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의 초점을 ‘인물’에 맞춰 보세요

모든 벌어지는 일은 사람으로부터 시작하니까

by 류재민

기사의 소재는 다양합니다. 사회 현상이든, 국가 정책이든, 사건 사고든, 기자가 기삿거리라고 판단한 모든 것이 ‘취재원’입니다.


저는 기사의 초점을 현안이나 사건 사고보다 ‘인물’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사람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독자는 나와 비슷한, 아니면 나와 다른 ‘사람들’ 일에 궁금해 합니다.


따져보면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분야의 중심이 ‘사람’입니다.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은 권력자나 재벌 총수 등 부유층과 엘리트부터 평범한 소시민과 사회적 약자인 저소득층까지 각양각색입니다.


부정부패를 저지른 권력층, 몰상식한 교육자들의 입시 비리, 대기업 회장의 갑질, 남몰래 한 선행, 노약자들의 가난한 삶이 기사에 주로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기자는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 여론을 모읍니다. 잘못을 바로잡고, 선행을 실천한 사람은 칭찬받게 하고, 어려운 이웃은 후원과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매파’가 됩니다. 반대로 범죄를 저지른 자는 혹독한 비판과 처벌을 받게 만듭니다.


언론을 ‘사회적 공기(公器)’라고 부르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공공의 목적과 공익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니까요.


그들의 사연에 우리는 때로는 공분하고, 때로는 가슴 따뜻해지고, 때로는 마음 아파하며 보다 나은 세상을 설계하고, 준비하고, 연대하며, 행동에 나섭니다.


저는 기사의 초점을 ‘인물’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사람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라는 동요 아시죠? 제가 어릴 적만 해도 스마트폰은커녕 컴퓨터가 있는 집이 몇 안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반적인 정보는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통해 접했는데요.


제가 살던 동네 한 어르신은 봉사상을 받은 소식이 지역 신문에 실렸다고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다녔습니다. 스크랩한 기사를 코팅해서 가보로 삼겠다고 했을 정도입니다. 살면서 자기 이름이 실린 신문 기사를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많지 않을 겁니다.


'보통 사람'에게 신문 기사나 방송 보도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추억이고, 영광입니다. 물론 지탄의 대상이 아닌, 선행으로 알려져야죠. 기자인 저도, 제 이야기가 나온 신문과 방송을 찾아보면 흐뭇하고 뿌듯하거든요.


어떤 기자들은 미담에 인색합니다. 유력 정치인이나 유명 연예인 스캔들 같은 가십성 기사에 치중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어떤 기자들은 개인 SNS에 올린 글을 그대로 퍼다가 기사라고 씁니다.


정치적 이해관계나 경제적 이득을 의도해 ‘언론플레이’를 노리는 막돼먹은 사람들도 숱합니다. 기자는 그런 ‘양x치’들에게 현혹되고 농락당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평범하지만, 사회의 어둡고 그늘진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이웃들의 이야기가 많은 언론을 통해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코로나가 다시 대유행의 길로 진입했습니다. 하루 신규 확진자가 1000명을 넘어섰습니다. 국회도 요 며칠 계속 확진자가 나오고 있는데요. 천안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저도 불안 불안합니다.


그래도 기자는 마냥 쉬기 어렵습니다. 사람이 있는 곳에선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요. ‘기레기’도 많지만, ‘종군기자’란 각오로 뛰는 기자도 많습니다. 더운 날씨에 마스크 쓰고 현장을 누비는 그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냅니다. 분명하고 명심할 건, 어딜 가나 ‘사람’이 먼저입니다.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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