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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민 Jun 01. 2022

하얗게 불 태웠다, 회사생활의 정점.

그리고 21분의 6일 휴가. 그래도 재밌었지?

[ 04. 프리워커스: ep.18/회사]

*제 글은 첫 에피소드 부터 이어져 오는 시리즈입니다. 제 브런치로 오셔서 이전 에피소드를 이어서 읽으시기를 추천드립니다 :-)


2021년 6월 1일, ‘베트남 국제 현상’은 그렇게 불태우듯 하얗게 모든 것을 태우고 끝이 났다. 나는 기나긴 휴가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래야 탄 부분을 제거하고 온전히 살아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글로벌 설계 본부는 항상 현상 후에 휴가를 아주 조금 갔다 오는 관례가 있었지만, 기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번 현상은 매우 길었고 주말과 휴일에도 출근을 많이 했기 때문에 기대하고 있었다. 회사 시스템에는 초과 근무로 인한 보상 휴가가 5월만 21일이 쌓여있었다. 그래서 더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울리는 카톡 소리를 보니 휴가에 관한 이야기였다.


휴가는 휴일 출근한 일수만큼만 보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처음 온 감정은 화였다. 왜 내 시간을 이렇게 많이 끌어다 써 놓고 내가 갈 수 있는 휴가를 제한하는 것일까? 내가 갈 수 있는 휴가는 총 6일뿐이었다. 절대적으로 내가 한 고생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생각은 깊어졌다. 이런 주변 환경 속에서 나는 무엇을 향해 일하는 것일까? 보상이 없어도 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결국 나는 보상을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속으로는 6일보다 훨씬 긴 휴가를 떠나고 싶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받아들이는 일뿐이었다. 물론 본부장이랑도 휴가에 관련해서 2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지만,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었다. 나 외에 다른 사람들은 딱히 항의 하러 가지 않았다. 변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2개월의 고생을 6일이라는 짧은 시간으로 위로받고 다시 회사에 출근했다.


참, 그래도 재미있었다. 고생한 만큼 재미있었다. 주체적으로 일하고 좋은 사람들과 일하는 것은 OO 건축에서 드문 일일지도 모른다. 그 기회를 얻은 것으로 여기서 만족해야만 했다. 그렇게 덤덤하게 돌아온 회사에서는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휴가에서 돌아온 아침, 김 소장은 나를 자신의 자리로 불렀다. 저번처럼 안 좋은 소식을 전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오늘부터 3팀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하지 않고 2팀의 김 부장님과 함께 제천에 지어질 아파트 프로젝트를 맡게 된다고 했다. 같이 일하는 사람은 김 부장님 뿐이라고 했다. 800세대 정도 되는 아파트를 2명이 수행해야 한다고 했다. 제천 프로젝트는 현재 사업계획승인을 앞두고 있었다.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사실 3팀으로 다시 돌아가서 일할 생각을 하며 힘들어했는데 (그래서 본부장과 상담도 받았다) 오히려 내 입장에서는 더 좋은 기회로 느껴졌다. 김 부장님이라고 하면 그래도 배울 것은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 앞으로 김 부장님과 어떻게 제천 프로젝트가 진행될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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