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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민 Jan 13. 2023

일이 놀이고 놀이가 일인 사람.

우리에게는 환경 운동이 필요합니다.

엄마 집에 놀러 갔다. 대문을 여니 어김없이 아가 조카가 나를 활짝 웃으면서 반겨주었다. 의사소통은 되지만 말은 통하지 않는 두 돌도 안 된 아가 조카는 나에게는 관심이자 관찰의 대상이다.


관찰해본 결과 평일 아가의 하루는 이렇다. 정해지지 않은 시간에 일어나 아침부터 책을 읽는다. 아니 누나나 엄마께 읽어달라고 조른다. 책장에 꽂힌 알록달록한 색감의 그림과 짧은 문장들이 쓰인 책을 마구잡이로 집어와 읽어달라고 한다. 아침 독서 시간이 지나면 누나 손을 잡고 나에게 “빠빠이”를 외치며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어린이집에서는 다양한 일을 한다. 책도 읽고 블럭 쌓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때 산타에게 선물도 받는다. 그림을 그릴 때면 한쪽 손을 머리에 갖다 대고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또 어떤 날은 카우보이나 베짱이로 변신해 역할을 맡기도 한다(정확히 무엇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어린이집에 가서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선생님께서 누나에게 전달해주시고 누나가 또 가족들에게 전달해 준 사진을 관찰하여 알아낸 사실이다.


오후 4시가 되면 어린이집에서 어른이 집으로 돌아온다. 이때부터는 또 논다. 아가는 ‘뽀로로’나 ‘브레드 이발소’가 보고 싶으면 리모콘을 가져와 어느 어른에게 틀어달라고 요청한다. 아니면 자신의 장난감을 모조리 가지고 나와 거실을 장난감으로 채워버린다. 그렇게 놀다가 밥 먹고 또 놀다가 씻고 또 놀다가 잠이 든다.


엄마 집에 놀러 갔을 그날의 아가는 저녁을 먹고 자연스럽게 블럭을 쌓기 시작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고 같이 놀자고  한 것도 아니었다. 탑을 쌓는 아가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열정적이다 못해 활활 불타고 있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집중력으로 탑을 쌓았다. 그리고 자신보다 높게 공들여 쌓은 탑을 밀어 와장창 소리가 나게 무너뜨려 버린다. 아가는 재밌는지 꺄르르하하 웃음을 터뜨린다.


아가에게 놀이가 일이었으면 어땠을까?


우리의 일처럼 온종일 억지로 놀아야 한다면 아가는 과연 즐기면서 놀 수 있을까?


블록 탑을 그렇게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쌓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쉽게 넘어뜨리고 꺄르르하하 웃을 수 있을까?


나는 좋아하는 일을 억지로 해야 한다면 즐길 수 있을까?


아가처럼 진심을 다해서?


그날 아가를 관찰하며 깨달은 것이 있었다. 일을 놀이처럼 즐기면서 하고, 즐기는 놀이가 일이 되려면 조건이 있다는 것. 바로 ‘주체성’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일도 재밌게 해야죠’, ‘일! 놀! 놀! 일!’ 같은 말이 현실에서 일어나려면 스스로 놀고 일할 마음이 있어야 한다.


내가 번듯한 직장에서 퇴사 한 가장 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체성 없이 강요받으며 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 나는 힘들었다. 그래서 돈은 덜 벌고 미래도 불투명하지만, 독립출판 작가와 프리랜스 디자이너 일을 하고 있다. 8개월 넘게 하루도 빠짐없이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나는 종일 열심히 한다. 솔직하게 100% 즐겁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만들어낸 이 주체적인 환경이 100% 마음에 든다.


우리가 일없이 살 수 있을까?


우리가 놀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둘 다 절대 포기 못 하지.


그러니 일을 놀이처럼, 놀이를 일처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놀고 일할 마음이 생기는 환경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다. 경험상 억지로 일하며 하루를 사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그러니 우리 되도록이면 아가처럼, 아기처럼 살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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