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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민 Dec 05. 2022

괴상하고 이름 없는.

주간 회고록 : 2022년 11월 다섯째 주

<이름 없는 요리를 합니다>는 ‘샘터’에서 출간한 나답게 살기 위한 부엌의 기본을 주제로 한 책이다. 책 소개에 “도쿄에서 만난 우아하게 나이 드는 7인의 소박한 주방 풍경”을 담았다고 말한다. 올해 11월, <엄마께 요리해드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요리와 식사에 관한 책을 둘러보다 빌리게 된 책이었다.


책에는 요리 연구가, 식당 운영자, 수필가 등 모두 자식을 다 독립시키고 60대에 접어든 여성 7명이 나온다. 모두 누구를 위해 요리하지 않고, 나를 위해 요리하는 사람들이다. 제목처럼 이름 없는 요리를 하는 이유는 오랜 세월 주부로서 자식과 남편을 위해 요리하다 이제는 자신을 위해 요리하기 때문에 자기 입맛에 맞고 간편한 요리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절밥 같은 식단을 하고 어떤 사람은 MEC(Meat, Egg, Cheese) 식단을 하고, 아침을 따뜻한 커피에 차가운 우유를 반반 섞어 만든 커피로 대체하기도 한다. 그들이 즐겨 먹는 ‘이름 없는 요리’들을 중간중간 소개하는 게 이 책의 목적 같았다. 60대가 넘은 여성 7명의 요리 레시피를 보면서 마치 나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나를 위해 요리하고 이름이 없는 괴상한 요리를 하고는 한다.


목요일 저녁에는 ‘이름 없는 요리’를 했다. 요리먹구가 @eprikot의 인스타그램에서 본 요리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배추와 닭다리살, 두부, 파를 겹겹이 쌓아서 육수를 넣고 전골처럼 끓이고 찜처럼 익히는 그런 요리였다. 괴상한 요리법에 육수와 소금 간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대신 찍어 먹을 양념장을 만들었다. 다진 양파, 다진 생마늘, 송송 썬 대파의 하얀 부분, 간장, 후추, 들기름, 레몬즙을 넣어 맛을 냈다. 뽀얗게 익은 배추와 닭고기를 새콤하고 짭짤한 양념장에 찍어 먹는, 밀푀유나베와 흡사하나 절대로 밀푀유나베는 아닌 이름 모를 음식이 만들어졌다.


목요일 저녁은 맑고 깔끔한 맛을 느끼고 싶어서 이렇게 요리했고 2주 전쯤에는 들기름과 사과로 샐러드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그전에는 감자와 대패 삼겹살을 찜기에 찐 후 화이트 비네거를 뿌려 먹거나 배추된장국을 활용해 죽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이름을 붙이면 붙일 수 있으나 ‘치킨 크림 커리’나 ‘볼로네제 파스타’ 같이 명확한 이름과 레시피를 갖춘 요리는 아니었다.


이런 요리를 하는 이유는 내가 먹고 싶은 맛을 느끼고 싶어서이다. 레시피가 얼추 정해져 있는 기성 요리가 아니라 그때그때, 순간순간, 끼니 끼니 내가 느끼고 싶은 맛을 들여다보고 ‘나만의 식사’를 꾸려가기 때문이다. 내가 먹고 싶은 맛을 나만의 요리법으로 구현한다. 어쩌면 이게 삶이란 건축물의 기초가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기초가 튼튼해야 건축물을 안전하게 올릴 수 있으므로. 결국 음식을 먹어야 건강히 살 수 있는 삶이기 때문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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