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린 시절 시골의 아이들은 놀 장소가 마땅치 않았습니다. 보이는 건 산과 들, 논과 밭이 전부였으니까요. 봄여름에는 산에 올라 예비군 훈련용으로 썼던 참호에서 전쟁놀이를 하거나 칼싸움을 했습니다. 가을과 겨울에는 추수 끝난 논밭에서 공도 차고, 술래잡기도 했습니다. 옥수수 쭉정이와 땅콩 더미를 발견하면 구워 먹는 재미도 쏠쏠했지요.
오늘 하려는 얘기는 어린 시절 동네 아이들과 함께 했던 야구 이야기입니다. 추수를 마친 논은 워낙 커 구장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야구 방망이는 각목으로 대신하고, 공은 테니스공을 이용했습니다. 글러브는 없었습니다. 베이스는 삽으로 흙을 파 엎거나 볏단을 세워 만들었습니다.
이따금 빗맞은 공이 현이네 양철 지붕 위로 날아갔는데요. 현이네 집은 ‘불독’을 키우고 있어 서로 들어가기 주저했었죠. 집 안으로 공을 보낸 친구가 갈 때도 있고, 가위 바위 보에서 진 사람이 공을 주우러 들어갔습니다.
그러면 불독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 ‘으르렁, 컹컹’ 짖으며 겁을 줬습니다. 불독이 짖으면 재영이네 개도 짖고, 호영이네 개도 짖고, 경호 형네 개도 짖고 온 동네 개들이 다 따라 짖었습니다. 마당 한 귀퉁이 목줄에 매달려 있었지만 그땐 녀석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릅니다. 들어갔던 아이들마다 문 앞을 서성이다 울음보를 터뜨리기도 하고, 공을 줍자마자 혼비백산 달음질쳤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더러는 멀리 날아간 공이 개천에 빠질 때도 있었는데요. 그럴 때면 우르르 몰려가 물에 떠내려가는 공을 줍느라 정신이 없었지요. 바지가 젖거나 흙탕물이 잔뜩 배 엄마에게 야단맞기 일쑤였습니다. 그때 그 시절이 지금은 그립습니다.
저는 이글스 레전드 송진우의 열혈 팬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한국화약(한화)에 다니던 고모부 덕분에 빙그레 이글스(현재 한화 이글스) 어린이 회원이 되었습니다. 이글스 마스코트가 새겨진 공과 모자, 가방, 잠바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동네에서 유일한 어린이 회원이라 거의 매일 풀 세트로 다녔습니다. 자랑하듯 동네를 누비는 저를 친구들 모두 부러워했지요.
1999년 한화 이글스가 창단 첫 우승을 했을 때, 저는 군 복무 중이었습니다. 일병 시절이라 맘 편히 보진 못했는데요. 이글스 ‘찐 팬’인 저로선 그날의 감격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올해는 ‘꼴찌+시즌 100패’ 위기에 처해있는데요. ‘보살 팬’은 영원합니다.
제가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인간적’이기 때문입니다. 구기 종목 중에서 유일하게 공이 아닌, ‘사람’이 ‘홈(집)’으로 들어와야 점수가 올라갑니다. 또 ‘희생 번트’와 ‘희생 플라이’처럼 팀을 위한 ‘희생’을 필요로 합니다.
코로나19에 야구장 ‘직관’은 못하는데요. 퇴근하고 TV로 응원하며 즐기는 건 어떨까요. 어린 시절 추억이 살살 떠오를지 모릅니다.