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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민 Jun 02. 2022

다양하게 독립적으로 일하는 사람들

나의 나침반은 어디로 향할까?

[ 05. 인디팬던트 워커 ep.19/책 ]

*제 글은 첫 에피소드 부터 이어져 오는 시리즈입니다. 제 브런치로 오셔서 이전 에피소드를 이어서 읽으시기를 추천드립니다 :-)


다섯 번째 책은 <인디펜던트 워커>이다. 얇고 작은 사이즈의 들고 다니기 가벼운 하지만 내용은 무거운, 그런 책이다. 독립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내용에 끌려서 신촌에 갔을 때 바로 샀다.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회사와 회사 밖에서 독립적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독립적으로 일한다고 해서 꼭 프리랜서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개념으로 독립적으로 일하는 것을 정의한다. 자신이 프로젝트를 직접 꾸리고 사람을 모으고 주도적으로 진행한다. 타인이 아닌 자신에 의해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그 과정에 있어 다양한 질문과 그들의 생각들을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어렴풋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 자신의 기준에 멋있는 일을 해야 한다. 내 주관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는 걸 실제로 굽히지 않고 실천해 나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부러우면서 공감이 갔다.


신기하게도 이 책에는 회사에 다니는 인디펜던트 워커가 있다. 결코 회사 안과 밖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말하고 있다. 새로운 깨달음이었다. 회사 안에서도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다. 중요한 건 내가 독립적으로, 다르게 말하면 주도적으로 프로젝트를 꾸리고 이끌어 나아가는 그런 환경이 필요한 것이다. 회사가 중요한 게 아닌 이유는 꼭 개인이 회사 밖에서 혼자 일을 꾸려야 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회사들이 변하고 있다. 회사에서도 충분히 판을 깔아주는 시대가 온다는 것을 뜻했다. 거기에 협동조합 형식이나 프리 에이전트 같은 좀 더 자유로운 형식으로 일하는 회사들도 생겨나고 있으니까. 건축업계에서 흔히 말하는 팀 바이 팀처럼 회사도 회사 나름이다. 회사 바이 회사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회사 안과 밖에서 독립적으로 일하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다워 보였다. 나의 환상일 수도 있지만 나 역시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OO 건축에서는 아쉽게도 내가 프로젝트를 꾸려서 할 수 없다. 건축설계라는 필드 자체가 그렇게 하기 힘들 수도 있다. 일단 클라이언트가 있어야 하고 (아니면 내가 건축주가 되어야 한다) 클라이언트의 요구 조건에 따라서 계획을 하고 끝없이 수정한다. 그렇게 수정하면서 인허가를 통과하는 서비스도 같이해준다. 사실 디자인보다 중요한 건 건물이 지어질 수 있도록 승인받은 인허가 절차이다. 이런 틀 안에서 나는 무엇일까? 과연 쓸모 있는 사람일까? 아쉽게도 내가 하는 일을 보면 나는 조금 아쉬운 모습을 하고 있다. 내가 느끼기에 나는 일종의 도구 같은 느낌이다. 3D 모델링을 다루지 못하는 상사의 3D 모델링 프로그램이고 구현하지 못하거나 귀찮은 일을 대신 해주는 도우미이다. 컴퓨터가 우리의 일을 많이 가져갔지만, 컴퓨터를 다루는 사람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나도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비록 내 생각이 50대 상사들보다 어리고 완전치 못하더라고 나도 계획을 하고 아이디어가 있다. 그러나 많은 시간을 3D 모델링을 하고 캐드에서 선을 그리고 지우는 작업의 일을 해 왔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언제 계획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계획할 즈음에는 이게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평생의 업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때까지 내가 버틸 수 있을까?


OO 건축에서 내가 해오던 일은 결정권자의 취향과 생각에 맞춰질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드는 일이었다. 결정권자를 넘으면 또 다른 결정권자가 있고, 결국 최종 클라이언트(유저가 아니다!)의 취향을 맞추는 일이었다. 물론 일반화를 할 수는 없지만 다른 건축 회사들도 비슷한 프로세스를 겪는 듯했다. 인턴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인턴 때도 주 7일 근무를 한 달 동안 하면서 마무리한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마지막에 소장님이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들은 피드백은 건축주의 취향에 관련된 일이었다. 건축주는 건물이 벽돌로 지어지길 원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 프로젝트는 내가 인턴을 끝낸 후에 다시 수정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했다. 건축은 건축주가 하는 거지 건축가가 하는 게 아니었다. 건축가는 건축주가 원하는 공간과 형태를 구현해 주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과연 나는 건축 ‘실무’를 좋아하는가? 라는 질문을 안 할 수 없었다. 이 대대손손 이어져 오는 틀을 나는 즐길 수 있을까? 이 틀 안에서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을까? ‘실무’ 안에서 건축의 정의를 내가 받아들이고 좋아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이 일을 내가 왜 이렇게 하고 있을까? 문득 나는 건축가가 아니라 건축주가 되는 게 꿈이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물론 건축주가 되려면 건축 지식보다는 돈이 많아야 한다. 이런 빌어먹을 자본주의. 나는 이 사실을 알면서 지금껏 회피해왔다. 내가 가지고 있던 건축의 꿈이란 무엇이었을까? 정말 건축사사무소에서 10년, 20년 있으면 꿈이 이루어질 확률이 있을까? 나의 마음을 부정적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내게 스스로 던진 질문 중 하나인 ‘이 일을 내가 왜 하고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다른 고민보다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일 것이다. 결국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에 대한 고민이다. <인디펜던트 워커>에 나오는 사람들도 이런 질문을 하고 끊임없이 답을 찾으려고 한다. 결국 내 손안에 쥐어져 있는 나침반이 어디를 향하고 있냐는 질문을 나도 하고 있었다. 결국 답은 자신에게 있다는 필연적인 답을 얹을 수 있었다. 주체적으로 일하고 싶다는 꿈이, 나를 표현하고 창조하고 싶은 욕구가, 즐겁게 일하고 싶은 욕심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이전 문장에서도 드러나듯이 나는 what의 아니라 why와 how가 더 중요해졌다. 어쩌면 나는 무엇을 하는지는 덜 중요한 사람일 수 있다. 왜? 어떻게? 하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에 이유와 방식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과연 내 마음속의 나침반은 날 어디로 안내해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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