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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민 Nov 04. 2022

정신이 나갔었나봐.

주간 회고록 : 2022년 11월 첫째 주

그날은 날씨가 좋아서, 집안이 답답해서, 커피가 마시고 싶어서, 어제는 온종일 집에서 있어서라는 켜켜이 쌓인 이유를 가지고 카페로 향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참 괜찮았는데. 카페에서 진득하게 작업을 하려고 했었다. 아쉽지만 인생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없는 법. 2시간 만에 두통이 밀려왔다. 사장님이 내려주신 에티오피아 드립 커피를 마저 비우기도 전, 두통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아무래도 더는 안 되겠다. 고통에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30분을 더 버텼지만, 도저히 가망이 없는 두통에 나는 후다닥 카페를 나왔다. “다음에 또 올게요—”.


 이대로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집에 가면 두통을 핑계로 또 전기장판에 불을 넣고 누워서 인스타그램을 볼 게 분명했다. 아니면 유튜브라든지. 집에는 가기 싫어 걷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잠시 어디로 걸을까 고민하다 샤로수길을 지나 낙성대 공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밖에서 걸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당을 높여주는 ‘꿀 꽈배기’ 한 봉지를 먹어서 그랬을까? 낙성대 공원으로 가는 길에 두통은 빠르게 사라졌다. 고통으로부터 정신이 돌아오니 앞에 보이는 건 노랗고 붉은 단풍이었다. 가는 길거리에도, 거리 옆 아파트 단지에도, 낙성대 공원에도 단풍이 짙게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촘촘한 단풍잎들 사이로 들어오는 빛의 형태는 얼마나 아름답던지. 


구경하며 계속 걷다 낙성대 공원 한쪽에 자리한 강감찬 장군의 영정을 모시는 안국사에 들리게 되었다. 입구에는 나같이 단풍 구경을 하러 오신 4명의 아주머니가 계셨다. 내 앞을 걸어가시던 4분 중 1분이 갑자기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가리키며 놀란 듯이 말했다.


“어머! 쟤 좀 봐. 쟤 정신이 나갔나 봐!”

“어머머머! 쟤 진짜 정신이 나갔네!”


조용히 뒤에서 따라 걷고 있던 나는 아주머니의 갑작스러운 반응에 흠칫 놀랐다. 아주머니가 가리키는 곳에는 사람도 없었는데 도대체 정신이 어디 갔냐는 거지? 내 정신은 두통이 없어지고 다시 돌아왔는데…. 혹시 나보고 하는 소리는 아니겠지? 아니면 나에게 보이지 않는 영(靈) 같은걸 보신 걸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나는 궁금증이 한껏 증폭되었지만, 아주머니들은 아무렇지 않은듯 안국산 안쪽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뒤따라가던 나는 곧바로 아주머니가 가리킨 그 무엇을 보게 되었다. 어라? 쟤 진짜 정신이 나갔네!


그곳에는 11월 가을 물들지 않은 붉은 철쭉 한 송이가 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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