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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민 Jan 16. 2023

나는 낮보다는 밤에.

미라클 모닝이 어렵다면? 하지 마세요. 대신 미라클 나잇 하세요.

나는 아침이 무섭다. 눈을 뜨며 하는 일은 한숨 쉬기다. ‘오늘도 하루가 시작되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이불을 꽉 끌어안으며 30여 초 동안 일어날까 말까 마음속으로 고민하다 결국 일어난다. 아침이 감정적으로 힘들어진 지 몇 년 되었다. 매일 아침 나는 살짝 우울에 잠겨 있다. 다행히 우울 파도에 흔들려 불안하거나 허망한 상태는 아니다. 그나마 회사에 다닐 적에는 출근하기 바빠서 몸을 씻기고 움직이느라 생각을 못 했는데, 퇴사 후엔 출근이 없어 감정을 온전히 느끼게 된다.


퇴사하고 나는 미라클 모닝을 하려고 했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상쾌하게 햇빛을 맞으며 힘차게 하루를 시작하고 싶었다. 당연히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처참히 실패했다. 애초에 아침잠이 많아 상쾌하게 스스로 일어나는 건 불가능한데 혼자 가능할 거라고 망각한 거라 해야 하나. 아무튼 미라클 모닝은 나에게 불가능했다. 나중에 어느 북튜버께서 올린 미라클 모닝에 관한 책 리뷰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오마이갓. 미라클 모닝은 아니나 다를까 일찍 일어나서 갓생 사는 게 아니라 ‘아침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해주셨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는 걸 감사하게 맞이하는 사람이 아니니 나에게 미라클 모닝은 역시나 불가능했다는 걸 깨달았다. 


밤새 우울한 기분에 잠식되어 버린 나를 이끌고 욕실로 향해 세수를 한다. 찬물을 두 손에 받아 얼굴에 끼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뻑뻑했던 안구도 촉촉해지면서 시야가 밝아지고 시원한 물이 얼굴과 마찰을 일으킬 땐 묘한 쾌감도 있다. 그리고 거울엔 차가운 물방울이 맺힌 까치집 머리의 내 얼굴이 보인다. 이런, 조금만 더 정해인을 닮았거나 머리가 세팅되어 있다면 나에게 취할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아침부터 취하면 안 되니까 애써 모른 척 욕실을 나온다. 그다음은 커피를 내린다. 물을 커피포트에 끓이고, 원두를 갈고, 필터를 접었다 펼치고, 천천히 물을 붓는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는 건 위에 안 좋다는 걸 알고 있지만 끊기가 힘들다. 뇌에 퍼지는 카페인이 나의 정신을 깨울 뿐만 아니라 커피를 내리는 행위 자체가 내 오감을 톡톡 건드려 깨우기 때문이다. 똑똑똑 드립이 떨어지는 소리와 커피 가루와 물이 만나 만들어내는 향기와 거품과 하께 부풀어 오르는 드리퍼 속 커피 가루는 나를 깨운다. 우울했던 기분이 사라지는 걸 느낀다. 다 내린 커피를 좋아하는 머그잔에 담아 책상 앞으로 향한다. 노트북을 켜고 커피 한 모금을 마신다. 쓰읍-하. 하루가 시작된다.


하루의 시작은 생존을 위한 발버둥에 가깝다. 이 시간이 지나면 기분은 훨씬 좋아진다. 글쓰기와 디자인 일에 집중하고 클라이언트와 인쇄소 메일을 주고받다 보면 하루가 훌쩍 가버린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아침과 정반대의 사람이 된다. 이불을 꽉 끌어안던 모습은 없어지고 싫어하는 팔굽혀펴기와 스쿼트도 100개씩 하는 모습으로 바뀐다. 운동은 가끔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만 먼 미래의 나를 위해서 기꺼이 100개를 채우고 만다. 샤워를 하고 나온 뒤에는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킨다. 뜨거운 물로 지진 몸을 시원하게 식혀주는 것은 아침 세수와 같은 쾌감이 있다. 단짠단짠같이 뜨찬뜨찬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방안 형광등 조명은 모두 끄고 전구색의 불만 남겨 놓는다. 그리고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 기분에 따른 백그라운드 뮤직을 켜놓고 밤시간을 즐긴다. 목이 마르면 살얼음이 낀 식혜나 꿀을 듬뿍 넣어 끓인 카모마일 티를 마시기도 한다. 나는 평일 밤 이 시간을 좋아한다. 미라클 모닝은 못 하지만 미라클 나잇은 할 수 있다. ‘밤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가능하다.


미라클 모닝을 노력해도 불가능했는데 미라클 나잇은 자연스럽게 가능했다. 아무리 갓생 살기와 미라클 모닝 같은 것이 유행이라지만 휘둘리려야 휘둘릴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따라 해야지 안 그러면 뱁새처럼 다리가 찢어질 것이다. 아마 그건 주리를 트는 고통에 가까울 거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을, 자연스러운 것을, 나의 것을 하는 것이 결국 행복을 온전히 느끼고 삶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방법인 것 같다.


나는 애쓰지 않더라도 행복하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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