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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민 Oct 17. 2022

잊을만하면

주간 회고록 : 2022년 10월 둘째 주

월요일 최고 기온 섭씨 11.9도. 평균 섭씨 9.9도.


“뭐야. 벌써 가을이 다 끝난 건가?” 점심을 먹고 집을 나오면서 나도 모르게 화들짝 놀라 말했다. 몸동작을 할 만큼은 아니지만, 감히 육체적으로 놀란 것은 맞았다. 싸늘하게 내려앉은 공기가 피부에 닿으면서 생기는 당혹감을 나는 감추지 못했다. 아니 아직 10월인데 이렇게 추워져서야 원.


목요일에는 미용실에 갔다. 내가 매달 방문하는 장소이다. 원장님이 한 달 사이 길어진 머리를 만져주시면 저번 달 짧게 머리 깎은 날이 생각난다. 저번 달에는 반바지를 입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반’에서 ‘긴’으로 바뀐 바지와 셔츠 위에 가운을 두르고 앉아있다.


머리카락을 자르는 동안 쌀쌀해진 날씨에 대해 원장님과 스몰 토크를 나누었다. 날씨에 ‘관해 about’이 아니라 ‘대해 against’라는 이유는 아무래도 변화에 대한 거부감일지어다. 원장님의 목이 칼칼해지며 잔기침이 나오는 겨울 이야기와 나의 어릴 적 비염에서 이어져 온 겨울 코막힘을 시작으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둘 다 불평을 통해 여름이 조금만 더 머물러주기를 기원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또 머리를 짧게 쳐버렸다.


매년 추워질 때마다 6년 전, 내가 젊은 애송이였던 시절의 추억이 데자뷔 처럼 느껴지는 것을 반복한다. 올해는 이번 주 월요일에 느꼈다. 이번 데자뷰를 잠시 표현하자면,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제동 한 원룸 빌라 502호에 살 때이다. 나는 갈색 오버-핏 보세 코트를 걸치고 인턴을 하고 있던 평창동 리모델링 현장에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빠르게 걸어가는 장면이었다. 아직 사회의 인간관계나 융통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세상도 모르고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르는 그런 귀여운 애송이의 출근길 모습이었다. 도대체 너는 무슨 생각으로 살고 있는 거냐….


잠깐. 그건 6년 전 12월에 내가 하던 일이었다. 10월에 12월의 기억이 떠오른 게 이상했다. 쌀쌀한 날씨와 바삭해진 공기가 비슷했기 때문일 터. 겨울 같이 공기는 차가웠지만, 기억은 아늑하고 아득했다. 3초 동안 6년 전 나를 보고 혹시 이건 데자뷰가 아니라 또 다른 평행 우주와의 연결이 아닐까? 나 혼자 상상해본다. 참, 도대체 너는 무슨 생각으로 살고 있는 거냐….


올해 여름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6년 전 겨울의 나와 만나는 일주일을 보냈다. 날씨도 월요일은 춥다가 금요일에는 따뜻해졌다. 나도, 날씨도 앞뒤가 맞지 않는 아이러닉한 모습을 서로 닮았던 한 주가 아니었나. 혹시 이렇게 앞뒤가 안맞는 시간을 가을이라고 부르는건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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