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든, 기사 쓰기든 ‘제목’은 심장과 같습니다. 박동이 느껴지지 않는 제목은 글 전체의 생명력을 잃게 합니다. 신문 기사를 끝까지 읽는 건 시간 낭비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바쁜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요.
눈길을 확 끄는 제목이 아니면, 아무리 열심히 취재하고 공들여 쓴 기사라도 독자의 관심을 받기 어렵습니다. 그렇다 보니 부작용이 심합니다. 어떻게든 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제목을 달기 때문입니다.
제목만 보고 기사를 찾아봤다 ‘낚였다’라는 경험을 한 번쯤 해보셨을 겁니다. 호기심 잔뜩 어린 제목에 끌려서 봤더니 별 내용이 없는 기사였다면 얼마나 화나겠습니까. 기자인 저도 이따금씩 그런 기사를 보면 사기당한 느낌입니다. 그러고도 언론은 독자들에게 미안하거나 책임질 생각은 1도 없습니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이목을 끌 수 있는 기사 제목은 어떻게 정해야 할까요? 일단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글이든 기사든 저자나 기자가 전할 메시지를 한 줄로 압축해야 합니다.
특히 기사 제목은 애매모호하면 곤란합니다. 분명한 뜻을 담아야 합니다. 대개는 대제목에 핵심(메인) 메시지를, 부제목에 부가(서브) 메시지를 담습니다.
제목은 또 재미있어야 합니다. 선정성과 자극성은 '지양'해야 하지만, 흥미를 유발하거나 감동을 불러일으킬만한 제목은 '지향'해야 합니다.
<한겨레신문> 기자와 <미디어오늘> 발행인 출신 손석춘 기자가 쓴 책 《신문 읽기의 혁명》 중 일부를 예로 들겠습니다. 군 장성들의 공관 규모가 상식적인 수준보다 크다는 기사를 인용한 부분입니다.
손석춘 저, 신문읽기의 혁명 中
흔한 표제로 한다면 ‘군 장성들 공관 터 너무 크다’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터이다. 그러나 편집자라면 누구나 좋은 기사에는 그에 걸맞은 표제를 달고 싶다는 애착이 가게 마련이다. (중략) 그 기사의 주 표제는 「별나게 큰 ‘별들의 집’」이다. 여기서 ‘별나게’라는 말은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별난’이라는 뜻과 ‘별(장성)이 나왔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기사 제목은 취재기자가 쓴 원작으로 나갈 때도 있지만, 데스크(부장 또는 편집국장) 검토 과정에서 바뀌기도 합니다. 데스크는 현장에서 더 오랜 시간 취재를 하고 기사를 써 왔기 때문에 기자가 달아놓은 것보다 더 ‘세련되고 와닿는’ 제목을 붙여 넣을 확률이 높습니다.
같은 현장에서 같은 인물이나 사건을 취재했더라도 신문사마다 제목이 각양각색입니다. 언론사마다 기사 논조가 다를 수 있고요. 데스크 성향과 관점에 따라 제목이 결정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조중동과 한경오가 동일한 사안을 보도하면서 ‘제목’은 각기 다르게 뽑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언론사마다 논조가 다르다 보니 기사의 방향에 따라 같은 사안의 보도라고 해도 제목이 달라집니다. 손석춘 저, <신문읽기의 혁명> 中
어쨌든 기사에서 제목은 심장이고, 기사의 얼굴입니다. 참신성이나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는 제목은 죽은 기사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어떻게 다느냐가 기사를 쓰는 것보다 더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저는 제목부터 정해놓고 쓰기보다 본문을 써 놓고 제목을 궁리하는 편인데요. 기사 한 꼭지 쓰면서 제목을 열두 번도 더 고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분명한 사실은요. 기자가 고민한 만큼 제목이나 기사의 질도 좋아지더라는 것입니다. 제목달기는 ‘글로 생활자’의 숙명과 같습니다. 그 숙명을 이겨내는 방법은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겁니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시(詩)든 읽기를 권합니다. 어휘력이 늘어 명쾌한 제목을 정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유행가 가사나 광고 카피도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