고 생각한다. 사건 발생에 각각 유기적으로 묶여 움직이는 등장인물들과 그렇게 움직일 수밖에 없는 각자의 이유들, 내면의 표현도 좋았다. 특히나 살인사건이라는 소재를 집어넣어 단순히 휴머니즘이나 현대소설의 느낌을 벗어나 자칫 지루하거나 식상할 수 있는 내용을 환기시키면서 재미까지 선사했다. 

 다만, 개인적으로 추측 건데, 범인은 해피엔딩을 위해 조금 작위적으로 선정한 것이 아닌가 싶다. 아내가 먼저 읽고 나서 '범인이 누굴 거 같아?'라며 물었을 때, '당연히 XX가 XX 한 거 아냐? 그래야 소설이 말이 되지.'라고 했었는데 결국 반만 맞힌 것이 되었다. (반만 맞혀서 억지 쓰고 싶은 걸까.)

  하지만, 내가 작가였다면 분명 그런 종결을 맺었을 것이다. 비록 비극이더라도. 제목에 걸맞은 종말은 그런 것일 테니까. ('반만' 맞혔다는 사실에서 책을 읽으신 분이라면 내가 생각하는 종결을 눈치채실 거라 믿는다.)




본 서평은 서평단 참여로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증정받아 작성하였으며,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로 적었음을 밝힙니다.



개인 블로그 : https://blog.naver.com/uyuni-sol

※ 블로그 셋방살이 중입니다. '작가의 서재' 방만 제 관할입니다. ㅠㅅ ㅠ


개인 인스타 : https://instagram.com/jeakwang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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