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민 Dec 15. 2022

동기들 버리고 뛰쳐나온 기장.

주간 회고록 : 2022년 12월 첫째 주

나는 꼰꼰 건축 공채 00기의 기장이었다. 기장은 보통 옷의 길이를 말하거나 항공기의 최고 책임자를 말하는 단어이지만 ‘기수의 장’이라는 의미로 회사에서는 쓰였다. 내가 하고 싶어서 했던 것은 아니고, 오리엔테이션 때 대뜸 인사팀에서 가위바위보를 시켰고 결국 졌기 때문에 맡게 되었다. 다행히 갓 입사했을 무렵에 공지사항 전달 외는 별다른 임무도 없었다 (매주 있는 동기 모임 날 아침 모임 날이란 걸 알리는 것을 특별한 임무처럼 수행하긴 했지만….)


이번 주 화요일에는 낙성대역에 갈 일이 생겼었다. 그날은 대여한 책을 픽업하러 가야 했는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겸사겸사 낙성대에 사는 동기 형형이 보고 싶었다. 만남의 목적이나 특별한 의미가 있냐고? 아니. 딱히 없었다.


형형 생각이 든 오후 6시 10분. 곧장 만나자고 카톡을 보냈더니 곧바로 만나자고 카톡이 돌아왔다. 형형이는 주변에 사는 다른 동기도 부르자며 만남의 판을 키웠다. 그래. 오랜만에 여럿이서 보면 좋지! 그리하여 나와 형형 그리고 진진은 밤 9시에 샤로수길 스타벅스 앞에서 만났다.


바깥에 비해 매우 따뜻했던 카페에서 우리는 왁자지껄 대화를 나누었다. 정신이 어지럽다기 보다는 즐거운 이야기를 지껄이는 것에 가까웠다. 요즘에는 무엇을 하는지, 얼마 전 현상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른 동기가 이직한 이야기, 동기들끼리 장난친 이야기 그리고 서로에게 이어지는 장난까지. 형형과 진진은 내가 회사에 다닐 때와 다름없이 대해주었고 8개월 전 목요일 점심마다 동기 모임을 할 때처럼 즐겁게 지껄였다.

그중 귀에 쏙 들어온 말은 형형이 웹툰을 그려보면 재밌겠다는 이야기였다. 웹툰을 그려보고 싶다는 말이 유독 귀에 들어왔던 건 아마도 내가 건축사 사무소 직원이 아닌 다른 삶을 살고 싶었던 나의 퇴사 사유가 생각났기 때문일 것이다.


따뜻하던 카페가 문을 닫아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왁자지껄 떠들면서 이야기가 이어져갔다. 동기 둘의 회사생활을 들어보니 둘 다 잘 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온전히 내 느낌이지만). 안정감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좋고 그나마 나보다는 더 나은 환경과 팀에서 직장인의 삶에 만족하는 둘의 모습이 정말 만만다행이었다.

8개월 전 꼰꼰 건축 공채 00기 기장이었지만 동기 중 가장 먼저 퇴사했고 8개월이 지나 연말이 되었지만, 아직도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고 있는 나. 직장인의 달콤하고 이로운 점을 내려놓고 새로운 삶을 꾸리겠다고 뛰쳐나온 나. 어떻게 살고 싶은가 끊임없이 질문했지만, 어쩌면 나는 회사에 남아있는 동기들처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을 찾지 못해 퇴사한 것은 아닐까? 답을 찾는 모험을 하고 싶어서.


그냥 얼굴이나 보고 싶어서 오랜만에 만난 동기들에게 뜻밖의 질문을 받아 간다. 

너는, 나는 어떻게 살고 싶니?


끝.

작가의 이전글 괴상하고 이름 없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