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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르군 Jun 23. 2022

집사의서평 #56 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끝까지 시리다


들어가는 말


 인간이란 그렇게도 미완의 존재다. 완벽하지 않기에, 외부의 자극에 가끔은 너무 쉽사리 흠집이 나고, 깨어져버린다. 또한 그렇기에 부족함을 채우려 늘 노력한다. 하지만 그런 노력들이 항상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작용하지는 않는다.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그렇게 약한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 한 때는 어린 아이였고, 그 시절 우리는 무참히도 깨어졌다. 하지만 어떻게든 깨어진 부분을 메우고 땜질하며 삶을 이어왔고, 세월의 힘이란 결국 그런 흠집과 자국들을 녹이고 녹여 채워넣었다. 그렇게 여기저기 생체기가 났을지언정 단단한 사람이 되었을 뿐.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은 언제인가. 역설하자면, 결국, 깨어지고 부수어진 후 아니겠는가.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끝까지 시리다


 유리는 지속적인 괴롭힘 끝에 가출을 결심하지만, 탈출을 코 앞에 둔 체 다시 악마들과 맞딱드리고 만다. 다른 의미에서의 탈출. 그렇게 사건은 묻힐 뻔 했다. 

 선경은 연쇄살인범의 심리상담을 주도하던 중 일련의 사건이 벌어지고, 그 때부터 재혼한 남편이 데려온 딸 하영이 두렵다. 친구이자 상담가인 희주에게 둘 모두의 심리상담을 부탁하지만, 결국 완전한 비밀을 털어놓지 못한 체 남편의 강행에 휩쓸려 강릉으로 이사를 오게 된다. 

 한 때 남편의 전처이자 하영의 엄마가 함께 지냈던 집으로 이사를 오고, 뱃 속의 아이가 점점 자라면서 어느정도 안정을 찾는다. 그런 와중에 하영에 대한 두려움도 잦아들게 된다.

 하영은 의식적으로 지워버린 유년의 기억이 괴롭지만, 그마저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저 사춘기라고 치부할 문제는 아니지만, 본인마저도 알 수 없는 문제의 근원때문에 선경을 배격한다. 그러던 중 산에서 발견한 배낭에서 유리의 흔적을 발견하고, 이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자신이 의식적으로 지워버렸던 기억을 되찾는다. 

 유리의 문제를 그 동안 해온 방식과 다르게 해결하고, 자신이 지웠던 기억을 되찾으면서 현실과 마주한 하영은, 지독했던 트라우마와 대적하면서 결국 어른이 된다.



소용돌이 같은 소설


 처음에는 꽤나 헐렁하다. 유리의 이야기는 기시감 있는 왕따에 대한 이야기였고, 그마저 싱겁게 마무리된다. 전후 사정에 대한 서술이 없어 붕 뜬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거기에 희주의 등장은 단순히 시점 변환이라고 하기에는 어지러울 정도로 급작스럽다.

 그리고 이어지는 선경의 이야기 초반에는 잔뜩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때까지 '혹시 단편집인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어떤 고리도, 복선도 보이질 않았다. 

 하지만 초반의 이야기가 지나고, 선경이 이사를 하게되는 이야기부터 소설은 급물살을 탄다. 마치 초반에는 강 하류 삼각지처럼 여기 저기 물길이 가느다란 바람에도 휘날리는 것같던 이야기가, 강릉이라는 지역이 등장하자마자 서로 얽히면서 갑자기 장맛비를 맞이한 계곡처럼 한 점을 향한 급류로 변한다. 

 심리상담이라는 부분이 겪어보지도 못했거니와, 개인적으로 부정적인 방면인지라 조금 생소한데다 부자연스럽게 느껴졌고, 모든 사건의 원흉의 움직임이라든지, 하영의 묘사가 초반에는 과도하게 몰아가는 분위기는 있었지만,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없게 불어난 계곡물을 막을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아마 이전 작품인 '잘자요 엄마'에서 이어진 이야기처럼 보이는데, 과연 역순으로 읽어도 괜찮을지는 의뭉스럽다. 개인적으로 애초에 시리즈물로 제작할 요량이었다면 두 소설 간에 드러나는 순서를 부여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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