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재미와 감동에 흠뻑 빠졌다

원작과 번역의 케미에 감탄한 장편소설

by 류재민

한 달에 두 권씩 책을 읽으려고 합니다. 매월 초에 두 권을 사놓습니다. 사놓으면 어떻게든 읽게 됩니다. 출·퇴근하는 KTX 안에서, 점심 먹고 들어와서, 잠들기 전에도 읽습니다. 짬 나는 대로 읽다 보면 어느새 한 권 한 권 책이 쌓입니다.

이번 달에 읽은 장편소설 《파친코》1권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올해 읽은 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민진 작가는 오랜 자료 수집과 놀라운 필력으로 독자를 사로잡았습니다.


다음 달에 읽을 파친코 2권이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40대의 나이라고 여길 수 없을 정도로, 구한말부터 해방 이후까지 조선과 일본의 시대상을 또렷하게 묘사했습니다. 마치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이 ‘옛날이야기’를 풀어놓은 것처럼. 시대의 아픔을 생생하고, 담담하게 풀어냈습니다.

이민진 작가는 우리나라에서 태어났지만, 일곱 살 때 미국으로 이민 갔습니다. 기업 변호사로 일하다 건강 문제로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는데요. 남편이 도쿄 금융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일본에서 4년 동안 생활했고, 이때 경험을 기반으로 두 권짜리 장편 《파친코》를 썼다고 합니다. 현재 그녀의 소설《파친코》는 미국에서 TV 시리즈물로 제작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작가는 최근 '뉴욕 타임즈'에 기고한 에세이에서 “한국이나 미국에서 어떻게 책을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아요. 어렸을 때 말을 잘할 수도, 친구를 찾을 수도 없었지만, 매우 일찍 책을 읽었습니다”고 했습니다.


순자는 이미 상상 속에서 오사카에 와본 적이 있었다. 시모노세키행 여객선과 오사카 열차, 달리거나 자전거를 타는 소년을 앞질러 갈 수 있는 전차도 상상 속에서는 벌써 타 보았다. 쌩쌩 스쳐 지나가는 자동차들은 한수가 말했던 것처럼 바퀴 달린 금속 황소 같아 보였다. 순자는 시골 처녀였지만 이 모든 것을 한수의 이야기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제복을 입은 개표원과 출입국 관리자, 짐꾼, 전차, 전기 램프, 등유 난로나 전화기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순자는 새로운 땅에서 싹을 틔워 햇살을 받으려고 곧게 피어나는 묘목처럼 조용히 서 있었다. 《파친코》 1권 中.

작가도 위대하지만, 이민정 번역가의 솜씨도 놀랍습니다. 특히 작품의 주인공인 ‘순자’와 그녀의 고향인 부산 사투리를 절묘하게 표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어 원작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술술 읽힐 정도로 풀어썼다는 게 경이로울 정도입니다.


대학 시절 노벨 문학상 수상작을 호기롭게 집어 든 적이 있습니다. 미국 여류작가의 소설로 기억하는데요.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일 수도 있겠지만, 번역본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 뒤로 외국서를 보는 것에 선입견과 거부감이 생긴 것 같습니다.

이 장편소설을 읽으면서 이토록 멋지고 깔끔하게 번역을 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감탄사가 연신 터져 나왔습니다. 작가는 위대했고, 번역가는 존경스러웠습니다. 다음 달에는《파친코》2권을 마저 읽을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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