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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민 May 11. 2022

주체적으로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부러움

[ 01. 요즘 것들의 사생활 먹고사니즘 : ep.06/책 ]


900KM의 <요즘 것들의 사생활 : 먹고사니즘>에서는 다양한 인터뷰이가 나온다. 총 10명의 인터뷰이 그리고 1팀의 단체가 나오는데 그들의 이야기는 나에게 부러움을 사도 마땅한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각기 다른 이야기가 있지만 그것을 관통하는 주제는 ‘주체적으로 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을 때 내가 가장 결핍되어 있던 게 바로 이 부분이 아니었을까? 나는 하지 못한, 보통의 사회에서 원하는 선택이 아닌 자신이 선택한 유일한 삶을 사는 모습은 내가 이 책에 매료되고 영향을 받을 만한 충분한 가치였다.


<요즘 것들의 사생활 : 먹고사니즘>은 많은 영향을 주었다.


나는 ‘주체적으로 살지 못함’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다. 태국과 영국 문화권에서 생활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군대의 탓인지 한국을 너무 좋아한 내 탓인지, 타인과 단체에 맞춰진 생각을 많이 하고 살았다. 그것이 더 좋을 때도 있었고 우월하다고 느낄 때도 있었다. 그래서 너무 당연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다 같이 밥을 먹고 다 같이 일하고 다 같이 집에 가는 것. 사실 이러한 몇몇 부분에서 짜릿함을 느끼지 않았다면 (뭔가 팀워크가 몸소 느껴지는 체험) 거짓말일 것이다. 나도 사람을 좋아하고 같이하는 걸 즐겨하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었다. 다 같이 똑같은 걸 하면서도 나는 조금 다른, 조금은 특별하고 나만의 것을 하고 싶은 충동 같은 욕구들이 있었다. 그걸 내면에 꼭꼭 숨겨두면서 나는 타인과 단체주의적인 OO 건축의 문화에 녹아들고 있었다. 물론 그 외의 시간에는 주체적이라고 할 듯 만 듯한 삶을 살고 있었다. 나도 저녁 메뉴를 정하고, 사고 싶은 걸 고르고, 주말에 어디를 놀러 갈지를 정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회사 내에서는 철저하게 내 결정권은 무시될 때가 많았다.


<요즘 것들의 사생활 : 먹고사니즘>에서도 나오는 내용이지만 회사에서는 내가 몇 시에 출근할지, 점심은 언제 먹을지(심지어 코로나가 심할 때는 회사 마음대로 점심시간도 바꾸곤 했다), 퇴근은 몇 시에 할지, 어떤 프로젝트를 할지, 누구와 일할지, 심지어 보고서 폰트는 뭘 쓰고 사이즈는 어떻게 할지까지 모두 내가 선택하는 것들이 아니라 누군가가 말해주는 것들이었다. 그래도 회사도 타협을 본 게 출근 시간은 A, B, C타입으로 각각 8시, 9시, 10시를 선택할 수 있었고 나름 52시간을 지켜주겠다며 초과하는 시간은 보상휴가제도를 통해 휴가로 돌려받을 수 있었지만 정작 어떤 프로젝트를 할지와 누구와 일할지는 절대 내 권한이 될 수 없는 것이었다. 물론 선택권이 없다는 것은 굉장히 안전한 선택이다. 왜냐하면 누구를 탓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결정권자 말이다. 어느 순간 사원으로서 일하는 OO 건축의 나는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기면서 일하고 있었다. 그저 시키는 대로 일하고, PM이 원하는 것을 해주고, 내가 동의하지 않아도 윗사람이 맞다 하면 그저 따르기만 하면 된다. 21살에 무턱대고 들어갔던 군대가 떠오르자 내 주체성에 대해서 생각이 들었다. 21살 때도 31살 때와 같이 그런 고민을 많이 했었다. 군대에서 모든 주체적인 권한을 빼앗기고 명령에 따라야 하는 순간들, 그리고 그 순간들로 인해 가치관의 충돌이 많았지만, 차츰 익숙해져서 스스로 생각하지 않게 되는 그런 모습까지 다시 모두 떠올랐다. OO 건축에서는 나름 군대 다녀온 사람을 더 쳐주는데, 시키는 일을 잘하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필요한 인재는 위에 있는 사람이 시키는 일을 잘해줄 그런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그래서 책에 나오는 인터뷰이들이 부러워졌다.


‘주체적으로 사는 것’을 나도 가져보고 싶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주체적으로 일하는 것’이라는 표현도 나쁘지 않겠다. 내가 어떤 일을 어떻게 하는지, 하기 싫은 일도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할 수 있는 그런 주체성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했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이러한 욕구는 내 삶에 충족되어왔고 이를 마주한 첫 대학교 1학년 때가 기억이 난다. 


영국에서 프래시맨으로 대학교 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 부모님과 아주 오랫동안 멀리 떨어져 지냈다. 사실상 첫 독립에 완전한 자유였다. 학생 신분으로 누릴 수 있는 혜택들도 다양했고, 알바하면서 여행할 돈을 모으고 수업을 듣는 시간도 그리 많지 않았다. 놀기도 많이 놀았고 사람도 많이 사귀고 공부도 스스로 열심히 했다. 한식당에서 설거지 알바를 하면서 배낭여행을 갈 자금을 마련하고 계획을 짜면서 하고 싶은 것들을 이렇다 할 제재 없이 할 수 있었다. 내 인생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자 세상에 중심에 섰을 때를 말하라고 하면 알바를 한 돈으로 배낭여행으로 스위스-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을 둘러본 2주 동안의 시간이다. 아주 명확하게는 여름의 스위스를 탐험하고 즐겼을 때이다. 진짜 자동으로 콧노래가 나올 정도로 행복했다.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살과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아! 세상에 중심엔 내가 있구나! 라고 생각했던 그 순간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자유 그 자체였다. 그리고 주체적으로 내 삶을 다양한 이벤트로 채워나갔었다.


대학생이 되고 10년 뒤인 31살에 책을 읽으면서 나의 삶의 주체성을 되찾고 싶다는 고민을 하고 있을 때는 현실적인 문제도 생각해야 했다. 처음 든 생각은 ‘나도 직급이 오르면 주체적으로 프로젝트를 이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럼 우리 본부에서 처음 PM을 맡을 수 있는 직급은 과장이 되면 주체적일까? 아니면 PM이 조금 능숙해진 차장이 되면 주체적일까? 아니면 부장? 더 나아가 팀을 이끄는 팀장? 아니다. 그래도 본부장까지는 돼야 주체적으로 일할 것 같다. 막막했다. 그냥 어림잡아 적어도 15년은 버텨야 할 것 같은데……. 과연 내가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 이 회사가 아니더라도 이 일에 15년 동안 버티고 있을 수 있을까? 깊은 고민에 빠졌지만 15년을 일해보지 않고서는 답을 얻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쪽에는 이미 하나의 꿈이 슬금슬금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래도 그들이 부러워. 아마도 내가 원하는 건 주체적인 삶일 수도 있는 것 같아”


종종 내가 누군가를 부러워할 때는 그 사람이 내가 가지고 싶어 하는 걸 가져서 일 때가 있다. 결국 그건 내가 원하는 거고 내가 이루고자 하는 방향의 나침반이 되어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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