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자는 웁니다

‘코로나 추석’이 만든 ‘코로나 추모’

by 류재민

코로나가 명절 풍속까지 바꿔 놓았습니다. ‘불효자는 옵니다’, ‘아들아, 선물은 택배로 부쳐라’ 이번 추석에 고향에 오지 말라는 ‘웃픈’ 현수막이 거리에 걸렸습니다.


‘코로나 추석’은 가족의 만남마저 가로막았습니다. 온라인 차례와 성묘 서비스가 등장했습니다. 벌초는 대행으로, 추모시설은 폐쇄하거나 한정된 인원만 받습니다. 죽은 조상보다 산 사람의 건강과 목숨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코로나로 고향에 오지 못하는 자식들은 얼마나 착잡할까요? 부모는 ‘괜찮다’고 해도, 불효하는 것 같아 맘이 안 좋을 겁니다.


올해 추모시설은 폐쇄하거나 사전 예약으로 한정된 인원만 받습니다.

아내와 함께 천안 추모공원을 다녀왔습니다. 이곳에 제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를 모셨거든요. 조부모는 1층, 아버지는 2층에 입주했습니다. 코로나 사태에 사전 예약으로 하루 200명의 추모객만 받고 있습니다.


아버지 2주기입니다. 명절엔 정부 차원의 성묘 자제에 동참하려고 미리 다녀왔습니다. 지하층인 봉안당 입구에서 사전 예약자 명단을 확인하고, 발열 체크를 했습니다. 손 소독까지 마치고 계단을 이용해 1층으로 올라갔습니다.


할아버지는 제가 다섯 살 때 돌아가셔서 기억이 많지 않은데요. 할머니는 장수하셨습니다. 동네에서 백수잔치까지 했거든요. 할머니 생전 “나 장가가는 것까지 보고 가셔요”하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요. 할머닌 그때마다 “예끼 이놈, 악담을 해라”라고 손사래를 쳤습니다. 그랬던 할머니께선 증손자인 제 딸까지 보시고, 101세에 돌아가셨습니다.


조부모 납골함 앞 바닥에서 두 번 절하고 나와 아버지한테 갔습니다. 탁 트인 바다 풍광을 배경으로 서 계신 사진 속 아버지 모습이 오늘은 밝아 보입니다. 아버지께선 2년 전 명절을 앞두고 한밤 중 길을 건너다 차에 치여 운명하셨습니다. 혼자 가는 길 얼마나 쓸쓸했을까요.


임종을 못 본 불효자는 남몰래 찾아와 흐느껴 운 날이 여러 번입니다. 올 때마다 눈물 몇 줄기 흘렀는데, 오늘따라 눈물이 안 나오네요. 슬픔도 시간이 흐르면 옅어지나 봅니다.

추모실은 노란 테이프로 봉쇄했습니다.

마스크를 쓴 추모객들은 삼삼오오 거리두기를 실천하며 추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간소하나마 제사를 지낼 수 있었던 추모실은 노란 테이프로 봉쇄했습니다. 추모 시간도 15분으로 제한해 오래 머물 수 없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계단을 내려오며 망인들을 추억하며 써 놓은 글귀를 보았습니다. 저승에서는 아픔도, 슬픔도, 원망도, 노여움도 없이 평안하기 바랍니다.

산도 푸르고, 하늘도 푸릅니다. 물도 흐르고, 구름도 흐릅니다. 아내의 손을 살며시 잡아 봅니다. 오늘은 돌아오는 길이 쓸쓸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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